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민준 Oct 04. 2021

햇살 머금은 강물 위로

두 물은 반가움에 손을 잡고 인간을 품고 또 흐른다

나무 한 그루도 그림이 되는 길이 있다. 강을 배경 삼아 서면 누구라도 구름이 되고 시인이 되는 길이다. 두물머리의 해돋이는 느긋하고 부드럽다. 세월을 품은 느티나무와 고요한 강이 있어 잠을 설치 고도 행복한 시간이다. 산책길에 편지 한 장 강물에 띄워 보내고 싶은 길을 걷는다. 


두물머리 물레길은 물+올레로 물을 따라온다는 뜻이다. 두물머리는 한강의 밤섬이나 낙동강의 을숙도처럼 강 한운데 있다. 마을과 길이 생긴 섬은 야생화와 수생식물이 강과 연못을 정화한다. 겨우내 갈대는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잎자루와 이삭을 털어낸다. 한결 가벼워진 갈대가 앙상한 몸으로 바람에 흔들리며 습지 생물을 살리고 길의 운치를 더하는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다. 먼 길을 돌아 두 물이 만나 한강에 갈 채비를 하는 곳이 두물머리다. 만남과 이별이 있는 저녁 강가에 바람이 길을 재촉한다. 

  

두물을 항상 지켜보는 느티나무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화합하는 장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 물줄기가 모여 한강을 지나는 형상은 어머니의 젓 줄 같은 역할을 마치고 바다에 닿는다. 두물머리에 물안개 피는 모습은 자연의 운치를 더하고 잔잔한 강가의 두 물을 따라 크게 심호흡하며 공기를 가슴에 담는다.

  

나의 고향은 두물머리에서 멀지 않은 북한강 기슭에 자리 잡은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다. 아버지의 고향이고 어머니가 시집간 곳이다. 해마다 추석 때면 산소에 벌초하러 고향을 찾는다. 선산을 찾아 조상께 인사드리고 바라보는 북한강에는 아버지의 마음이 흐르는 것 같아 편안해진다. 

  

두물머리에 희망의 빛이 비친다. 밤새 서걱대던 억새가 고개를 들고, 버드나무 숲에 웅크린 백로는 깃을 가다듬는다. 강가 수양버들은 물 위에 가지를 늘어뜨리고 물빛은 수양버들의 은밀한 곳을 본다. 어부의 노 젓는 삐걱대는 소리가 물살에 뒤엉킨다. 물과 사투를 벌이는 어부의 고단한 노랫가락도 강바람에 분분히 흩어진다. 물살에는 바람에 실려 온 타자의 안부와 삭히지 못한 사연이 머물다 사라진다. 

  

두 물은 그리워 급해도 산을 돌아치며 한숨 쉬었다 다시 흐른다. 그렇게 산을 품고 바람의 시샘에도 멈추지 않는다. 구름을 담고 비를 거두어 궂은날 맑은 날도 하염없이 흐른다. 두 물이 만나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춘다. 두 물이 만나 어깨를 비비며 반기는 소리가 왁자지껄 요란하다. 누군가 보고 싶은 그리움은 고된 여정마저도 행복하게 한다. 두 물은 반가움에 손을 잡고 인간을 품고 또 흐른다. 

  

햇살 머금은 강물 위로 윤슬이 넘실거린다. 소슬한 바람을 타고 뱃사공의 구성진 노랫가락에 맞춰 나룻배가 닻을 내릴 것만 같은 두물머리에 인파가 붐빈다. 뜨겁게 포옹하는 두물머리의 소리를 들으며 선비가 걸어갔을 법한 역사의 뒤안길로 내 발자국의 자취를 찍는다. 

  

고향이 강가 기슭이다 보니 어린 날에는 물의 기운을 받고 자랐다. 북한강은 술잔에 떨어지는 별빛과 하늘을 지붕 삼아 흥도 돋으며 노래 한가락 뽑았을 듯한 풍경이다.  

  

강물을 보고 있으면 인간관계에서 스친 사람들이 파노라마처럼 다가온다. 얽히고 설긴 사연들이 강물에 비친다. 사소한 오해조차도 용납하지 못한 옹졸함으로 인연을 무 자르듯 끊고 조금만 불편해도 혈기를 앞세워 적으로 만들던 때를 새삼 되돌아본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기미가 보이면 선수를 치고 빠지는 약은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기억에 씁쓸해진다. 살면서 이기적인 생각으로 살았던 시간이 더 많았다. 깨진 사금파리는 아름답게 빛이 날지 모르지만 깨진 것은 값어치가 없다. 무릇 인간관계도 깨어지지 않았을 때 보석처럼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인색했던 마음들이 투영되어 사찰에 선 것 같은 경건함이 든다.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사람들의 가슴에 멍이 들도록 악담을 늘어놓은 걸 후회한다. 이미 지난 것은 되돌릴 수 없지만 앞으로 다가올 인연은 사기그릇처럼 조심조심 다뤄야겠다는 생각이다.

  

두물머리는 여행자들로 왁자하다. 여행자들은 환생해서 이승에서 풀지 못했던 인과응보를 풀고 있는 것 같다. 서로 경계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이기적인 인정의 싹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증인으로 산다.

  

해가 강물을 비춘다. 뜨겁게 달구었던 여행자들의 붉은 가슴도 느티나무를 뒤로하고 총총히 양수 대교를 지난다. 갖가지 애환을 풀어내던 두 물 나루터는 역사 속에 잠들고 두물머리 억새는 바람에 몸을 맡긴다.

  

이 세상 그 어떤 조명보다도 더 충실히 피사체를 빛나게 한 태양은 하늘 높이 자취를 감춘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듯 두 눈에 풍경을 새기며 걷는다. 좋은 사람과 추억을 남기고 싶은 두물머리. 파란 하늘 위에 수놓은 가녀린 이파리가 햇살과 나를 막힘없이 이어준다. 두물에 파란 하늘과 구름을 담은 풍경이 흐른다.

작가의 이전글 너는 나를 언제까지 괴롭힐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