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나는 모자를 자주 쓰고 다녔다. 키가 나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우리 반 정일이(가명)는 나를 자주 괴롭혔다. 내가 모자를 쓰고 간 날엔 내 모자를 벗겨 다른 애한테 던지거나 바닥에 내동댕이치곤 했다.
정일이의 괴롭힘 대상이 나만이 아니었다. 자기보다 힘이 약하다고 생각되는 애들에게 자주 그랬다.
그때마다 친구들 모두 선생님께 말해도 그때뿐이었다. 근데 내가 마르고 키가 작아서일까 정일이는 특히 나에게 더 그랬던 거 같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나를 툭툭치고 가고 안 그랬다며 시치미를 떼기 일쑤. 집에 가는 길에 실내화 가방을 빼앗아 던지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어 꿈에서라도 만나기 싫은 그 애가 하필 같은 반이 되다니...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애가 한 반에 두세 명뿐인데 어떻게 그 애와 내가 같은 반이 될 수 있을까... 운도 없지. 게다가 내 자리 바로 뒤에 앉다니 최악이다.
정일이는 중학생이 되어도 달라진 게 없는 거 같다. 키가 반에서 제일 큰 것은 물론이고 여전히 가만히 있는 나를 툭툭 건드렸다.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반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작다. 내가 빨리 안 큰 게 잘못도 아닌데 괜히 억울했다. 급성장 시기와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지만 이건 차이가 나도 너무 나니까 말이다. 괜히 엄마아빠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개학날 1교시, 담임선생님과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1교시 내내 정일이는 뒷자리에서 내 등을 콕콕 찔렀다. 하지 말라고 뒤를 돌아보며 눈치를 주고 팔꿈치로 슬쩍 밀어도 보았다. 그럴수록 정일이는 내 등을 더 세게 찔렀다. 야비하게도 선생님이 보지 않을 때만 그랬다. 그렇다고 첫날 첫 시간부터 선생님한테 이를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오전 내내 꾹꾹 눌러 참았다.
점심시간에 급식줄을 섰을 땐 내 뒤에 서서 제 무릎으로 내 무릎 뒤쪽을 툭툭 쳤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넘어질 뻔했다. 화가 나서 하지 말라고 말하며 또 참았다.
'하지 말라고', 하며 큰 소리로 말을 하면 정일이는 '안 그랬는데?'라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가 한 짓을 지가 모르면 누가 안 단 말인가. 그렇다고 급식실에서 들고치고 싸울 순 없는 노릇. 싸워봐야 내가 질 게 뻔하고. 나는 개학날부터 애들 구경거리가 되긴 싫다. 급식실 빌런으로 소문이 나면 3년 내내 밥이 안 넘어갈 것 같다. 그래서 억울하지만 이를 악다물었다.
나는 오늘 친구들이 자기소개를 할 때 키만 봤다. 남자 애들 순서만 보면 작은 순서로 3~4번째 될 것 같다. 제일 작지 않은 걸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나... 사실 나보다 더 마른 애도 딱 한 명 있었다. 그 친구가 위로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사실 몸이 약한 친구를 보고 다행이다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모르지 않는다. 근데 그때 내 마음은 그랬다.
엄마는 내가 작은 건 어려서 천식을 잃아서라고 했다. 또 편식과 먹는 양이 너무 적어서라고도 했다. 나는 늘 최선을 다해 먹지만 엄마 성에는 늘 차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내가 양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다. 게다가 가리는 것도 참 많다. 나는 물 먹는 하마도 아닌데 물을 좋아해 물을 밥보다 많이 먹는다. 특히 찬물을 너무 좋아한다. 그런데 음식이 찬 건 무척 싫어한다. 조금만 음식이 식어도 나는 헛구역질이 난다. 엄마가 보기에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다.
저녁에, 엄마가 친구들과 선생님은 어땠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괜찮은데 나를 괴롭히던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다고 말했더니, 엄마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친구 이름을 말했더니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그 괴롭힘 당한 일을 말하고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자 엄마는 바로 선생님께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냥 하루만 더 견뎌보겠다고 했다. 그러니 오늘은 선생님께 말하지 말라고.
개학날부터 엄마가 선생님께 전화하는 게 왠지 내가 지질해 보인다고 생각했으니까. 내 잘못은 없지만 애들 사이에서 엄마가 선생님한테 자주 전화하고 그런 건 좀 별로라고 생각하는 걸 나는 안다.
다음 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싫고, 화장실에서 나오기도 싫고, 밥을 먹고 싶지도 않았다. 늦지 않게 학교에 가라는 엄마의 말에 알았다고 했지만 소파에 누워 내내 시계만 쳐다보다가 지각을 간신히 면할 정도의 시각에 도착했다.
정일이는 거의 꼴찌로 교실에 들어온 나를 히죽거리며 쳐다보았다.
"뭐냐? 지각생!"
"지각 안 했거든?"
나는 나름 목소리에 힘을 주어 제대로 말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10분의 등굣길에 '오늘은 절대 가만있지 말아야지... ' 몇 번이나 다짐을 했다. 그게 쫌 도움이 된 것도 같았다. 적어도 난 할 말을 확실히 큰 목소리로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수업 시단이 되자 또 등을 쿡쿡 찌르고, 쉬는 시간이 되면 팔을 치고도 갔다.
그때마다 어제보다는 좀 더 세게 말했지만 두어 시간이 지나면 또 그랬다.
그렇게 하루가 가는가 싶었는데 하교 전 선생님이 나와 정일이를 불렀다.
"선생님도 눈이 있어. 다 보인다. 너희들은 당분간 멀리 떨어져 있어야겠다."
선생님이 어떻게 안 건지 몰라도 나를 맨 앞자리로 앉으라고 했다. 정일이는 내 자리에서 대각선 맨 끝자리로 정해줬다. 그리고 나를 먼저 집으로 가라고 하고 정일이만 남겼다.
선생님은 어떻게 안 걸까... 신기하다. 오늘 담임 선생님 수업도 없었는데 말이다. 누군가 말했을까, 그럴 리 없다.
하교하는데 엄마 전화가 왔다.
"오늘은 좀 어땠어? 그 애가 또 그러던?"
"몰라요. 선생님이 자리를 바꾸고 걔는 남겼어요."
"그랬구나. 사실은 엄마가 전화했어. 초등학생 때 네가 그 애로 인해 힘들었던 거 엄마가 알아. 그때 너를 엄마가 더 챙기지 못했잖아. 지나 보니 그런 애는 처음부터 담임선생님이 아셔야 해. 그게 너와 그 아이 그리고 모두를 위한 거야."
"네"
엄마가 선생님한테 전화를 해준 건 다행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나는 정일이가 또 나를 괴롭히려 작정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엄마 전화를 끊고 집으로 가는데 엄마가 초등학생 때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손톱을 세우고 으르렁대거든 두 눈을 똑바로 쳐다봐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면 네가 이긴 거야
그런 애는 두려움을 들킬까 봐
목소리부터 키우거든
악을 쓰는 건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하다는 뜻이거든
자기 말을 들어주는 어른이 없다는 말이거든
그런 친구를 만나거든
별 거 아닌 걸 해내더라도 엄지 척을 올려줘'
사실 엄마가 했던 말이 통하는 애도 있었지만 정일이 같은 애는 통하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 나는 선생님 말에는 늘 거꾸로만 하고 악을 쓰는 애가 시간이 지나면 안 돼 보이기도 했다. 뭔가 마음이 힘들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힘으로 뭐든 해결하고 약한 애들만 골라 괴롭히는 정일이 같은 애한텐 뭘 잘해도 절대 칭찬해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게 내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흘 째, 선생님이 어떤 말로 정일이에게 주의를 줬는지 내 옆에 오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담임선생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정말 키가 작다. 나만큼이나. 선생님의 능력은 키에서 나오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나도 작지만 나는 얼마든지 힘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힘은 몸에서 나오는 게 아니란 걸 나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우리 선생님을 만나고부터.
1년 후, 확실한 근거 없이 대한민국 어른들이 제일 무서워한다는 중2가 되었다. 나는 그날 일곱 통의 문자를 받았다.
"너 키 어떻게 컸어?"
"모르지"
"야, 너 뭐 먹었냐? 운동했냐?"
"뭐 한 건 없고 내가 클 때라 큰 거래"
초등학생 때부터 나만 보면 언제 크냐며 묻던, 내 키보다 한 뼘 반은 더 컸던 재호한테서 제일 먼저 문자를 받았다. 내가 친구들한테 1년 전에 했던 물음이다.
아직, 나는 반에서 작은 편이지만 일 년 전에 비해 많이 컸다. 작은 키로 서너 번째였던 내가 이만큼이라도 큰 것은 유전자와 잠이라 생각한다.
중2, 나의 최대 목표는 키크기다. 식당에서 밥 먹을 때 "포크 줄까?" 이런 말 안 듣는 거다.
덩치 크다고 몸자랑만 하는 애들에게 기죽지 않는 나를 만들어가는 거다.
누구든 나를 얕잡아 보지 못하지 못하게 하려면 몸과 마음 근육을 함께 길러야 한다고 했다. 키 작은 우리 선생님이 그랬다. 내가 밤에 친구들 몰래 농구를 하러 가는 이유다.
키 작다고 농구 못한다는 편견을 깨는 것,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