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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준맘 Jan 02. 2022

찾았다! '언젠가 빛나는 그날에'

생애 첫 대장내시경 받다

마지막 일몰은 커녕 재야의 종소리도 못 듣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2022년, 나이의 앞자리도 바뀌었다.


작년의 마지막 날, 그러니까 어제는 건강검진이 있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나 대장 내시경 예약이 비어있는 날 12월 중 딱 어제 뿐이었다. 연말은 가족과 함께 먹고 마시는 맛 아닌가? 올해는 내시경을 위해 재미를 포기해야 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를 따라다닌 변비. 남들은 매규칙적으로 변을 본다는데, 뭐가 귀하다고 모으고 모아 3,4일에 한 번 화장실엘 갔다. 쌓인 걸 한 번에 쏟아붓느라 수십 년간 진땀을 빼왔으니, 압축봉을 빠르게 움직이는 기술에는 이제 도가 텄다.


더러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아무튼 지독한 변비 때문에 내 몸 중 제일 걱정되는 을 말해보라 하면 대장이었다. 40줄에 드는 게 압박이긴 했는지 미루고 미뤘던 거사를 이제야 치르게 다.


완벽하게 깨끗한 장으로 검사받겠다며 3일 전부터 음식량을 조절했다. 먹은 음식이 거의 없었고 수분은 날아갔다. 볼은 깊이 파였고 낯빛은 거무튀튀해졌다. 마치 반건조 오징어가 된 기분이랄까.


장정결제의 고약함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쉽지 않았다. 포카리스웨트에 소금 잔뜩 넣은 맛이라며 첫 병은 수월하게 넘겼으나, 다음날 새벽 일어나 다시 마시는 이 콧물 맛 액체는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몇 번의 역류 위기를 간신히 넘고 파김치가 되어 병원으로 갔다.


다른 검사들을 순조롭게 마치고 드디어.


엉덩이 부분이 뻥 뚫린 위로 네모난 천 하나덧대어져 있는 굴욕 바지(?)를 입고 베드에 누우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걸로 끝.

 떠보니 햇살이 가득한 회복실이었다. 언제 눈을 감았는지도 모르게 끝났다. 민망할 정도로 세상 평온한 이 분위기 무엇?


"일어나셨어요? 주사 바늘 빼드릴게요~"


다가오는 간호사에게 건넨 나의 첫마디,


"떼어낸 거 없어요?"


순서를 기다리며 다. 용종이 발견된 경우 깨어나면 바로 상황을 알려다는 을. 비몽사몽중에도 나의 질문은 간결하고 정확했다.


 "네~ 장도 잘 비워져 있었고 깨끗했어요~"




얼마 전 오랜만에 네이버 블로그에 들어다.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았으니 내 블로그 들어가 볼 일이 없었는데, 블로그 대문의 사진과 문구는 낯익었다.


'언젠가 빛나는 그날에'


가만 생각해보니 과거 나의 싸이월드 대문에도 같은 문구가 쓰여있었던 것 같다. 20대의 나는 뭘 그렇게 기다린 걸까?


최근 다시 열린 싸이월드 소식을 접하고 로그인을 시도했었다.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비밀번호, 비밀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핸드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도 지금은 사용하지 않기 찾을 도가 없었다. 아쉬웠다.


그러다 깨달은 사실이 있다.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 매거진  '눈부신 오늘에게'  것.


꿈에 부풀던 20대의 나는 늘 '빛나는 그날'을 기다렸다. '그날'은 오지 않은 미래형이었다. 그 사이 싸이월드는 우리 세대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고 새로운 플랫폼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나의 30대는 결혼과 임신, 육아로 그야말로 쏜살처럼 지나가버렸다. 아이들 좀 키우고 정신 차려보니 마흔이다. 오늘의 나는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가끔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고 글로 기록하는 평범한 가정주부다.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삶을 대하는 시선과 자세만큼은, 가능성 많고 혈기 왕성한 그때의 나보다 가끔 무기력하고 우울하기도 한 지금의 내가 조금 더 여유롭고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미래형이었던 '그날'이 현재형이 되어있으니 말이다.


동안 찜찜했던 대장의 건강 확인. 후련하다. 보다 상쾌하게 새해를 시작해야겠다.

더불어 나의 모든 흑역사(?)를 품고 있는 싸이월드 비밀번호, 제발 좀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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