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따뜻한 날, 닭장 안에는 백봉 오골계 암수 한 쌍이 정겹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재래식 오일장은 나무·동물·채소·음식 등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새벽부터 분주했다.
나는 장터에서 흑색 오골계 수컷 한 마리와 암컷 두 마리를 입양해서 먼저 살고 있는 백봉 오골계 가족과 합방시켰다. 서로 의지하며 사이좋게 지내길 바라며 한 지붕 두 가족을 만들어 주었다. 장터에서 입양한 흑색 오골계 세 마리를 넣자 백봉 오골계 가족은 침입자의 방문에 깜짝 놀란 표정이다. 닭의 습성을 잘 모르는 나는 닭들의 행동을 닭장 옆에서 지켜보았다.
사이좋게 지내길 바라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한 지붕 두 가족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덩치 작은 백봉 수컷 가족은 흑색 오골계 침입에 이상 기류가 흐르고 덩치 큰 오골계는 덩치 작은 백봉 오골계를 보며 가소로운 듯 쳐다본다. 암컷과 달리 수컷들은 평화를 외면하고 한바탕 전쟁이라도 치르겠다는 표정의 강렬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의 자리를 위협받은 백봉의 수컷은 오골계 눈을 살펴보다가 깃을 세워 경계하는 눈치다. 검은 오골계 수컷은 백봉의 수컷을 제치고 가장의 자리에 오르려는 속셈이다. 덩치 큰 오의 수컷은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으로 자신만만하다. 백과 흑의 전투태세에도 암컷들은 천하태평이다. 백봉 수컷은 덩치가 작아도 강단(剛斷)이 있어 보인다.
수컷들은 지금 패하면 감당하기 힘든 수모를 겪어야 한다는 걸 아는 듯하다. 흑색 오골계의 수컷은 싸울 준비가 되었다는 각오로 날개를 펼치며 ‘꼬끼오’하며 파이팅을 외친다. 백의 수컷은 흑의 수컷 기선 제압에 흠칫 놀란다. 피해 갈 수 없는 백과 오의 한판이다.
백과 오의 탐색전이 끝나고 동시에 뛰어오르며 부리로 찍고 다리로 할퀴며 공격한다. 이기려는 욕심에 상대보다 더 높이 뛰려고 발버둥 치기도 하고 뛰어 상대방 사이로 피하기도 한다.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한 치의 양보도 없다. 털이 빠지고 닭장에 먼지가 퍼지고 몇 차례 더 뛰어오른다. 수컷은 소강상태를 유지하며 서로 승패를 계산한다.
흑색 오골계 수컷은 백봉 오골계의 예상 외 선전에 당황하며 놀라는 눈치다. 흑색 오골계는 빼앗으려는 욕심이 화를 불렀고, 백봉의 수컷은 가족을 지키려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흑색 오골계와 맞섰다. 백봉 수컷은 이겼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며 다시 달려들 기세다. 흑색 오골계가 탐욕으로 패했다는 자신감 없는 눈길을 내리고 덩치 작은 백봉 수컷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든다. 기세 꺾인 흑색 오골계의 수컷이 등을 돌리고 꽁지 빠지게 도망친다.
처음 보는 싸움에 넋 놓고 바라보다 사이좋게 지내지 않는 모습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해졌다. 닭이 싸우는 모습은 흡사 정치권의 공방과 같았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가 만든 치열한 경쟁 아닌 경쟁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분열하는 모습을 보며 어릴 적 읽었던 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토끼와 거북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거북에게 불리한 경주였고 거북이의 인내심과 지구력이 돋보인 이야기다. 우리는 토끼와 거북이를 통해 능력이 떨어져도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다. 하지만, 교훈 속에 혼자 승리하는 교훈만 있다. 토끼는 거북이에게, 거북이는 토끼에게 서로 손 내밀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토끼와 거북은 함께 달리자고 말하지 않았고 이기려는 경쟁심에 서로를 외면했다. 토끼와 거북은 자신의 승리를 위해 외면하기보다, 서로 칭찬하고 사랑하며 함께하는 이야기였다면 어땠을까. 혼자가 아닌 둘이 상생하는 이야기로···. 거북이는 자신을 과신하며 잔꾀를 부리는 토끼를 깨워 함께 결승선을 통과했다면 어린이 마음은 더 감동적이었을 것 같다. 어린이가 보고 싶어 하는 어른들의 세상은 소통하고 하나 되는 바른 모습, 건강한 나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