완연한 겨울이다. 날씨는 많이 추웠다가 조금 덜 추웠다가의 반복이지만 목폴라와 도톰한 패딩을 꺼내 입는 게 당연한 일상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일찌감치 패션피플이 아니라 패딩피플이 되었다. 아무튼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식탁에 꼭 국물 요리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국물 없이 밥을 먹으려 해도 뭔가 뜨끈한 국물이 있어야 밥이 잘 넘어간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육수도 더 다양한 재료를 넣고 오래 끓여 한층 깊게 우려낸다. 추운 날씨에 몸에 기운을 채워줄 수 있는 진한 국물이 당기기 때문일까. 겨울 추위를 막아주는 패딩처럼 내 몸의 온기를 보호해줄 수 있게 음식도 더 든든하게 먹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육수에 더욱 정성을 쏟게 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식탁 위에 올라가는 국물 하나에도 신경을 쓰게 되는 것.
주말의 끝자락, 일요일 저녁 집밥을 준비했다. 메뉴는 돼지고기 김치찌개. 원래 그냥 다시마만 넣은 시원한 맛의 김치찌개나 참치 김치찌개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고기 넣은 김치찌개를 굳이 안 해 먹는다. 그런데 이 계절이 나의 입맛도 바꾼 건지 비계가 붙은 돼지고기로 끓여 진득하게 달라붙는 맛의 찐-한 김치찌개가 당긴 것이다. 김치와 여타 재료들은 집에 있었고, 집 근처 마트에서 찌개용 삼겹살과 김치찌개에 어울리는 계란 프라이를 위한 계란도 한 판 샀다.근처에 구운 김을 맛있게 파는 식당에 들러 김도 넉넉하게 샀다. 김치찌개와 환상의 짝꿍인 계란, 김까지 채비를 마쳤으니, 어서 집에 가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푹 끓일 요량으로 집에 가자마자 제일 먼저 김치찌개를 끓이고, 밥을 안쳤다. 찌개와 밥이 완성되는 동안에는 일주일간 어질러진 집을 청소했다.
밥을 먹고 나면 바로 침대로 직행해 이불 속에 들어가 게으름을 찬양할 테니, 그전에 부지런히 집 청소를 끝내야 한다. 밥 먹기 전에 이리 분주할 일인가 싶지만, 기분 좋게 밥을 먹기 위해서는 어질러진 집부터 치워야 한다. 밥 먹는 시간이 힐링인 내게, 어질러진 집에서 밥을 먹는 건 뭔가 정돈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밥을 욱여넣는 기분이다. 사실 집이 좀 지저분하기도 했다 그렇게 청소를 할 동안 1시간을 끓여 김치찌개가 완성됐다. 식탁을 닦은 후 밥, 김치찌개, 계란 프라이, 김, 멸치볶음을 차려 먹었다. 찌개를 먹는 순간 '아-내가 원하던 맛'이라며 셀프 감탄사도 잊지 않았다.
진한 국물, 오래 끓여 포슬하게 부드러워진 고기에 크게 쭉 찢은 부들부들한 김치를 올려 밥 한 술 뜨다 보니 어느새 한 공기를 다 비워냈다. 이 맛에 겨울 난다. 옷만 두툼하게 입을 게 아니라, 내 몸에 온기를 채워줄 밥도 든든하게 챙겨 먹어서 이 겨울을 잘 나고, 얼마 남지 않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온기를 더 보태기 위해(?) 밥을 먹고 따듯한 이불속으로 직행해 푹-쉬며일요일을 마무리 했다.
이런 국물 요리는 대량으로 끓여야 맛있어서 큰 냄비에 한가득 끓였더니, 이번 주 저녁 식단은 계속 김치찌개가 될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지만... 아, 너무 많이 끓이긴 했다.
<한 그릇 담아낸 김치찌개, 부드러운 고기와 김치의 맛이 일품이다>
<1시간 정성으로 끓여낸 김치찌개, 하나의 찌개가 완성되기까지 >
<돼지고기 김치찌개 레시피>
1) 찌개용 돼지고기(부위 상관없음, 선호하거나 집에 있는 부위로 하면 된다)를 냄비에 넣고 볶다가 표면이 다 익었을 때쯤 김치를 넣고 같이 볶는다. 혹시 고기의 기름기가 부족해 탈 것 같으면 소량의 물을 넣어준다. 고기와 김치의 비율은 보통 1:1을 하는 게 일반적이나, 나는 김치를 좋아해 김치를 더 넣는 편이다(김치를 너무 많이 넣으면 짜거나 신맛이 강할 수 있으니 집에 있는 김치 상태에 따라 양을 적당히 가감한다)
2) 김치가 살짝 익어서(살짝 볶은 상태) 맛있는 냄새가 올라올 무렵 고기와 김치가 잠길 정도의 쌀뜨물이나 물을 붓고 대파(흰 부분 위주로), 양파, 청양고추를 넣는다. 나는 육수의 깊은 맛을 위해 다시마도 한 조각 넣고 표고버섯 가루도 소량 넣었으나 없다면 생략해도 된다. 김치가 많이 시면 양파를 더 많이 넣어 단맛을 내주고, 양파만으로 신 맛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설탕을 넣어주면 된다. 소량의 액젓과 새우젓을 넣고 푹 끓여준다. 액젓이나 새우젓이 없으면 생략해 무방하며, 김치 국물을 조금 넣어 간을 맞춰도 된다. 이후 15분에서 30분 정도 끓이면 완성이지만, 이날은 부들부들하게 푹 익은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좀 오버해서 1시간을 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