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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민준 Sep 21. 2021

고이도

고이도 섬의 갯벌을 오가는 섬사람의 모습은 섬의 낙조처럼 아름답다

봄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는 날, 아내와 함께 봄 마중을 나갔는데 부드러운 바람이 잠잠히 잠겨있던 추억을 깨운다. 아내는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섬을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모습을 지을 때가 있다. 이즘과 같이 온 세상이 새로운 생명으로 변화될 때는 더욱더 그러하다. 나는 문득 아내가 그리워하는 그 섬이 떠올랐다. 아내를 만나 데이트하던 시절, 아내의 고향을 다녀온 적이 있다.

  

어느 봄밤, 예비 장모님으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아내의 본가로 출발할 때는 걱정 반 희망 반 달뜬 마음이었다. 서울~목포 간 무궁화 야간열차 좌석표가 매진되어 입석 승차권 두 매를 구매했다. 야간열차는 밤새 달려 새벽 다섯 시쯤 목포역에 도착했다. 목포 버스 터미널에서 아내와 가락국수를 먹고 무안행 버스를 기다렸다. 무안행 버스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하늬바람이 시원하다. 우리는 무안군 운남면 신월리 버스 종점에서 갯벌이 드러난 바다를 만났다. 

  

선착장이 가까워지자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우리는 고이도 섬에서 운항하는 통통배를 타고 섬으로 출발했다. 배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아내를 알아보고 “집에 오냐? 엄마 보러 오는구나!”라고 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배에서 바라보는 고이도 섬에는 청보리가 바람에 나풀나풀 춤을 춘다. 험한 물결과 세월을 이겨낸 바위 밑동에는 굴 껍데기가 널브러져 있고 갯바위가 빛을 흡수하며 밀물을 기다리고 있다. 


선도로 가는 철선에서 승객이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표시했다. 배가 20여 분만에 선착장에 도착하자 아내가 선주에게 배 삯을 건넸다. 선착장에서 바라본 섬마을은 야트막한 언덕이 보이는 평범한 시골이었다. 섬마을 길을 따라 조금 걷자 아내가 졸업한 초등학교가 폐교 상태로 쉬고 있었다. 학교는 낡고 허름해도 운동회 때만큼은 동네잔치로 떠들썩했던 때를 기억한다. 교실에서 꿈을 키웠던 학생들은 사회인이 되어 삶의 터전에서 살고 있다. 초등학교를 뒤로하고 비탈길을 오르자 옆 동네에서 꽃상여가 산으로 오른다. 바다의 척박한 섬에서 살아온 고인은 꽃상여를 타고 흙으로 돌아갔다. 비포장 길이 햇살에 녹아 구두가 흙으로 범벅이 되어도 아내와 함께 여서 즐거웠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15분 정도 오르자 아내가 뛰어놀던 본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홀로 살고 계신 예비 장모님 집 옆에는 대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푸름을 자랑하고 마당에는 무화과나무와 감나무가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다. 아내의 어머니는 나를 보며 “오느라고 애썼네.”라고 웃으며 마중하였다. 아내의 아버지는 연애 초반에 운명하여 뵌 적이 없었다. 아내가 어린 시절 놀던 집은 쓰러질 것 같이 다소 위험해 보였다. 마지막 힘을 내며 버티고 있는 집에서 아내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홀로 농사를 짓는다. 그래서인지 아내의 어머니는 섬을 떠나지 않고 자식에게 짐이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처의 추억을 오롯이 담고 있는 집은 헐벗고 굶주렸지만 소중하고 따뜻했다. 

  

저녁이 되자 아내 어머니는 밥상을 들여 홍어를 먹어보라고 했다. 아내가 초장에 찍은 홍어는 발긋발긋해 침이 고였다. 처음 본 홍어는 함치르르 윤기가 흘렀고 한 점 물은 홍어 맛은 알싸하고 코를 뻥 뚫었다. 장작불을 지핀 방에서 그루잠을 잘 때 문창호지 구멍으로 바람이 들어와 온기를 쬐었다. 다음날 썰물에 드러난 갯벌에서 아내와 고동을 줍고 삽으로 개흙을 파내 낙지를 잡느라 옷과 얼굴에는 개흙이 범벅이 되었다. 


따뜻한 아침밥을 먹은 후 오늘은 감자를 심어야 한다며 아내는 나를 농사꾼으로 변장시켰다. 온종일 감자를 심고 지친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허술한 창고에 재와 삽만 있는 화장실이 낯설었다. 불편하지만, 그녀의 본집은 자연을 품고 있었다.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섬의 환상은 고된 일로 사라지고 섬과 닮은 어촌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다.

  

고이도 섬은 서두르지 않아도 느릿느릿 가는 시간을 마음대로 담아볼 수 있었다. 똑같은 시간에 매일 볼 수 있는 섬의 맑은 공기처럼 아내의 순수한 마음도 변함이 없다. 사람은 허름한 옷을 입은 집을 떠나도 그 집은 사람이 살았던 추억으로 행복하다. 홀로 지내던 노인이 육지에 있는 자식 집으로 떠나도 갈매기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을 기다린다. 섬으로 들 땐 밀물처럼 정으로 들고 날 때는 썰물처럼 추억으로 섬을 빠져나왔다. 그녀의 어머니와 아내가 오랫동안 함께한 본집은 사라지고 터만 남았다. 

고이도 섬의 갯벌을 오가는 섬사람의 모습은 섬의 낙조처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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