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암환자의 머리 기르기 여정
항암은 약물에 따라, 체질에 따라 모두 다르지만 부작용을 겪게 된다. 나는 항암 부작용으로 손발 저림, 오심, 구토, 탈모를 겪었다. 그중 탈모로 인해 삭발을 했을 때는 대머리에 대한 좋은 점만 생각하려 노력했다.
'한동안 귀찮게 미용실 안 가도 되네'
'염색이나 펌 하지 않고도 가발로 이런저런 스타일 바꾸는 것도 재밌을 거야'
'샴푸 린스 안 써도 되니 편하네'
'머리는 시간이 지나면 금방 길어'
대머리일 때는 씻는 시간이나 노력이 많이 단축되었다. 얼굴에 비누칠할 때 머리까지 같이 거품 내어 헹구면 그만. 긴 머리일 때는 말리는 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지만 수건으로 털어버리면 끝.
가발을 쓰고 다니는 건 더운 여름을 나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꽤나 재밌었다. 물론 가발을 너무 자주 바꾸면 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미용실을 자주 다니는 줄 알고는 "엇 염색하셨네요?"라는 물음에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항암을 모두 끝내고 나니 속눈썹과 코털까지 포함해서 온몸의 털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21년 6월부터 10월까지 약 4개월 간 항암 6회를 마치고 난 후의 시점이다. 항암 중이었던 여름부터 가을, 겨울이 지나 작년 봄이 왔을 때에도 가발을 열심히 쓰고 다녔다.
내 몸의 털들이 조금씩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건 아마도 작년 초 겨울이었다. 그러니까 항암을 끝내고 대략 2~3개월 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조금씩 새싹 같은 검은색 심들이 돋기 시작했다. 바쁘게 지냈다 보니 매일매일 모습을 관찰하지는 못했다. 가끔 머리카락이 어느 정도 자랐는지 궁금해 남편에게 뒷모습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이따금 사진으로 남겼다.
기억에 겨울 동안 머리카락은 키위 껍질과 비슷한 모양새가 되었다. 속눈썹도 모습을 보였고 항암으로 인한 부기도 빠져가기 시작했던 기억이다.
3월 봄에 접어들면서 치료 전 모습으로 조금씩 되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긴 머리를 고수했던 나에게, 짧디 짧은 머리의 내 모습은 계속 낯설었다. 결론적으론 항암을 끝낸 지 1년 여가 되어서야 가발을 벗고 다닐만했다.
아마도 이 정도의 쇼트커트 길이가 되면 당신은 딜레마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마치 옛날 축구 골키퍼 선수 중에 김병지 선수의 머리스타일처럼 위에는 짧고 밑 머리만 긴 형상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위와 밑의 길이감을 어느 정도 맞추려 한 번씩 미용실에서 길이감을 맞추기 위해 다듬는 작업을 두 차례정도 했던 기억이다.
많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저학년 이후로는 긴 머리를 고수해 왔다. 염색, 펌을 번갈아 내 머리로 이것저것 해보는 재미가 있기도 하거니와 단발보다는 긴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삭발 전 내 머리는 숱이 적고 모질이 얇은 직모여서 빈약해 보이지 않으려 드라이를 잘해주어야 했고 항상 고데기를 사용했다. 볼륨감 있어 보이게 하려 적잖은 노력을 했더랬다. 머리를 몽땅 밀고 다시 길어내면 조금이라도 풍성하게 자라나길 바랐다.
하지만 다시 자라나는 머리들이 처음엔 곱실거리는 듯해서 기대했으나 너무 짧아서 그랬던 것뿐이었다. 모질은 여전히 얇았으며 머리숱의 양도 비슷하다.
머리를 밀던 날에는 왜인지 서러워 울기까지 했는데, 시간이 지나 언제 삭발을 했었나 싶은 시점에 왔다. 머리가 다시 자라나는 길이만큼 내가 받았던 슬픔은 조금씩 희미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