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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진 Jan 31. 2022

울분, 필립 로스


그러나 이야기를 할 사람은 없다. 나의 순수, 나의 폭발, 나의 정직, 내 성인기의 진정한 첫해이자 내 생의 마지막 해의 그 극단적으로 짧았던 행복에 관해 이야기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구가 치미는데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죽었다. 말로 할 수 없는 문장, 그러나 말이 되어 나온 문장. “엄마! 아버지! 올리비아! 나는 당신들을 생각하고 있단 말이야!” 아무런 응답이 없다. 아무리 애를 써서 해명하고 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시도해도 아무런 응답도 끌어낼 수 없다. 내 정신을 제외하고는 모든 정신이 사라져 버렸다. 아무런 응답이 없다. 깊디 깊은 슬픔.
                                                                                                                              

제목을 잘 지었다. 마커스의 삶 자체가 내내 울분 터지는 일들의 연속이다. 마커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이다. 한밤중에 전축을 크게 틀어놓는 몰상식한 기숙사 룸메이트를, 애인을 욕하는 룸메이트를, 결코 행하지 않은 잘못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는 교장에 대한 분노를 그 누가 참을 수 있을까?

울분을 참지 못했던 마커스의 인생은 그러나, 지독히도 기구하다. 설사  울분을 토해낸 것이 정당했을지라도. 그를 둘러싼 일련의 불행들은 개별적으로는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촘촘히 엮인 거대한 사슬이 되어 마커스의 생을 옥죈다.

마커스가 내내 두려워했던 최악의 불행-즉 한국 전쟁에 파병되어 전쟁터에서 죽고 마는 비극적인 상황-을 피하고 힘껏 도망치려 하지만, 철저히 실패하고 불행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결국 그토록 우려했던 결말을 맞게 된 마커스. 이것은 그의 운명일까? 이런 운명이 실존한다면, 스스로의 운명을 피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무력한 인간인 우리는 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최선이라 여기며 행한 순간순간의 선택들이 결국 우리를 파멸로 이끈다면, 삶에 최선을 다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마커스의 생을 지배한 까닭 없는 불운과 불행에 울분을 느끼게 된다.

필립 로스,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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