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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di Jul 05. 2023

북클럽을 만들다.

유학 가면 뭐 하니

뉴욕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지 6개월 즈음되자, 같은 맨해튼에 살면서도 생각보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학교 친구들이 그리웠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5년 동안 지겹게 건축 학사 과정을 하고도 건축으로 석사공부를 하러 온 친구들은 대부분 저마다의 방법으로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특히, 건축 전공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을 차지하는 스튜디오 과제 자체가 이미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고, 발표하고 또 건축적인 드로잉으로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특징이 가장 확장되는 경험을 한 것이 뉴욕 컬럼비아에서의 석사과정이었다. 학교 프로젝트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 이슈와 뉴스들에 대해 각기 다른 문화의 친구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유학생활의 큰 즐거움이자 배움 거리 었다.


그런데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니 다들 출퇴근을 반복하기에 바쁘고, 가끔 만나면 서로 어떻게 지내냐는 가벼운 인사들만 건네고 더 깊은 대화를 하기에는 시간도 분위기도 잘 따라주지 않았다. 정기적인 모임을 만들고 싶어 고민하다가 나의 룸메이트 A를 비롯한 함께 졸업한 친한 친구들에게 북클럽을 만들자고 제안하였고, 내 우려와는 달리 이 제안은 매우 환영받았다. 마치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찬성하였고, 왓츠앱(미국의 카카오톡) 메신저 그룹방이 만들어졌다.


새해 다짐으로 '책 읽기'는 모든 문화권에 통하는 연례 다짐인가 보다. 마침 다들 '올 해의 책', 혹은 '지난해에 끝냈어야 하는데 아직 붙들고 있는 책'들이 있다고 하였다. 북클럽 제안에 대한 첫 질문은 '무슨 책을 읽어야 하나'라는 것이었다. 나는 굳이 우리 모두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책, 심지어 본인 나라의 책을 읽어도 된다. 국적, 장르를 불문하고 무슨 책이든 본인의 관심사에 따라 읽고, 매 달 한번씩 카페에서 만나 서로의 책을 소개하고, 본인의 생각을 덧붙여 이야기하는 것으로 나름의 규칙을 정하였다.


그리하여, 2월 첫 주, 마침내 첫 번째 북클럽 모임을 하였다. 인원이 너무 많아지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도(?) 첫 모임부터 모두가 참석하지는 않았다. 사실 예상했던 바였고, 오히려 매 달 사정이 생겨 못 온다는 사람들은 생길 것이기에, 여섯에서 여덟 명 남짓 한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나오는 것이 이 모임을 유지하는 데에 딱 좋을 것 같았다. 첫 북클럽에는 나 포함 4명이 참석하였다.


우리 넷이 가져온 이 흥미로운 책들의 조합은 각자 읽는 책을 가져오자는 콘셉트의 장단점을 한 번에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먼저, 가장 큰 장점으로는 내가 평생 읽지 않거나 심지어 들어볼 수도 없는 책을 접할 수 있어, 간접적인 경험의 폭이 상당히 넓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인도인 친구 S가 읽고 있는 책은 ‘Ratan Naval Tata(라탄 타타)’라는 인도 국민기업의 회장에 대한 책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 정도의 유명세를 가진 국가적인 인물이다. 라탄 타타는 대기업 총수이지만 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소외계층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들에 관심이 많았고, 높은 도덕적 비즈니스 관념과 많은 사회환원 사업으로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회장이 되었다. S가 가져온 <I CAME UPON A LIGHTHOUSE>라는 이 책은 Shantanu Naidu라는 어린 청년이 라탄 타타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Shantanu Naidu는 타타 그룹의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던 중, Motopaws라는 스타트업을 세웠는데, 라탄 타타가 이 스타트업의 첫 투자자로 나섰다. Motopaws는 인도의 길강아지들에 형광 목걸이를 입히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는데, 인도에서는 길강아지들이 야간에 차에 치여 죽는 사고가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생명에 대한 작고 소중한 관심이 라탄 타타의 관심을 얻었고, 이 어린 청년과 라탄 타타가 직접 함께 이야기하고, 사업을 구상하면서 나이와 지위를 벗어나 진정한 친구가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S에게 이 이야기를 들으며 두 사람의 순수한 도전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또한 인도 국민으로서 S가 이 이야기에 얼마나 감명을 받았는지, 그리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볼 수 있었다.


물론 모두 이렇게 낙관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중간에는 이 이야기가 결국 라탄 타타의 미화를 생성하려는 또 다른 형식의 잘 쓰인 자서전이지는 않는가에 대한 의심 어린 대화도 있었다. 그리고, 라탄타타가 도움을 주거나 직접 시행하였던 작은 프로젝트들 중에 실패라고 볼 수 있는 프로젝트들도 많았다. 그러나 세상 반대 편에서 아직 누군가는 이러한 시도들에 관심을 갖고 계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이어서 우리는 서로 가져온 책들에 대해 더 이야기했다. 나는 POWER라는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에 대해 소개하였고, 내 룸메이트 A는 새로 읽는 판타지 소설을 소개하며 본인이 어렸을 적부터 팬이었던 작가의 신작을 읽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다른 한국인 친구 K는 코스모스를 읽었다고 했고, 그중 자신이 영감 받았던 구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로 다른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장점은, 이렇게 다른 주제나 장르의 책을 소개할 때마다, 각자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관심 주제나, 같은 주제에 대한 저마다의 다른 경험과 흥미에 대해 토론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코스모스라는 책을 통해 우주의 광활함과 인간의 작은 존재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A를 제외한 우리는 모두 여행을 하거나 자연에 대한 책을 읽는 경험을 할 때 가장 신비로운 경험은 나 자신의 존재가 한낱 우주의 먼지 정도의 존재임을 직면하는 순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비로소 그런 사실에 직면할 때 말로 할 수 없는 어떤 자유로움과 긍정적인 해방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에 비해 A는 본인이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가장 혼란스럽고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순간이라고 했다. 조금이나마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에 이바지한다는 이념 하나로 가장 열심히 살고 있는 친구이기 때문일까. A는 자신의 노력과 현재 열심히 하고 있는 일들이 너무 하찮은 존재라고 느껴지기에 그런 경험이 반갑지 않다고 했다. 이런 순간들에서 친구로서 서로 몰랐던 다른 관점들에 대해 알게 되고, 더 이해하게 되는 계기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북클럽의 또 다른 큰 장점임을 느꼈다. 나의 친구들이 가져온 책을 통해 그 친구들의 관심사를 알게 되고, 그 친구들의 경험에 빗댄 이야기와 감상평을 들으며 결국에는 책을 이해하기보다는 각자가 살아온 경험과 그것에서 비롯된 나와 다른 관점을 듣는 것이 몇 권의 새로운 책을 알게 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자 좋은 추억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만 이렇게 다양한 책을 가져오는 것에 대한 유일한 단점이라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한 책을 소개하고 모두의 경험과 의견을 듣다 보면 토론 주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고, 결국 네 권의 책을 모두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데에 총 3시간 반이 걸렸다. 한 사람의 책을 소개하는 데에 1시간 정도가 걸린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을 때 어떻게 시간을 조절해야 할지가 큰 관건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함께 나눈 모든 이야기들이 서로를 알아감에 있어 의미 있었고 스스로의 관점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앞으로의 북클럽 모임들이 더욱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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