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어.
금요일 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텅 빈 거리를 바라보다가 세월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제아무리 지방이래도 도내에서는 인구가 제일 많은 도시였고, 주말 밤이면 사람으로 붐벼서 택시도 잡히지 않던 번화가였던 것 같은데_ 삼삼오오 걸어가는 몇몇의 무리를 제외하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거리가 맞긴 맞는지 헷갈릴 지경이지.
널찍한 거리의 귀퉁이에 마련된 흡연부스에서, 입김인지 연기인지도 모를 잿빛을 내뱉고 있는 밤. 간판의 요란함이라든가 가로등의 불빛은 여전하건만, 거리를 채우는 사람의 숫자는 그때보다 많이도 줄어있었다. 날씨가 몹시도 추워 다들 나오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고,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우물우물 곱씹어봤지만 딱히 만족스런 이유가 되진 않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느 시절에 이 도시의 겨울은 지금보다 더욱 추웠고, 그때의 이 거리엔 추운 날씨가 우스울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곳이었으니까.
텅텅 비어버린 거리에 대한
만족스런 이유가 되어주지 않았다.
그저 오롯이 피부로 체감되는 헛헛함으로, 먼 훗날까지도 이해하지 못할 줄로만 알았던 세월의 뜻을 이해하게 되는 밤. 일순 뉴스나 기사에서 줄기차게 떠들던 문제적인 낱말들이 떠오르긴 했는데, 지금 느끼고 있는 내 감정이 간편하게 정리돼버릴 것만 같아 고갤 가로저었다. 널찍한 거리의 귀퉁이에 마련된 흡연부스에서, 내뱉고 있는 이게 입김인지 연기인지도 모를 잿빛을 내뱉고 있는 밤.
이제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줄어들다 못해 없어져버린 거리를 눈에 담았다. 간판의 요란함이라든가 가로등 불빛은 아직 쓸 만하건만, 그 목적과 쓰임을 잃어버린 존재들의 밤이 다만 애연스럽게만 보이는 지금이었다. 금요일 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텅 빈 거리를 바라보다가 세월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저 오롯이 피부로 체감되는 헛헛함으로, 먼 훗날까지도 이해하지 못할 줄로만 알았던 세월의 뜻을 이해하게 되는 밤.
일순 뉴스나 기사에서 줄기차게 떠들던 문제적인 낱말들이 떠오르긴 했는데, 지금 느끼고 있는 내 감정이 간편하게 정리돼버릴 것만 같아 고갤 가로저었다.
잔속에 담긴 얼음은 조금씩 녹아내리다 이윽고 얼음이었는지도 모르게 되겠지. 다른 해석과 감정을 덧붙일 정도로 유별날 일도 아니거니와, 지극히 당연하기만 한 이행이라는 것쯤은 아는데 가끔씩은:
못 견디게 따가운 감정이 덧붙여질 때가 있어.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곧잘 말하지만, 원래의 나란 사람은 생각했던 것처럼 쿨하진 않은 것 같지. 더는 떼어내기도 어려운 버릇이 된 한숨을 푹푹 내쉬기만 하는 게 멋쩍으니까, 별별 이유를 만들어 또 한 개비 깨물고 있는 담배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채우고 비우는 온갖 일들, 말하자면 계절과 날씨의 변덕에서조차 서글퍼한다는 건 아니겠는데_ 마냥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뭐랄까, 나답지 않은 것만 같아서 요즘은 말이 많이 줄었지. 이런 말이 됐든 저런 말이 됐든지 일단, 담아두고 사는 요즘이라고 하면 나름 정확하게 적어낸 걸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좀 더 지나야 확실해지는 거겠지.
이런 즈음에서 어름어름
생각하고 있는 건
말과 얼음의 닮은 점이야.
잔에 담아두면 녹아내리는 얼음이 그러하듯: 어쩌면 하지 못하고 담아둔 말들 또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중이었는데 요즘의 내 속은 예전처럼 뜨겁진 않더라고. 언제부터 이렇게 식어버리게 된 걸까.
그때 하지 못했던 말들은 꽁꽁 언 채로 내 속에서 나뒹굴고, 한 뼘씩 몇 뼘씩 내려가던 내 속의 온도는 시절마저 얼려버리더라고. 덕분에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주룩주룩 적어내는 밤이 좀 많아졌지.
문득 내일은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계절은 아직 겨울이네. 멀리 떠나서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멀리 떠나서 다신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너희는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어. 이런 마음은 참과 거짓 둘 중에 어느 쪽에 두면 괜찮을까. 아무래도 갈래는 나누지 않는 편이 훨씬 나답겠지. 그때도 그러했듯이 오늘에도 그러하자고 퇴고를 반복하던 마음을 탈고했다.
어쨌든 간에 잔속에 담긴 얼음은 조금씩 녹아내리다 이윽고 얼음이었는지도 모르게 되겠지. 내 속에 꾹꾹 눌러 담은 말들 또한 언젠가는 얼음의 결말을 모방하겠지. 그즈음의 계절은 과연 봄일까 여름일까.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것들의 계절은 모두 여름이니까 여름이면 좋겠는데, 부디 그랬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에라야 알 수 있는 일이겠지.
주어 따윈 저 멀찍이 밀어둔 채 기다리는 중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무얼 기다리는 거냐고 캐묻진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할 불안을 슬쩍 덧붙여봅니다. 안타까운 것들이 많았습니다. 시간이 이만큼씩 지나갔지만 여전히 아쉬운 일도 그만큼 많았고요. 잊어버리는 게 너무 쉬워서 큰일이라는 사람들이 때때로 부럽기도 했습니다.
금방 비워내고 금방 채워내 또다시 비워내는 일이, 내게도 쉬운 일이었더라면 오늘의 색깔은 풍요로웠을까요. 요즘의 사람들이 일컫는 삶이란, 새로운 것들로 덧칠하고 채워내는 삶이라는 것 같은데요. 오늘로 머물러주지 못한 것들을 돌아볼 때마다 안타까웠고, 시간에 희석되지 못한 감정이 너무 많아서 삶을 논하는 찰나가 이따금씩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게 나의 오늘이거늘 어쩌겠습니까.
다르게 사는 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오늘 여기 이곳에 부재중이더라도 필히 지켜내야 될 게 있었습니다. 이러했던 탓에 나의 꿈과 삶이 거꾸로 선 모양*이 됐단 건 잘 압니다. 어쩌면 부러운 것과 부끄러운 것들이 더욱더 늘어갈 내일이겠는데요. 이런 게 나의 오늘이거늘 어쩌겠습니까.
그저 주어 따윈 저 멀찍이 밀어둔 채
기다리는 중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리면 될 일인지도 감도 잡히질 않지만 일단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하지 못했던 말들은 꽁꽁 얼려뒀고, 거슬러 돌아갈 수 없는 시절도 잘 얼려둔 채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멀리 떠나서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멀리 떠나서 다신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당신들은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었으면 했습니다. 내일에서 이어진 또 다른 내일에도 이렇게 바라면 언젠가 다시 그러할 날이 올까요. 그땐 잘 불러주지 못했던 이름을 부르겠다고 약속하려 했는데, 혼자서 하는 약속에는 이미 다짐이란 이름이 있었습니다.
바라보고 있는 텅 빈 거리를 통해
세월의 뜻을 이해하며 다짐했습니다.
그때가 오면 잘 불러주지 못했던 이름을 부르겠다고, 얼음의 결말을 선망하면서 다짐해 봤습니다. 문득 내일은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계절은 아직 겨울이었습니다. 덕분에 주룩주룩 적어내야 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단 사실을 깨단할 수 있었지요.
멀리 떠나서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멀리 떠나서 다신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당신들은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었으면 했습니다. 이런 마음은 참과 거짓 둘 중에 어느 쪽에 두면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갈래는 나누지 않는 편이 훨씬 나다울 거라고 짐작해 봅니다.
어디까지나 그때도 그러했듯이
오늘에도 그러하자고,
제자리걸음 같은 퇴고나 반복해왔던 마음을
탈고했습니다.
*그림씨: 형용사
*진이정,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