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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Aug 02. 2024

[격정 세계] 찬쉐 2.

602페이지까지 읽었다.

神이 된 문학

문학은 神이 되었다. 문학의 은총이 온 도시에 가득하고, 모든 등장인물은 문학의 은총 속에서 실제 삶을 더욱 풍성하고, 굳건하게 만든다. 마치 중세의 신에 대한 영적 충만에 감사하며 눈물 흘리는 종교화를 감상하는 듯한 인상이다. 문학의 광신도인 등장인물은 모두 신에 대한 감사와 숭배로 세상을 산다. 페이와 샤오웨가 기획하는 ‘감상 메커니즘의 구축’은 일종의 포교활동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은총의 확대를 꿈꾸고, 더 깊은 수준으로 끌고 가고자 하는 실천적 기획이다. 그들의 독서 클럽은 로마의 어두운 곳에서 이루어진 초기 기독교의 예배(포교)를 닮았다. 이렇게 소설은 기독교가 로마를 상대로 정치적 헤게모니 획득해 가는 과정과도 닮았다. 

‘돌아온 탕아’를 연상시키는 차오쯔만이 다소 입체적인 캐릭터의 면모를 보일 뿐, 거의 모든 등장인물은 문학의 은혜 속에 사는 지극히 평면적인 인물이다. 등장인물에게 문학은 그들의 목표이고, 그들의 삶은 문학으로 모아졌다. 문학만이 각각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문학만이 세상을 구원한다. 샤오마와 결혼하게 되는 ‘아저씨’는 ‘문학의 주교’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그의 영향아래 있는 모든 이들에게 문학적 세례를 베푸는 선지자의 모습이다.

지독한 소설이다. 일견 작가 찬쉐의 자서전 같고, 문학에 바치는 긴 헌사와도 같은 이 소설은 어떤 면에서 매우 독특하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이렇게 노골적인 긍정의 서사가 있었을까? 그래서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나로서는 ‘지독한 조롱’으로도 보인다.


찬쉐에게 있어 性

그녀의 다른 작품 [오향거리]에서 性은 집단에 편재한 꿈틀거리는 에너지이며, 집단적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중심적인 소재가 되었다. [격정 세계]에서도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다. 개인을 자극하여 폭발하는 에너지임은 비슷하지만, 실제와 정신의 한계를 가두는 ‘결계’의 의미도 담고 있다. 性은 몸에 잡혀 있을 때 문학의 은총과 세례를 받아 잔잔하지만, 몸을 벋어나 폭발하는 순간 문학과 비슷한 위상의 에너지로 상승한다. 한마와 샤오웨의 폭발한 性 에너지는 몸을 벋어나 정신으로, 창작과 비평에 두루 전이되며 한층 더 상승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는 ‘아저씨’의 경우도 유사하다. 어쩌면 문학과 性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제목 ‘격정’은 성적 에너지(문학적 에너지)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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