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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둘기 Jul 16. 2024

나를 잊어버리다

장자 철학과 달리기 

스스로 자기 마음을 섬기는 자는 

슬픔과 즐거움에 따라 눈앞의 일을 바꾸지 않고,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음을 알며, 

운명으로 여기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니 

이것이 덕(德)의 지극함이다. 

<<장자>> <인간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는 장자이다. 차별과 대립을 지양하고, 만물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그 어떤 편견도 가지지 않고 대하는 사람. 세상의 평가와 세속의 행복을 초월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른 사람. 높고 깊은 학식을 가졌지만, 평생을 곤궁하게 살았던 사람. 그럼에도 구차하지 않고 당당했던 사람. 그런 그를 닮고 싶었다.      



장자의 핵심 철학 중 하나는 안명安命이다. 세상에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운명적 사태가 있다. 이를 장자는 명(命)이라 불렀다. 대표적으로 삶과 죽음이 있다. 이렇게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지는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것이 장자의 핵심 가르침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누구나 짜증이 몰려온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인간의 힘을 벗어난 운명적 사태라면, 거역하기보다는 순순히 따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장자는 말한다.     


 


최근 직장에서 좋지 않은 일이 연거푸 일어났다.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책감, 세상에 대한 원망, 신에 대한 분노가 동시에 일어났다.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는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했는데,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장자님, 이럴 땐 어떻게 합니까?      



장자의 수양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좌망(坐忘)과 심재(心齋). 좌망(坐忘)은 앉아서 잊는다는 뜻이다. 심재(心齋)는 마음을 비운다는 뜻이다. 짜증, 분노와 같은 오감의 구속에서 탈피해야 한다. 나 자신을 완전히 비워야 한다. 그때 우리는 그 무엇에도 의존함이 없는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비워보려 했다. 모두 다 잊고 싶었다. 유튜브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을 검색해 듣기도 하고, 신부님의 강론을 찾아보기도 했다. 모두 헛수고였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 가장 먼저 코끼리가 생각나듯, 모든 것을 잊으려 하니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이 더욱 생생하게 기억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러닝화를 신었다. 우울한 기분을 한껏 등에 업고, 집 밖으로 나왔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이어폰을 끼고, 가볍게 준비 운동을 했다.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고, 나는 달려 나갔다. 목적지는 따로 정하지 않았다. 최대한 신호등이 없는 곳을 찾아 무작정 뛰었다. 오늘 일어난 일들은 가쁜 숨과 함께 날아갔다. 다리가 조금씩 무거워질수록, 머리는 점점 가벼워졌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동네를 방황하다가 다시 집을 향했다. 집이 점점 가까워지자, 온 힘을 다 쏟아보고 싶었다. 휴대폰으로 웅장한 록 음악을 틀었다. 내가 우리 반 계주 대표 주자로 뛰는 상상을 하며 마지막 300m 정도를 전력 질주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달리기를 멈추고 나니, 걷기도 힘들 정도로 지쳤다.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집으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바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여전히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침대에 드러누워서 생각했다. 장자가 말한 좌망(坐忘)과 심재(心齋)가 바로 이 느낌이 아닐까? 거리를 달리는 동안 나는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을 잊었다. 오직 내 호흡에 집중했다. 호흡이 가빠지면 속도를 줄였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 다시 속도를 높였다. 마지막 전력 질주 때는 정말 죽을힘을 다했다. 물론 그렇다고 빠른 건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최선을 다한 속도였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 이외에 나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장자가 말한 안명安命을 실천할 수 있었다. 고통스러웠던 사건들을 떠올리면서도 웃을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별일이 아닌 듯 보였다. 달리기를 통해 마음을 완전하게 비우고,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나를 괴롭히던 오감의 구속에서 탈피했다. 장자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달리기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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