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아리(가명)는 5학년 때 보건교육 첫 시간에 알게 된 아이다. 그날은 성교육 시간이었다.
나는 성교육 첫 시간에는 아이들이 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수업에 앞서 마인드 맵으로 '성'하면 떠오르는 단어나 문장을 써보도록 한다.
그날 아리는 책상에 필기도구 하나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비뚜름하게 앉아 얼굴을 찡그린 채 나눠 준 포스트잇만 만지작거리던 아이였다.
"아리는 왜 아무것도 안 적어? 아무거나 써도 좋아. 정답이 있는 게 아니거든."
묵묵부답이다. 연필이 없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선생님, 아리는 원래 아무것도 안 해요, 그리고 말도 안 해요"
나는 달리 도리가 없어 아리를 그대로 두고 수업을 했다.
'성'에 대해 아이들이 쓴 포스트잇을 주제별로 칠판에 붙였다. 아이들이 적은 단어는 성별, 월경, 생리, 몽정, 변성기, 키스, 포옹, SEX, 아기, 이성교제, 결혼, 사춘기, 성폭력 등이었다.
나는 성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설명을 하고, 무엇보다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성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우주에 하나 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난 존재이기에 소중하며 공부, 외적 조건, 나라, 피부색 등에 따라 생명의 가치는 다를 수 없다는 걸 힘주어 말했다.
내가 이 부분을 설명할 때 아리가 잠깐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아이의 눈을 보고 말했다. 여러분은 누군가의 평가에 따라 가치가 생기는 존재가 아니라 그것과 무관하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자고... 내 몸 자체는 고유성을 가진 우주임을 기억하자고 말이다.
그렇게 성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것으로 40분의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아리가 나를 따라 복도로 나왔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궁금한 것이 있느냐고 내가 물었더니 아리는 내가 허리를 잔뜩 구부려 귀를 입 가까이에 가져가야 겨우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저... 말할 게 있어요!"
"그래? 어떤 말인데 해보렴!"
"우리 엄마는요. 필리핀 사람이예요."
"그렇구나. 근데 그게 왜?"
"....."
아리는 뭔가 말할 듯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아리야 혹시라도 더 하고 싶은 말이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수업 마치고 보건실에 와서 말해도 좋아."
이후 아리가 보건실에 오지는 않았다. 근데 아리는 왜 나에게 굳이 엄마에 대해 말을 한 것일까... 지금도 잘은 모르겠다.
아리는 수업 시간에 어떤 활동도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무언가 설명할 때는 나를 쳐다보기에 이르렀다.
아리가 6학년이 되고 나서 나서 얼마 후, 1교시도 시작 전에 복도를 지나가던 한 선생님이 복도에서 울고 있는 아리를 보건실로 데려왔다.
"선생님, 얘가 복도 구석에서 교실에 안 들어가고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라며 계속 울길래 교실에 담임선생님도 없고 걱정이 되어서 우선 진정시키려고 여기로 데려왔어요."
아리는 소파에 앉아 고개를 무릎에 파묻고 한참을 훌쩍거렸다.
울음이 그칠 무렵 조심스레 이유를 물어보았으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1시간을 데리고 있다가 담임교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교실로 데려다주었다.
그날 오후에 담임선생님이 보건실로 와서 답답함을 토로하며 말했다.
"말을 해야 제가 뭘 도와주죠.... 답답해 죽겠어요. 도무지 말을 안 해요. 집에서는 말을 하기도 한다는데요. 근데 어머니도 말이 잘 통하지 않고..."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담임선생님은 아리가 친구가 한 명도 없어서 그랬다며 한 아이와 친구를 맺어줬다고 했다.
아리에게 친구가 생기고 나서 아리의 얼굴이 전보다 밝아지고 가끔 말도 했다. 보건실에 올 때도 항상 단짝 친구와 함께 오곤 했다. 와서는 어디가 아프다는 말도 곧잘했다.
그렇게 둘이 꼭 붙어 다니던 단짝이 중학생이 되며 각각 다른 학교로 가게 됐고 아리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고 했다.
3월, 아리가 교복을 입고 나를 찾아왔다. 심심하다며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집에 가도 아무도 없고 학교에서는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는 것이다. 휴대폰만 하는 것도 지겹고 학원을 가지 않아 시간이 남는다고도 했다.
말하자면 아리는 친구가 없어 외로운 것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너무 심심해서 왔어요."
"아리야, 중학교는 어때?"
"네, 진서(가명)랑 다른 학교 가게 돼서 이제 친구가 없어요. 중학교도 뭔가 심심해요. "
"아리가 먼저 친구를 만들려고 노력해 본 적은 없어? 어떤 노력을 하면 친구가 생길까하고 생각해 본 적은?"
"근데요.... 친구들은 저를 싫어할 것 같아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그냥 저는 친구들과 다르니까 왠지 저를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아서 먼저 말을 못 할 것 같아요."
"아... 어디가 다르다는 거지?"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서요."
" 아리야, 네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서 네가 싫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아니요."
"그렇다면 그건 불필요한 생각이네. 아리 스스로 만들어낸 생각인거지. 사이버상이라든가 지나가는 누군가로부터 혹시라도 그런 차별적인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면 그게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지만, 현재에서 아무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는데 아리가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건 현실을 왜곡해서 보게 만들 수 있단다.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 사람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지. 그러니 아리가 그런 사람의 눈치를 보고 지레 짐작해 네 자신을 스스로 깎아내릴 이유가 없는 거지"
"네..."
"아리는 아리 자체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란 걸 잊지 말길 바란다. 혼자이든 친구가 많든 내 존재가 어디에서부터 왔건 그건 그 사람의 가치를 좌우하지 않아. 그걸 명심해"
"네"
그렇게 아리는 3월부터 한 달에 한두 번 1학기 내내 나를 찾아 왔다. 아무 때나 불쑥불쑥 오길래 나중에는 요일을 정해주기도 했다.
아리는 하고 싶은 것도, 즐거운 것도 별로 없다는 무기력한 아이다. 집에서도 휴대폰 보는 것과 텔레비전 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날엔 그래도 뭔가 관심 있는 것은 딱 한 가지만 찾아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더니 주뼛주뼛 하더니 휴대폰 갤러리를 열어 보여준다.
갤러리에는 중학생이 되어 찍은 교정의 나무와 꽃 사진들, 겨울에 엄마와 필리핀에 가서 친척들과 찍은 사진이 잔뜩 들어있었다.
"아리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니?"
"네, 예쁜 사진 찍는 거 좋아해요."
"그렇구나. 그럼 좋아하는 게 있는 거지. 선생님한테 찍은 사진에 대해 소개해줄 수 있어?"
"네!"
아리는 말을 시켜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옆으로 흔드는 것으로 대부분의 의사를 표현하는 아이다. 그래서 내가 혼자 말을 하기 일쑤였는데 사진 갤러리를 열자 사진에 대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또박또박 그곳이 어딘지 언제 찍은 건지를 설명해줬디.
외가의 전통가옥에서 찍은 사진, 많은 친척들 소개며 필리핀의 더운 날씨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필리핀 외할아버지가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나는 기울어진 인물 사진을 찍을 때 균형감 있게 찍는 법, 대칭인 것을 찍을 때 더 안정적인 느낌이 들게 찍는 법 등등 아리의 사진을 보며 좀 더 괜찮은 사진을 찍는 법을 아는 대로 설명해 줬다. 아리는 그때만큼은 눈이 똥그래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도 아리는 몇 번 더 나를 찾아왔다. 그때까지 친구가 생기지 않았고 너무 심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학교 옆에 큰 도서관이 있다길래, 도서관에서 시간을 지내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책 읽는 건 흥미가 없다고 했다.
나는 보건실에 있던 그림책을 보여주며, 아리에게 말해줬다. 친구가 없는 시간엔 책을 읽으며 기다려보라고, 분명 친구가 생길거라고... 또 나의 중학생 시절도 이야기해줬다.
"선생님도 너만할 때 글이 길어지면 생각이 딴 데로 흘러 책에 집중하기 어려웠단다. 끝까지 읽은 책이 손에 꼽을 정도지. 지금 어른이라 다를 것 같지? 몇 번을 반복해야 기억이 난단다. 밑줄 긋고 옮겨 적어야 겨우 몇 문장 내 것이 되지. 너만 할 때까지 책을 몇 권 읽지도 못했단다. 꼭 글밥이 많은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단다. 이런 그림책을 읽어도 좋아. 사진을 잘 찍는 아리에겐 이런 그림책이 제격이겠구나. 사진을 찍다 보면 그림책에 있는 그림과 닮은 사진을 찍을 때가 있더구나, 책은 많이 읽지 않아도 돼. 눈길이 가는 아주 쉬운 책을 고르려무나. 예를 들면 이런 책?"
그때 내 손에 무심히 잡혔던 책은 김장성, <민들레는 민들레>라는 책. 아리와 함께 그 책을 펼쳤다.
"민들레는 혼자서도 민들레, 둘이어도 민들레
아리는 혼자서도 민들레, 둘이어도 민들레
아리는 친구가 없어도 아리, 친구가 있어도 아리"
아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후 아리는 2학기 동안은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중2 중간고사 첫시험을 마치고 초등학생 때 단짝이던 아이와 함께 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물었더니 그럭저럭 지냈다고 했다. 그럭저럭이면 잘 산 거야, 라고 말해주었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보는 시험이라 엄청 떨렸다고 했다. 좋아하는 과목은 영어, 과목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선생님이 좋아서라고 했다. 2학년이 되어서 반별 체육대회를 한 일, 현장학습을 간 일 등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곤, 집에 갈 시간이 되자 기말고사 마치고 다시 오겠다고 한다. 그러라 그랬더니, 보건실을 나가던 아이가 뒤돌아와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선생님, 한번 안아봐도 돼요?"
"그러자. 어디 한 번 안아보자!"
나는 아이를 꼭 안아보았다. 따스함이 느껴졌다. 아이가 돌아간 후 의자에 앉으니 아이의 웃음소리가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
다음에 오면 내가 먼저 꼭 안아줘야겠다.
2023년 4월 서울에서 중학생이 연속적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고가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매년 평균 164.4명의 청소년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최근 초등학생 자살 건수도 늘고 있다.
청소년 우울증이 급증하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외로움을 ‘긴급한 세계 보건 위협’이다라고까지 규정했다. 외로움은 매일 담배를 15개씩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로움을 준다고도 했다.
그러니, '심심해서 죽겠어요''라는 말은 '외로워 죽겠어요' 라는 말일 수 있다. 그런 아이가 누군가에게 다가갈 때 잠깐의 응급처치를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아리처럼 대화의 상대가 없는 아이의 말을 잠깐 들어주는 것, 내가 시간이 되지 않으면 그걸 들어줄 친구든 어른이든 찾아주려 노력하는 것은 외롭다는 아이에게 주는 작은 응급처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외롭다'를 '심심해 죽겠어요' '죽고싶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선생님 한번 안아봐도 돼요?" 라는 말은 자신을 안아달라는 말로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