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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움직이는 밭 Oct 11. 2024

오래된 것으로부터 특별함을 그린 카페<언스>


"혹시 여행 중이세요?"

강릉의 관광지를 벗어난 골목길에서 <카페 언스>에 들어서자 공간을 지키던 엄건호 씨가 건넨 첫마디였다. 공간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모습을 보고 '여행자일 것이다'라는 추측을 했다고 한다. 여행자는 일상의 것들을 관찰하고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를 '반(半) 여행자'라고 소개한다. 서울, 제주, 부산을 거쳐 강릉에 자리 잡아 1년 반 째 언스 공간을 채워가고 있다. 이곳은 매일 다양한 여행자와 단골 손님,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로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한다. 커피와 음악은 대화를 유연하게 이어나가도록 돕는다. 건호 씨는 대화를 통해 타인의 관점을 흡수하고 자기만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데 즐거움을 느낀다. 그동안 여행과 경험이 녹아든 공간, 언스를 방문해 보았다.




오래된 것으로부터

작은 변화를 통해 특별함을


<언스>는 밀크글라스 키친웨어를 만드는 브랜드의 제품 전시 공간으로 시작되었다. 손님들이 제품을 실제로 접해보고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마련했다고 한다. 'Oldies but Goodies'라는 브랜드 슬로건처럼 언스 공간은 오래된 것, 익숙한 것들로부터 작은 변화를 주어 특별함을 선사한다.


칼 각을 맞춰 진열된 언스의 제품들.


강릉의 홍제동 골목에 있는 2층 주택을 개조해 공간을 시작했다. 옛날 집에 남아있던 벽돌과 독특한 모양의 창문, 내부 구조를 그대로 살렸다. 그에 반해 하얀색과 민트색 페인트를 칠해 색다른 느낌을 더했다. 내부로 들어서면 언스의 제품이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다. 널찍한 하얀색 테이블에 밀크글라스 제품이 색별로 열을 맞춰 놓여있는 모습이 박물관 전시장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전시된 것을 자유롭게 만지고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통창으로 들어온 햇빛과 하얀 벽으로 반사되는 빛이 피사체를 비추는 전시장 조명처럼 내부를 환하게 비춘다. 곳곳에 켜진 주황색 조명은 밀크글라스 제품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움을 더해준다.


언스의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 강릉시 홍제동 골목에 위치해있다.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면 다른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바로 옆에 위치한 오래된 한약방 앞에 고추를 말리는 장면이나 앞 집에서 뻗어 나온 감나무를 볼 수도 있다. 관광지를 벗어나 지역 주민들이 사는 동네로 와야만 볼 수 있는 풍경까지 의도한 것일까. 어찌 됐던 언스 공간의 매력과 어우러진다.




아늑한 공간이 선사하는

자연스러운 소통


언스의 카페 공간 내부.


안쪽으로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카페 공간이 나온다. 밀크글라스 제품 전시에 집중되었던 입구 쪽과 다른 의도를 갖고 기획됐다. 카페 공간을 구상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소통'이었다. 때문에 조명, 무드, 가구, 음악 등 모든 것이 편안한 소통을 위해 기획되었다. 감각적인 BGM은 대화하는 사람 사이에 어색함을 채우고, 때론 여러 대화의 벽을 만드는 칸막이가 된다. 커피는 대화를 시작한 주제가 되기도, 중간을 이어주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중앙을 가로지르는 나무 소재 바 테이블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도록 의도한 것이다. 건호 씨와 손님이 마주 볼 수 있는 바 테이블에서 커피를 매개로 소통하는 공간을 상상한 것이다.


소통하기 편한 구조로 공간을 설계했어요.
오래 머무르기 좋도록 아늑한 컨셉 인테리어와
저와 소통하기 편하게 바 테이블을 구상했어요.



아늑한 가정집의 느낌을 주는 카페 공간.


카페 공간의 핵심 목표가 소통이라면 컨셉은 '아늑함'이다. 부드러운 나무 소재로 만든 테이블, 진열장, 벽이 내부를 환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감싸주는 역할을 한다. 들어서자마자 진한 커피 향을 맡게 되는데 이곳에 오래 앉아 머무를 이유가 된다. 주황빛 조명과 오브제는 따뜻함을 더하고, 자리마다 놓인 시집, 매거진은 여행자에게 휴식의 소재가 된다. 언스의 제품이 진열된 모습도 입구 쪽과는 다르다. 박물관 진열장 같던 입구 공간과 달리, 카페 공간에서는 아늑한 가정집에서 활용된 것처럼 놓여 있다. 이는 손님이 브랜드의 제품을 직접 경험하고 집에서 사용할 모습을 상상하도록 구상한 것이다. 카페는 손님에게 아늑한 공간을 제공하면서 브랜드 언스의 경험을 확장하는 것이다.


조명의 소재와 색감도 아늑한 느낌을 준다.
메뉴판과 컵받침 등 디테일한 소품까지 일관적인 컨셉을 유지하도록 신경썼다.
공간 곳곳에서 언스 제품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자


이곳을 채운 건호 씨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말하자면 다양한 취향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이다. 이는 건호 씨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여행자 : 부산, 제주, 강릉 등 다양한 지역을 살면서 여행했다. 당시 사용했던 물건, 찍었던 사진, 엽서, 읽었던 시집, 책 등이 언스 카페에 진열됐다.

바리스타 & 로스터 : 바리스타로 오래 일 했고, 작년부터 로스팅을 시작했다. 카페 언스에서도 커피를 매개로 손님들과 소통한다.

모임장 : 독립서점에서 글쓰기 모임을 기획해 운영했다. 글을 함께 읽고 쓰면서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연결했다.

협업하는 사람 : 팀으로 일하면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책임감 있게 일하는 것을 즐긴다. 어려운 문제를 분업해서 프로젝트를 쌓아가는 것에 흥미가 있다.

교양학교 : 세상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현실적인 공부를 한다. 이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넓히고 사람을 선택하는 안목을 기르도록 훈련한다.



건호 씨는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채워간다. 그 속에서 같은 색이 덧입혀지고, 다른 색과 섞이기도 하면서 '나다움'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에게 '나다움'은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도 고집하고 싶은 관계의 총합, 습관으로 자리 잡아서 일상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들의 모음이라고 한다. 이것이 건호 씨에겐 하루 30분 커피 시간이다. 장소를 옮기거나 환경이 바뀌어도 지켜가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카페 언스는 건호 씨의 나다움과 브랜드 언스의 편안한 경험이 확장된 공간이다. 커피에는 건호 씨의 나다움이 녹아있고, 카페를 채운 물건엔 그동안의 경험이 들어있다. 무엇보다 공간을 가득 채운 대화는 브랜드와 손님을,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여행자에겐 휴식과 리프레쉬를 제공하고, 지역 주민에겐 사랑방같은 공간이 되기도 한다. 카페 언스에서 앞으로 어떤 연결고리를 제공할지 기대된다.





건호 씨가 추천하는

또다른, 나만의 공간


데자뷰 로스터리 : 로스팅을 배운 곳으로, 커피가 정말 맛있는 곳. 대표님의 일에 대한 태도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지구 리워크 : 부부가 작업하는 빈티지 리워크 샵. 제품적으로도 좋고, 작품으로 보기에도 좋다.

송정해변 : 소나무 산책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로 사색하기 좋다.

강릉 교육 문화관 : 지역에 가면 도서관 놀러 가기를 좋아한다. 이곳은 시설도 좋고, 문예 공부를 하러 오는 시니어 분들의 시, 편지 등을 보는 재미가 있다.

버드나무 브루어리 : 지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흥미롭다. 독립서점, 지역 농장과 협업한 제품, 서비스가 있다.

정동진독립영화제 :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제. 지난여름 3일 내내 참여했다. 매너 있게 영화를 사랑하고 즐기는 관람객의 모습, 오랫동안 행사를 이어오는 주최 측의 에너지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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