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과 같은 학번으로 얼굴은 아는 사이. 마주치면 인사는 했지만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은 없는,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누가 알았을까? 우리가낯선 중국 땅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한솥밥을먹는 인연이 될 줄을.
룸메이트 A는작고 여린 몸을 가졌지만 매사에 강단이 있었다. 학교 방송국 아나운서를하면서 다져진 옹골진 목소리와 어조에선 신뢰가느껴졌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컨트롤할줄 알았다.무난한 둘이 만나 적당히 서로를 배려했고이해했다. 뭐 가끔 꽁-한 날도 있었지만 잠시였다.
B는과 사람들이 모두아는 인싸 중에 인싸. 과 동아리 활동도 열심이었고 늘씬한 외모부터 중국어 실력까지그녀를 흠모하는 남학우들이많았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화끈한 성격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C는우리 중 가장 여성스러운 친구였는데,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말투에 얼굴에는 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웃을 때 초승달이 되는 눈은 누구에게나 살가운인상을 남겼다.
D는가장 어려 보이는 외모와 달리 언니 같은존재였다. 말하기보다는 들어주는 친구. 수시로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나를 비롯한 기분파의 중심을 잡아주는 친구랄까?
그 시절의 우리는당당하거나무모했다.
외국인 유학생은 30명 남짓, 일본인 러시아인 친구둘을제외하고 모두 한국인이었다.
'여기서 우리 학교가 제일 좋아. 우리가 제일 잘해.'
지금은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생각이스물둘소녀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더똘똘 뭉치게 했다.
사실은그걸 이유로 서로에게더 의지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평온한 듯 소란스러운 나날이었다.
기숙사 방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도마뱀이 출몰했는데, 한 번은 덮고 있던 이불에서 도마뱀이튀어나와 기절할 뻔했다.
장을 보거나 외식을 할 때는 학교 옆 시장을 주로 이용했는데, 문을 나가자마자 코를 찌르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비위가 약한 친구는 그 문을 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른 학교 남학생들이 먹으라고 준 김치 때문에 그 학교 여학생들과 불편해졌던 일,
특별한 반찬 없이 밥을 고추장에 비벼 먹고도 10킬로 가까이쪘던나의 몸무게는인생 최대의 흑역사로 남아있다.
친구들의외모 또한나날이 현지화되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말을 건네는 순박한 시골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때때로으쓱했다.
밤을 새워 놀아도뭐라 하는이 없는 자유가 좋았다.
매일이 파티였고 매일이 진실게임이었다. 파자마 바람으로 맥주를 짝으로 사들고 와서는 동틀 때까지 마셨다. 이런저런 불만을 늘어놓으며 "우리 나중에 다 고위관직돼서 만나자!" 하며 경쾌하게 잔을 부딪쳤다. 쌓인 빈병은 자랑스러운전시품으로 복도에 줄을 세웠다. 사소한 것들로 까르르 웃고 끅끅대며 울고.
그날의우리는 자유로웠으며 또철이 없었다.
스물둘,
마음은 아직 소녀였던 그 시간에 우리가 있었다.
연고 없는 먼 곳으로 시집간 친구 D를 몇 년 만에 만나는 날, 그간의 이야기를 풀기에 4시간은 턱없이 짧았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D는우리가 잔을 부딪치며 외쳤던'고위관직'의꿈에 가장 가까워졌다.
두 명은 제주에 터를 잡는다. 한 명은 이미 가있고, 한 명은 곧 이주를 앞두고 있다. 아이의 교육환경과 삶의 만족도 등 각자의 이유로 선택한 것이지만,다섯명 중 두 명이 제주에 살게되다니.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일이다.
"우리가 제일 잘해!" 라던 18년 전 중국어실력은 어디로 갔는지. 중국어 교사를 하고 있는C가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다. 전공이 업이 되니 즐겁지 않다고 하긴 하지만.ㅋ
아무튼 나는
그 시절 그 소녀들을 사랑한다.
카메라 어플의 힘을 한껏 빌어 20대의 매끈한 피부를 연출하는 것이 민망하지 않다. 시답잖은 농담과 가슴 저릿한 삶 이야기를 오가는 정신없는 대화도 즐겁기만 하다.
지금껏 그랬듯이다섯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을 장담할 수 없다. 만약 제주에서 그 만남이 성사된다면, 우리의 흑역사가 담긴 사진 한 장 꼭 들고 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