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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나무 Apr 06. 2024

두 번째 사춘기

고양이를 구하고 나서 알게 된 것

"얘야, 네가 작으니까 네가 꺼내야 할 것 같은데? 벌써 세 시간째 저기에서 울고 있어. 에어컨 환풍기가 돌아가면 거기에 더 끼일까 봐 에어컨도 못 켜고 있단다. 오늘 장사도 못하게 생겼네. 내가 에어컨을 켜면 팬이 돌아가서  새끼 고양이는 여기서 죽을지도 몰라... "

분식집 아주머니는 나와 고양이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내 덩치 두 배가 되는 시후(가명)가 환풍기와 벽사이로 들어갈 순 없다. 아주머니는 나라면 충분히 고양이를 꺼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아주머니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시후가 먼저 말했다.

"그래, 너는 들어가고도 남겠다."

나는 초등학생 때 내게 떡볶이를 두세 개 더 얹어줬던 아주머니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 살금살금 환풍기와 벽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새끼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울음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다행히 버둥대지도 않고 얌전히 있어 고양이를 두 손으로 잡아 단번에 가슴팍에 안고 좁은 틈새를 빠져나왔다.

아주머니와 시후가 환호성을 질렀다. 아주머니는 내게서 고양이를 받아 도로를 가로질러 공원으로 데려가 버드나무 아래에 놔주고는 얼른 돌아왔다.


"하준아, 근데 너 고양이 좋아해?" 시후가 물었다.

나는 망설였다. 좋아한다고 말해야 하나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해야 하나... 이럴 땐 확실한 중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 초등학생 때 들고양이랑 놀고 나서 얼굴이 붓고, 가렵고, 재채기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약을 먹고 나아졌지만 그 뒤로 엄마는 고양이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한다.

나는 고양이들이 하는 행동이 재밌어서 요즘도 먼발치에서 관찰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고양이로 인해 알레르기가 생긴 뒤로는 좋아한다고 대답은 잘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늘 새끼 고양이를 꺼내준 건 아주머니의 부탁도 부탁이지만 새끼 고양이가 불쌍해 보여서다. 

나는 오래 전에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었을 때 병원에 가지 않고 약을 먹고 나아졌으니 빨리 집에 가서 알레르기약을 먹으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고양이를 꺼내면서도 나는 마음속으로 엄마에겐 말하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다.


집근처에 다다랐을 때, 시후가 아이스크림을 먹자며 편의점에 들르자 했는데 나는 다음에 먹자 하고 부리나케 뛰어 집으로 왔다.

오자마자 꼼꼼히 손을 씻고 샤워를 했다. 그리곤 약장 서랍을 열어 약을 찾아보았다. 

앗, 그런데 알레르기약이 빈 껍질뿐이다. 아... 엄마에게 말할 수도 없고... 나는 당황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런 마음이 들었다.

'손을 깨끗이 씻었으니 괜찮을 거야, 잠깐이니 괜찮을 거야, 착한 일을 했으니 하늘이 나를 도와 알레르기 증상이 안 나타날지 몰라' 

그렇게 내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겁이 나서 냉동실에서 얼음팩을 꺼내와 소파에 누웠다. 가려울지 모른다는 생각을 없애려고 휴대폰 게임에 몰했다. 물을 마시는 게 도움이 될지 몰라 벌떡 일어나 물을 두 컵이나 마셨다. 

게임을 신나게 하다 보니 두어 시간이 훌쩍 갔다. 휴대폰 카메라로 얼굴을 찍어서 보니 눈이 붓지 않았다. 가렵지도 않았다. 재채기도 안 났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사라진 걸까... 멀리서라도 고양이를 자주 관찰해서 면역력이 생긴 걸까...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엄마가 돌아와 얼마나 더우면 얼음팩을 들고 자냐며 미지근해진 얼음팩을 냉장고로 가져갔다.

나는 벌떡 일어나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괜찮아?"

"뭐가? 어디 아프니?"

"아니... 그냥 더워서"

"더우면 에어컨을 켜고 있지 그랬어?"

엄마가 에어컨 전원을 눌렀다. 나는 실실 웃음이 났다.


다음 날, 학교 가는 길에 일부러 공원으로 에둘러 갔다. 

하루 전 아주머니가 데려다놓았던 새끼 고양이가 버드나무 옹이에서 고개를 쏙 내밀었다. 깜짝 놀랐다. 버드나무 아래 어미고양이도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새끼 고양이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여기저기 풀숲에서 세 마리나 더 나왔다.

누군가 먹이와 물을 챙겨준 흔적도 보였다. 내가 꺼내 준 고양이가 어느 고양인지 알 것 같았다. 네 마리 전부 하얗고 검은 얼룩무늬를 가진 고양이었지만 왠지 제일 처음 옹이에서 얼굴을 내민 고양이가 어제 그 고양이 같았다. 나는 왠지 내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이 우쭐해져서 학교로 향했다.


누군가를 구한다는 것, 꼭 사람이 아니어도 이런 느낌이란 걸 어렴풋이 느긴 것 같다.


내게 손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 동정심과 약간의 인정욕구가 발동해 고양이를 꺼낸 것이다. 내게 올지 모르는 위험요소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내게 치명적인 건 아니라서 나는 용기를 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예측한 것과는 다르게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또 알게 된 게 있다.


지금 손해라고 생각했던 게 꼭 나쁜 결과만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

세상엔 겪어보지 않고 예측만으로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엄마에게 꼭 말하지 않아도 큰 일 나지 않는 것은 있다는 것,

(이 일 나중에 말해서 단을 좀 맞았지만 또 약간의 칭찬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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