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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나무 Apr 14. 2024

두 번째 사춘기

죽음은 끝이 아닌 과정

2022년 봄, 코로나 발생자가 최고치에 달해 학교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보건교사를 하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긴장으로 보내던 어느 날, 출근해서 창문을 여는데 창가에 두었던 꽃기린 화분에서 새끼손톱  꽃이 핀 걸 발견했다. 물도 제때 안 주고 방치하다시피 놔둔 꽃기린이 3년 만에 꽃을 피운 것이다.


심었던 날 그대로인 것 같았던 꽃기린이 꽃을 피우고 나니 곁가지가 풍성해졌다는 걸 알았다. 식물이 곁가지를 내는 동안에는 키가 덜 크게 마련이다. 나는 그제야 꽃기린의 키와 꽃만을 보려 했단 생각이 들었다.


씨앗을 뿌리든 작은 식물을 심든 우리는 꽃은 언제 필까? 열매는 언제 열리는 거야? 이런 조급한 마음을 가진다. 그건 꼭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이미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암튼 나는 꽃기린에게 조금 미안해하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앙증맞은 꽃잎 두 장이 바쁜 아침에 잔잔한 위로를 주었다.


나는 그 바쁜 아침 시간에 꽃 핀 꽃기린 사진을 찍어 둘째 아이에게 보냈다. 바쁘다고 30초의 시간이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시간이 지나면 식어버리는 감동의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 후 톡이 와 있었다.

"엄마? 드디어 꽃이 핀 거예요? 햄톨이가 꽃으로 살아난 겁니까?"

"그래, 죽음이 끝이 아니네, 과정일 뿐이지. 햄톨이는 여기 살아있는 거지. "


둘째 아이가 초등학생 때 햄스터를 키웠는데 1년 반 정도 살고 죽었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온 후 죽어있는 햄톨이를 발견한 아이는 내게 울먹이며 전화를 해서는 '햄스터 화분장'을 해주자고 했다.

내 마음 같아선 그냥 화단에 묻어주면 좋겠건만 말이다. 하지만 아이는 제가 키운 햄스터를 그냥 떠나보내는 게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햄아이가 유튜브 링크를 내게 보내줬다. 햄스터 화분장'은 화분에 햄스터를 묻고 식물을 심는 것이라고 했다.


그날 퇴근길에 화원에 들러 작은 꽃기린과 새 화분을 사갔다. 그리곤 죽은 햄스터와 먹이를 화분 속에 넣고 흙을 덮고 꽃기린을 심었다.

그렇게 심은 화분을 아이는 내게 특별히 잘 보살펴달라고 했다. 나는 아이의 부탁을 받아들여 햇살이 잘 드는 창가 보건실에 둔 것이다.

그렇게 이제나저제나 꽃 피길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던 화분에서 꽃을 피운 시기가 우연히도 내가 가장 힘들었던 2022년, 3월이었던 것이다.


제가 시간을 들여 길들인 것들엔 애정을 가지게 마련이고 언가 그것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둘째 아이는 햄스터를 키워봄으로써 그걸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


우리 집에서는 햄스터를 두 번 키웠는데 첫 번째는 첫째 아이가 초등학생 때고,

두 번째는 둘째 아이가 초등학생 때다.


첫째 아이는 제가 키우던 햄스터가 새끼 치는 것까지 보았다. 그렇게 키우던 햄스터 가족이 며칠 가족 여행을 다녀왔더니 모두 죽어있었다. 그때, 큰 아이는 새끼 햄스터들의 죽음을 보고 돌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 생명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안 것 같다. 그날 이후, 다시는 그 어떤 동물도 키우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몇 년 후, 둘째 아이가 저도 햄스터를 한 마리만 사달라고 떼를 써서 또 사주게 되었는데  1년 반을 살고 어느 날 문득 떠났고, 그 햄스터를 꽃기린 화분장으로 한 것이다.


햄스터를 키우며 알게 된 것은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냄새와 소리가 있어 집안 공기를 햄스터 냄새로 바꿔놓고, 밤마다 달그락달그락 쳇바퀴를 굴려서 자신의 존재를 알려줬다.

아이들은 각각 햄스터의 주인으로서 지내며 작은 생명체라도 매일 돌봐야 한다는 것, 죽음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아이들이 햄스터를 돌보고 죽음을 대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잠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아이들에겐 각각 서로 다른 추억이 되었다.  나에겐 두 아이와 나눈 두 배의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나는 그걸 기억하고 싶어 아이들이 햄스터를 키우며 했던 말과 아이들이 그때 가졌을 상상력을 추측해 시로 적어두었다.


<나는 지금 햄스터를 사러 갑니다>


집 안에는 쳇바퀴와 모래 목욕제를 넣어줘야지 숨을 만한 곳은 동생 양말이 좋겠다 눈이 좋아지게 당근은 매일 줄래 새끼를 여러 마리 낳으면 2층 집으로 넓혀줘야지 그날은 엄마 몰래 양말 속에 잣을 넣어 줄래 새끼들이 자라서 또 새끼를 치면 3층 집으로 넓혀줘야지 만약 그중 한 마리라도 탈출에 성공한다면 동생 가방에 들어가 학교까지 함께 가면 좋겠다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와 소파에서 잠든 아빠 발을 살살 간지럽혀도 좋겠다 아침마다 잔소리를 반찬으로 차려놓고 출근하는 엄마의, 구두에서 나오면 더 좋겠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

 두 마리만 고르는 거야.”


“암수로 주세요!”



<소원이 이루어지다>


집을 나온 햄스터가

신발에서 나와, 엄마를 놀라게 했지

한 마리는 소파 밑에서

또 한 마리는 책꽂이에서 나왔네


우리 집이 햄스터 천국이 된 거 같다며

깔깔대던 동생이

곳곳에 먹이를 놓아두었지


엄마는

햄스터들을 찾아다니느라

종일 바빠서

잔소리할 겨를이 없었지


역시,

암수로 사길 잘했어



첫째 아이는 미리 계산을 해두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 제가 계획했던 대로 새끼 낳은 걸 봤다.  햄스터 집에 동생 양말을 넣어주고, 당근도 주었다. 그렇게 애지중지 돌보던 햄스터들이 새끼를 쳤고 나는 약속한 대로 2층 집을 사주게 되었다. 새끼들이 태어나서는 실제로 열린 햄스터 집 문으로 탈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햄스터를 못 찾을까 봐 전전긍긍했고 아이들은 먹이로 유인하느라 한바탕 소동을 피운 적이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때 일을 생각하면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조막만 한 햄스터가 주고 간 아이들과의 추억은 소중하다.



<햄스터 장례식>


햄톨이가

바퀴 굴리기를 멈췄다


물 주고 밥 주고

늘 하던 대로 했는데,

떠났다


새 화분에

흙을 채우고

햄톨이를 누이고

톱밥 한 줌 먹이 한 줌 올리고

다독다독 흙으로 덮어주고

꽃기린을 심었다


'햄톨아, 이제

깜깜한 밤에 바퀴를 굴리지 않아도 돼

너를 햇살 드는 창가에 둘 테니,

기린으로 자라는 꿈을 꾸렴

보름달이 뜨는 날엔

잊지 않고 물을 줄게


안-녕, 햄톨아.’

안녕? 기린아!


모든 생명은 어느 날 문득, 예고 없이 떠난다. 하루살이처럼 하루를 삶 전부로 살고 떠나는 생명이 있는가 하면 사람처럼  길게 사는 생명도 있다. 하지만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하루살이나 사람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햄스터나 사람이나 똑같은 생명체일 뿐이다.


내가 뭘 잘못해서 내가 돌보던 생명체나 가족이 떠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섭리일 뿐이다.  그러니, 지금 나와 가까운 누군가가 떠났다고 깊은 슬픔에 빠져 자신의 일상을 방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먼저 떠난 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자신에겐 더더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먼저 떠난 사람이 남기고 간 좋은 것들을 내 삶에 새기면 된다. 그 사람을 기억해 주면 된다. 그러면 나는 한층 성장하고, 떠난 분은 영원히 내 삶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햄톨이가 꽃기린으로 다시 살아나 꽃을 피운 것처럼, 지금 상실의 슬픔을 겪는 누군가가 있다면 곁가지를 내는 시기다. 멈춰있는 시간이 아니다.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겪은 이는 성장한다. 그런 시간을 보낸 후엔 분명 꽃 피우는 날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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