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유진 Jul 25. 2021

울 준비는 끝났다

Sailing in Silence 09. Lonely Sailing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사실은 많다. 나는 몹시 잘 운다. 특히 기분이 상했거나 몸이 아플 때 침대에 얼굴을 처박고 운다. 남편은 너무 자주, 잘 우는 나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는 게 나쁜 걸까? 타인을 해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과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눈물은 무해하다. 악취를 풍기거나 얼굴을 더럽히지도 않는다. 볼에 몇 가닥 흘러내린 눈물은 몇 분이 되지 않아 이내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눈물자국을 지우는 것도 어렵지 않다. 휴지가 없다면 소매 끝으로, 그것도 어려우면 두 번째 손가락 끝으로 꾹꾹 누르기만 하면 된다. 


눈물을 흘리는 것만큼 가성비 넘치는 행위가 있을까. 울적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이보다  효과적인 것은 없다. 거창한 준비물도 없다. 굳이 필요하다면 부드러운 휴지 몇 장 정도. 그러고선 그냥 울기 적당한 곳을 찾아서 고개를 처박고 눈물만 흘리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심리적인 효과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성이나 효율성 면에 있어서도 우는 것은 훌륭한 행위다.  


내가 울고 싶을 때 듣는 음악은 9번 트랙 Lonely Sailing이다. 제목 그대로 망망대해에서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이 느껴지는 트랙이다. 이 음악과 함께라면 버려진 자의 고독과 슬픔에 감정 이입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내 삶이 제일 괴롭고, 힘들고, 버티기 어려운 것이다. 우는 시간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다. 다른 사람이나 상황들은 제쳐두고,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운다. 누가 같이 울어주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     


침대의 오른쪽 구석에 드러누워 푹신한 베개에 고개를 처박는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몸을 애벌레처럼 웅크린다. 양팔로 내 어깨를 다독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갈비뼈 바로 밑 명치끝에 얹혀 있던 일들을 생각한다. 나를 화나게 하고 슬프게 한 모든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복기한다. 


울 준비는 끝났다. 이제 상처가 되어버린 첫 번째 말을 기억한다. 마음이 아프고 서럽다. 질질 눈물을 흘린다. 머리맡에 틀어둔 음악은 계속해서 너는 철저히 혼자이며 너의 슬픔을 헤아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냉정하게 속삭인다.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면 꽉 막혀있던 응어리가 조금씩 풀리는 것이 느껴진다.


흐름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먹을 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울 때도 끊기지 않는 흐름이 중요하다. 어중간하게 울었다가는 애써 쏟은 눈물 콧물이 무효한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눈물과 함께 콧물이 멎을 때쯤, 두 번째 기억을 다시 소환한다. 최근에 계속 나를 괴롭혀왔던 사소한 일들이다. 


다시 울음을 이어갈 수 있게 된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평생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하는 자기 연민에 푹 빠진다. 안구와 콧구멍은 재빠르게 눈물과 콧물을 만들어내어 적절히 내보낸다. 스트레스와 슬픔과 고통은 무색무취의 액체가 되어 흘러내리고 시간은 감정의 배설들을 조용히 마르게 한다.


이제 슬픔을 위한 시간은 끝났다. 휴지로 눈물 줄기들을 닦아낸다. 비록 베갯잇은 축축하게 젖어버렸고 눈알은 빨개지고 눈두덩이도 퉁퉁 불어버렸지만. 이제 나는 행복하다. 베갯잇은 세탁을 하면 되는 것이고 눈알에 뻘겋게 선 핏줄들도 잠잠해질 것이며 눈두덩이도 본래의 두께를 찾을 것이다. 


기분이 상쾌하고 말끔해졌다. 눈물은 말랐고,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불면의 밤은 이렇게 흘러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