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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di Dec 03. 2023

02. 포토그라피스카 뉴욕_Fotografiska

뉴욕 건축 스케치


뉴욕에서의 첫 직장으로 출근한 날, 퇴근길 지하철역 앞에서 화려한 조명과 장식을 뽐내고 있는 건물을 마주쳤다. 출근길에는 이 건물을 등지고 나오는 지하철역 입구를 이용하기 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다. 이렇게 존재감을 가진 건물이 있었다니. 이 건물은 사진 미술관인 ’Fotografiska Museum in New York’이라고 한다. ‘Fotografiska‘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 주인이 미국인이 아님은 짐작할 수 있다. 포토그라피스카는 세계 최대의 현대 사진 미술관으로 불리는데, 2010 스톡홀름에서 시작하여 뉴욕, 탈린, 베를린 등에 분관을 가지고 있다.


포토그라피스카가 2019년 겨울 이 건물의 주인이 되기 이전, 이 건물은 미션 하우스(Church Missions House)로 불리었다. 미션하우스란 주로 기독교 선교활동을 수행하는 단체나 선교사들의 거주지로 사용되는 건물을 말한다. 이곳은 19세기 후반에 건립되어 미국 뉴욕에서 활동한 기독교 선교 기관의 본부로 사용되었다.



Charity Row

맨해튼에는 다양한 “ROW”들이 있다. 최고급 주거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가장 비싼 동네인 Billionaires’ Row에 이어 이 박물관이 위치한 281 Park 근처에는 큰 자선단체들의 건물이 많이 위치하고 있어, Charity Row 라 불린다. 이러한 입지 때문에 다양한 자선 기관이나 단체들이 이 건물을 탐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과거 이 건물은 한 사기꾼의 눈에 들어 그녀의 재단 건물이 될 뻔한 위기도 있었다.



애나 델비(Anna Delvey) 일화

몇 해 전, 넷플릭스에 뉴욕 상류층 사교계 및 예술계의 큰 사기극 실화를 바탕으로 한 미니시리즈 애나 만들기(Inventing Anna)가 방영되었다. 애나 델비의 실존 인물은 애나 소로킨으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수백만 유로의 자산을 가진 독일 상속녀를 자처하며 각종 사기 범죄를 저질러오다 체포되었다. 애나는 화려한 말솜씨와 부를 과시하는 과감하고 당당한 행동으로 사교계 인사들을 사로잡았고, 그들로부터 투자 명목으로 돈을 받고는 잠적하는 등의 사기를 이어왔다.


타깃을 바꿔가며 호화생활을 연명하던 중, 애나는 ‘애나 델비 재단 (ADF)’를 구상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애나가 실제로 그 재단을 창립하기 위해 매수하고자 했던 건물이 바로 이 건물, 현재 포토그라피스카 건물이다. 애나의 끈질긴 노력에도 대출거부로 인해 결국 그녀의 꿈은 실행되지 못했고, 마침 택시를 타고 지나가던 포토그라피스카 창립자 중 한 명인 Jan Broman가 창밖으로 이 건물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 것이었다.  



네오 르네상스 건축 양식

화려한 사교계와 예술계에서 그토록 주목받고 싶어 했던 애나가 선택한 건물답게 이 건물의 겉모습은 매우 화려하다.  이 건물의 양식은 네오 르네상스 스타일이다. 네오 르네상스란 19세기 유럽에서 있었던 15세기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부흥을 일컫는 스타일이며, 19세기 후반 영국과 미국에서도 유행하였다. 건물의 외관, 파사드는 주로 벽돌이나 석재를 사용하고 있으며 고전 기둥의 양식을 따른다.



애나가 꿈꾸었던 이 건물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녀는 이 6층짜리 건물에 회원제로 운영되는 고급 프라이빗 복합 문화공간을 구상하였다. 고급 미슐랭 레스토랑과 호텔 스위트룸은 물론, 주기적으로 예술 작품을 전시해 감상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하며 그녀의 재단을 운영해 나가기를 꿈꾸었고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돈은 무려 300억 가량이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애나가 사기꾼만 아니었다면, 나는 이 계획안이 좀 더 매력적이게 느껴진다. 현재 사진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내부의 모습은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매우 폐쇄적이며 어둡다. 사진이라는 전시 매체의 특성 때문일까. 전시를 감상하는 동안 특별히 건물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느낄 수 있는 요소는 크게 없었다. 비싼 관람 티켓과 화려한 외부가 주는 기대감에 비해 단조로운 내부 전시 공간이 아쉬웠다.


1층의 카페는 개방적이며 간혹 재즈 공연이나 음악 공연을 하기도 해서 퇴근 후 잠시 머물러 가기에 좋은 공간이긴 하지만 전체 건물에 비해서는 작은 부분이다. 매력적인 건축물이 시민들에게 일상적인 공간이 되어 주는 것도 좋지만, 가끔 이렇게 화려하고 존재감 있는 건물은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아도 되지 않을까. 물론 상류층의 회원제로 운영된다면 내가 그 회원이 되지는 못해 아쉽겠지만 화려한 뉴욕 예술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을 이 건물의 모습을 종종 상상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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