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oW Culture : 서정화 인터뷰
작가의 주제 의식을 연구하는 새로운 학문인 컨텍스추어 디자인을 전공한 서정화는 가구의 실용적인 목적과 함께 작가로서의 실험적인 이야기를 담은 가구 디자인, 제작하고 있다.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출품을 계기로 밀라노 디자인 위크, 파리 국립 장식 미술관 등에 전시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그가 이번 인터뷰에서는 소탈하면서도 진솔한 답변을 통해 여느 창작자와 다를 바 없는 끊임없는 연구와 고뇌의 과정을 들려주었다.
성수동에 위치한 서정화의 작업실에서.
알보우(이하 알)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서정화 작가(이하 서) : 가구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공간과 제품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사물의 물성에 관심이 많아서 소재를 다루고 만드는 것을 중점으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알 : 알보우와의 두 번째 콜라보레이션이다. 이번에 진행한 콜라보레이션에 대해 얘기하자면?
서 : 알보우의 무지개 핸드 드로잉에 선이 반복되면서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것들이 재미있어서 첫 번째 협업물로 비정형적인 선들이 겹쳐지는 검은색 홀더를 만들었고, 이번에 제작한 트레이는 크기, 컬러가 바뀌고 드로잉이 올라가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가벼운 색감을 사용하다 보니 두께감을 늘렸고, 위에 올라간 핸드 드로잉은 안료를 써서 명상하듯이 하나하나씩 그렸다.
알 : 가장 최근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전시하는 ‘놀이하는 사물’전에 참여한 걸로 안다.
서 : ‘놀이하는 사물’전은 8명의 작가가 만드는 과정과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게 전시의 큐레이션이었다. 처음에는 가구를 큰 스케일로 시도해보자 정도였는데 좀 더 플레이풀하게 풀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블록 쌓기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는 structure for use 시리즈를 통해 쌓는 형태로 재미를 찾는 건축가라고 상상하고 작업했다.
사실 이러한 큰 규모의 작품을 전시할 공간도 없고, 상업 공간 작업이라 할지라도 용도가 없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다. 한정된 공간에서 기능을 구현해야 되는 작업을 해왔는데 전시에 제작자로 참여하며 더 크레이지하게, 더 풀어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았다.
알 : 전시 외에 최근에 따로 하는 작업은 뭔가?
서 : 원기둥이 연결되는 구조를 이용해서 가구를 만들고 있다.
전시나 커머셜한 프로젝트가 없는 기간에는 보통 신작을 디벨롭하고 새로운 시리즈를 구상한다. 틈틈이 드로잉북에 아이디어를 기록하는데 그 때는 괜찮았다 생각해도 나중에는 별로일 때도 있고, 그 반대일 때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조금 숙성시켰다가 다시 보며 시기랑 예산이 맞을 때 작업을 진행하는 편이다.
알 : 이때까지의 작업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작업은 어떤 건가?
서 : 스툴 시리즈(Material Container). 만들고 나서 좋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걸 제일 많이 느꼈던 작업이다. 새롭게 시도해도 그러한 좋은 느낌이 계속 나서 안정감도 있고. 무언갈 만들 때는 불안함이 늘 있지만, 시도해야 되고 하고 싶으니까 새로운 걸 하면 실수나 실패 같은 게 분명 있는데, 8년째 오래 하다 보니까 스툴 시리즈는 그런 점이 적고 업체나 제작 루트도 잘 유지가 되니까 재밌고 여유 있게, 안정감 있게 할 수 있는 작업이 된 것 같다.
알 : 8년 동안 진행한 거면 새로운 소재 찾는 것도 작업의 상당한 몫일 것 같다.
서 : 자연물 아니면 인공물인데 인공물이 계속 개발되는 게 아니다 보니 소재가 한정되어 있긴 하다. 근데 이전에 재미없다고 생각해서 보류한 소재도 시각적인 트렌드가 바뀌다 보니 한 시기가 지나면 재밌게 보이기도 한다.
알 : 그렇다면 요즘 눈독 들이고 있는 재료가 있는지?
서 : 유리를 계속 쓰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는데, 워낙 난이도가 높아 스케일감 있게 뽑아 내기가 힘든 것 같다. 그리고 작업장도 잘 없다. 작업장 찾는 것도 일이다. 혼자 다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여러 가지 소재를 다루고 있고, 소재가 달라지면 가공 기법도 달라지니까 계속 찾는데 찾아도 마음 맞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대신 그게 진입장벽이 되는 것 같다. 남들이 하기 쉬운 소재는 많이 손대거든. 사용빈도가 높아서 시각적 차별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려운 소재를 다루면 과정은 힘든데 해내면 세상에 많이 안 나와 있는 거기 때문에 성취감도 있고 주목도도 높은 것 같다.
알 : 다루시는 범위도 재료도 정말 넓고 다양하신 만큼 흔히들 창작의 고통이라고들 하는 과정이 어떤가 궁금하다.
서 : 고통 있다.(웃음) 안 풀릴 때는 많이 보러 다니고 작업하는 사람들끼리 얘기도 많이 하며 그 사람들 경험도 들어보곤 한다. 가구나 공간 등 비슷한 직종에 있는 사람 중에 작업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생각을 들으면 인스퍼레이션이 될 때도 있고. 그러면서 기본적인 에너지를 받으려고 하는데 결국에는 보고 듣고 한 에너지를 모아 내가 뽑아내야 된다. 그래서 막바지에는 그림을 계속 그린다. 드로잉에서 좋은 형태나 색감이 나오면 실물화했을 때 그 느낌이 잘 전달이 되는 것 같다. 이걸 만들어야겠다는 확신이 드는 포인트가 드로잉이다.
드로잉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평소에 작업자들과의 대화, 많이 보고 들은 것을 응축시켜서 드로잉으로 뽑아낸다. 제작이 한창 바쁠 때는 드로잉을 그릴 시간이 많이 없는데, 드로잉을 많이 안 그리면 필력이 떨어져서 어느 날 그려봐야지 하고 그리면 선이 되게 이상해져서 마음에 드는 형태가 안 나온다. 그렇게 되면 머릿속에 상상하는 건 있는데 마음에 드는 선이 안나와서 형태를 뽑아내거나 캐치할 수가 없다. 그럴 땐 반나절 앉아서 계속 그림만 그리다가 저녁부터 슬슬 괜찮은 선이 나오면 계속 그리며 벽에도 붙이고 한다.
알 : 작품과 함께 업데이트되는 스케치들을 보면 실물의 강한 콘트라스트와 다르게 대체로 귀엽고 따뜻한 느낌이 많이 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의도하는 바가 있는지, 그리고 드로잉 과정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달라.
서 : 나에게 드로잉은 실무 드로잉 같은 느낌이다.
드로잉을 위한 드로잉이 아닌 만들기 위해 드로잉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드로잉으로 멋을 내자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컬러링 시에도 빨간색은 동, 노란색은 황동, 갈색은 나무 등 만들어본 느낌을 되새기면서 하고 완전히 어떤 소재인지 모르겠다 하는 걸 그려본 적은 없다. 그 소재나 투명도 등을 생각하면서 그리다 보니까 간결하게 그린다. 그래서 따뜻하거나 만화 같거나 귀여운 느낌이 들 수도 있는 것 같다. 최대한 간결한데 알아볼 수 있고 나중에 좋은 느낌을 낼 때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한 메모 같은 거로 보면 된다. 대신 아예 새로운 걸 상상할 때의 드로잉은 완전 액추얼한 소재나 형태를 벗어난다. 우연에 의해서 새로운 게 나올 수도 있는데 결국에는 드로잉이 머릿속에 있는 걸 구체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니까.
알 : 디자이너이자 작가이신데 두 타이틀 중 어떤 게 더 흥미로운가?
서 : 디자이너가 더 맞는 것 같다.
작가는 자기표현이라던지 자기 스스로 생각한 것들을 중심적으로 발전시키는 사람인 것 같은데 디자이너는 외부의 요구나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조율하며 거기서 새로운 창작을 할 수 있어 폭을 계속 넓히는 재미가 있다고 느낀다. 막 휩쓸리면서 하는 작업들에서 파생 되는 게 너무 재밌다. ‘이런 일도 들어오나. 근데 어, 해볼까?’ 할 때 재밌는 게 많이 생긴다. 한 해가 시작될 때 어떤 사람이랑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기대가 많이 된다. 누구를 위해서 일할 때 희열이 있다. 작업도 누가 봐서 좋아하면 좋다. 클라이언트들과 일을 할 때, 거기서 원해서 나를 찾았는데 내가 이만큼을 해줘서 거기가 잘되면 좋다. 예전부터 소명의식 같은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누가 필요했을 때 해야 일이 되는 거 아닌가라며. 그런데 또 순수 작가로 활동하시는 분들은 응축된 창의력을 세상에 공개하는 거 자체가 엄청 이로운 일이다.
나는 그러한 에너지보다는 시너지 효과가 더 잘 맞고 재밌다. 작가주의 디자이너라고 많이 이야기한다. 이미 거기서 선택이 된 것 같다. 처음에 컬렉팅 가능한 아트 퍼니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가격이나 양산성보다는 표현이 잘 들어가 있느냐가 더 중요하기에 이미 작가주의적인 성향이 많이 들어간 디자이너라고 생각했다. 대학 전공을 공예로 선택한 게 큰 몫을 차지한 것도 같다. 공예가 양산성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그렇다고 쓰이지도 않는데 멋만 있으면 되는 것도 아니니까.
알 :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한 가지가 있다면?
서: 주제가 명확한 거. 그게 안되면 목적의식을 못 느끼는 것 같다. 반사, 투명함 등의 키워드를 정하면 거기서 파생되는 나머지 서술어들이 있다. 일단 끄집어낸 한 단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단어가 현재 사람들이 많이 얘기하지 않고 자기 얘기에 주목시킬만한 단어인가 생각한다. 요리를 예로 들면 가장 대중적인 김치 볶음밥을 해도 바나나를 넣는 건 어떨까 하는 거다. 대신 맛은 있으면서도 신선한 재료나 소스들을 내가 먼저 해석해서 공감할 수 있게 만들고,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면 또 많이 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상업적인 임팩트는 없더라도 실험을 계속해야 된다. 실험이라는 자체가 의미가 있으려면 증명이 안된 명제여야 되니까 정확한 키워드 아래 그런 걸 시도해 보려고 한다.
알 : 추천할 전시나 볼거리가 있다면?
놀이하는 사물전? (웃음) 그런데 나도 국립현대미술관 자체를 워낙 좋아한다. 작품을 큐레이션 해놓은 공간들을 보면 시각적인 사물들이 이렇게 임팩트를 낼 수 있구나 하는 걸 보면서 많이 자극받는다. 그래서 이번 전시도 굉장히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공간들의 물성, 공간감, 소리, 향으로부터 오는 인스퍼레이션도 크다.
알 : 지금과 같은 활동을 하시는 계기가 된 어떤 전환 포인트나 인물이 있었는가?
서 : 2002년도 중반 때쯤 유럽 쪽에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들이 많이 생겨났다. 디자이너 스스로가 기획해서 만든 걸 가지고 전시도 하고, 판매도 했는데 그러한 주체적인 활동이 디자인계를 선도하는 느낌이 멋있었고 임팩트가 있었다. 그 디자이너들이 한 소재만 다루진 않고 계속 새로운 소재들을 연구했다. 그걸 보고 물성을 다루는 건 비슷할 텐데, 금속만 다루지 말고 다양하게 많이 다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 매거진 보는 것도 좋아했는데 가격이 비싸다 보니 패턴처럼 도서관 정기간행물실 가서 매거진을 보며 외국에 대한 동경도 키웠다. 그 시기 즈음 인터넷이 활발히 보급되고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정보가 열렸다. 그렇게 해외 디자이너들의 활동을 보며, ’내가 배운 것들이 이거 만드는 일인데 저렇게 하면 되겠네?’, ‘내가 남들보다 잘하겠네?’ 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 전에는 확신이 없었다. ‘이거 만들어서 뭐 어떻게 해야 되지?’ 하면서. 그런데 해외의 젊은 작가들이 그룹을 형성하고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게 멋있어 보였다. 그전의 불확실함과 혼란이 해외 나가서 해소가 많이 됐다.
알 : 그럼 그 때로 돌아가 ‘서정화’를 본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서 : ‘눈치껏 해라.’(웃음)
알 :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서 : 재미없을 수 있겠지만, 똑같다. 확신과 신념을 갖고 하라는 조언도 좋지만, 환경도 중요하다. 나도 가장 먼저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당장에 각자의 생계가 있고, 작업이라는 게 해서 바로 그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다. 작품 활동을 하며 누군가 후원을 해준다거나 환경이 넉넉하지 않으면 집중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취업 등이 인생의 정답은 아니잖나. 그 사람의 배경이나 환경을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신념을 갖고 하라고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나도 작업 시작할 때까지도 내가 이걸 오랫동안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계속 불확실하고 불안했다. 선례도 없었고. 지금도 작업하는 친구들 다 불안해한다. 오래된 사람들도, 이름만 들으면 아는 친구들도 불안해한다. 작업은 어쨌든 취업보다 확률이 적은 게임이다.
대신 힘든 과정을 버텨내고 굳게 신념을 갖고 하는 사람은 대부분 성공한 것 같다.
똑같은 상황이라면, 가능성을 믿고 해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알 : 이야기를 들으니 치열하게 활동해오신 게 느껴진다. 그럼 앞으로의 계획은?
서 : 작업을 계속하며 새로운 개념을 연구하고 싶다. 그걸 잘 해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 움직임, 키네틱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입체물인데 움직이면 어떤 효과가 나지?라고 계속 연구 중이며 관찰 단계에 있다.
단기 플랜으로 보면 내 해석이 좋은 사물이 되어 나오면 좋겠고, 장기 플랜으로 보면 그러한 결과물들이 축적되어서 몇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질 수 있고, 각 에디션마다 주안점들이 많이 모여서 나중에 섹션들을 이루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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