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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진 Jul 17. 2021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독서 리뷰를 자주 보는 편이다. 달과 6펜스 완독 후 인터넷에서 몇몇 독서 리뷰를 읽어보았다. 통상적인 해석에 따르면 '달'은 스트릭랜드가 그토록 간절히 열망했던 순수한 이상이며, '6펜스'는 달과 대조되는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세상의 모든 것, 즉 현실을 빗대었다고 한다. 이러한 해석은 손쉽고 명확하다. 


주인공인 스트릭랜드는 증권 중개인으로서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을 그리겠다며 아내와 자식들을 떠난다. 자신이 누리던 모든 안락함과 안정을 버려두고서. 그는 지나치게 완고하고, 다소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음 하며 (폭력은 물리적인 것만은 아니므로) 현실에 깊게 발을 딛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비웃는다. 


스트릭랜드는 모든 걸 내버리고 걸인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린다. 그러다 지독한 열병에 걸리게 되는데, 스트릭랜드의 미술적 천재성을 알아본 스트로브가 그의 집을 찾아가 다 죽어가는 스트릭랜드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스트로브는 자신의 처에게 스트릭랜드를 정성스레 간호하게 한다. 


스트릭랜드는 스트로브 덕분에 결국 목숨을 구했지만 그는 감사하기는커녕 더크 스트로브를 혐오하고 증오한다. 이상을 좇지 않는 자들을 혐오하고 경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자신이 내세운 이상향을 향해 고집스럽게 나아간다. 누군가는 이런 그의 모습에서 작가가 너무 현실과 뒤떨어진 인물을 그렸다고 비판한다.


현실과 이상은 매우 다르다고. 결국 세상의 많은 것들을 꾸려 나가는 이들은 현실에 몸 담고 있는 그들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덧붙여 이렇게 생각해본다.


너무나 멀리, 너무나 초월적인 존재로서 그 실체조차 가늠되지 않은 진짜 '달'의 모습처럼, 팍팍한 현실에서 자신의 꿈과 이상을 좇는 것은 멍청해 보일지도 모른다. 특히 모든 가치가 결국 돈이라는 경제적 이윤으로 환원되는 요즈음, 21세기의 현실에서는 말이다. 


숨을 쉬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시대에 꿈을 말하는 자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란, 얼마나 차갑고 모진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터무니없고 헛된 공상 같은 꿈들이, 우리에겐 필요하고 또 절실하다.


밤하늘의 달이 결코 사라져서는 안 될 존재인 것처럼. 비록 많은 꿈들이 결국 쓰레기통에 버려지거나 수많은 이유로 좌절되겠지만 그러한 고단한 과정 자체가 결국 우리의 삶이기에 놓쳐버려서는 안 된다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달과 6펜스 본문 중에서

나도 그런 삶이 갖는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잘 정돈된 행복이 있었다. 하지만 내 혈기는 좀 더 거친 삶의 방식을 원했다. 그처럼 쉽게 얻을 수 있는 기쁨에는 무엇인가 경계해야 할 점이 있는 것 같았다. 내 마음속에는 더 모험적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변화를, 그리고 미지의 세계가 주는 흥분을 체험할 수만 있다면 험한 암초와 무서운 여울도 헤쳐나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 (36p)


당신 생각은 왜 그래?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가 조약돌처럼 그냥 버려져 있다고 생각해?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 없이 주워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니야.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아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 (102p)


타히티는 높이 솟은 푸른 섬이다. 깊게 파인 짙은 초록색의 주름은 거기에 고요한 골짜기가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곳 침침한 유곡에 신비가 깃들여있고, 골을 따라 서늘한 시냇물이 졸졸거리면서 혹은 찰랑거리면서 흘러내린다. 이들 무성한 나무 그늘 아래 태고의 삶이 아직까지 태곳적 그대로 영위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여기라고 슬픔과 두려움이 없을까. 하지만 그 느낌은 금방 사라져 버렸고 오히려 현재의 즐거움만이 더 뚜렷이 느껴질 뿐이다. 마치 사람들이 광대의 재담에 웃음을 터뜨릴 때, 광대의 눈에 어린 슬픔이 그러하듯. (227p)


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은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기사 작위를 가진 사람에게 내가 어찌 감히 말대꾸를 하겠는가. (2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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