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야기를 할 사람은 없다. 나의 순수, 나의 폭발, 나의 정직, 내 성인기의 진정한 첫해이자 내 생의 마지막 해의 그 극단적으로 짧았던 행복에 관해 이야기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구가 치미는데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죽었다. 말로 할 수 없는 문장, 그러나 말이 되어 나온 문장. “엄마! 아버지! 올리비아! 나는 당신들을 생각하고 있단 말이야!” 아무런 응답이 없다. 아무리 애를 써서 해명하고 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시도해도 아무런 응답도 끌어낼 수 없다. 내 정신을 제외하고는 모든 정신이 사라져 버렸다. 아무런 응답이 없다. 깊디 깊은 슬픔.
제목을 잘 지었다. 마커스의 삶 자체가 내내 울분 터지는 일들의 연속이다. 마커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이다. 한밤중에 전축을 크게 틀어놓는 몰상식한 기숙사 룸메이트를, 애인을 욕하는 룸메이트를, 결코 행하지 않은 잘못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는 교장에 대한 분노를 그 누가 참을 수 있을까?
울분을 참지 못했던 마커스의 인생은 그러나, 지독히도 기구하다. 설사 그 울분을 토해낸 것이 정당했을지라도. 그를 둘러싼 일련의 불행들은 개별적으로는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촘촘히 엮인 거대한 사슬이 되어 마커스의 생을 옥죈다.
마커스가 내내 두려워했던 최악의 불행-즉 한국 전쟁에 파병되어 전쟁터에서 죽고 마는 비극적인 상황-을 피하고 힘껏 도망치려 하지만, 철저히 실패하고 불행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결국 그토록 우려했던 결말을 맞게 된 마커스. 이것은 그의 운명일까? 이런 운명이 실존한다면, 스스로의 운명을 피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무력한 인간인 우리는 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최선이라 여기며 행한 순간순간의 선택들이 결국 우리를 파멸로 이끈다면, 삶에 최선을 다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마커스의 생을 지배한 까닭 없는 불운과 불행에 울분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