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암환자의 병원 일기 2
수술을 무사히 끝낸 환자에게 남은 것은 퇴원을 위한 회복이다. 나는 다행히 *복강경 수술로만 마무리되어 회복 속도가 빨랐지만 수술 후 3일간 극심한 변비에 걸려 지옥을 맛봤다.
*복부에 1cm 내외의 절개창을 내어 카메라와 기구를 넣어 시행하는 ‘최소 침습 수술법’이다. 개복수술보다 회복 속도가 빨라, 일상생활로 빠르게 복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술 후에 정상적인 생리활동이 되는지 관찰을 해야 하는데, 살면서 이렇게까지 나의 대소변을 자세히 관찰한 적은 없을 거다.
수술 회복 1일 차
수술 다음 날 아침, 아침 회진 때 주치의 선생님이 오셨다.
“복강경은 회복이 빠르니까 오는 주말에 퇴원할 수 있을 거야~”
집에 생각보다 빨리 갈 수 있다니 눈이 반짝이게 된다.
금식한지는 4일째가 됐다. 여전히 졸리고 힘이 없었다. 배고픔은 이제 망각할 지경에 다 달았다.
새벽 내내 간호사 분들이 몇 시간 간격으로 혈압, 체온 체크에 잠들라 치면 깨곤 했다. 물은 마실 수 있게 되었고 소변줄도 뺐다.
“여기에 화장실 가실 때마다 소변량을 재서 써주셔야 돼요.” 간호사 선생님이 좌욕기와 숫자 눈금이 있는 주전자처럼 생긴 도구를 주시며 말씀하셨다.
내 위장은 텅텅 비어있어 물을 마시는 족족 소변을 만들어냈다.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화장실을 들락날락. 레몬 물 컬러의 소변을 주전자에 옮겨 담는 작업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자 하니 내가 한 번에 누는 소변량도 알게 된다.
선생님이 내 소변 기록을 보시곤 정상이라고 해주시는데 이런 걸로 뿌듯해도 되나 싶다.
드디어 고대하던 점심시간. 입원하고서의 첫 식사는 가스가 나오는 것과 관계없이 점심부터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수술할 때마다 첫 식사로 나오는 미음식은 참 재미있다. 건더기가 하나도 없는 물로만 되어 있는데 밥, 국, 반찬 맛이 다 난다. 수저로 밥 맛이 나는 국물들을 마시기만 하니 전혀 흥이 나지 않았다. 자고로 음식이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야 하는 법인데.
그렇게 시무룩하게 털썩 누워서 빈둥거리려는 찰나에 우리 병실 담당 간호조무사님이 내 침대 커튼을 열어젖혔다.
“빨리 걸을수록 회복이 빨라요. 내가 몇 바퀴 도와줄 테니까 가봅시다.”
빨리 낫는다는 말에 무거운 몸뚱이를 애써 일으켰다. 수술한 배가 아플까 봐 무서워 연신 허리가 구부정해진다.
몽롱한 상태로 힘겹게 한 바퀴 돌았다. 두 바퀴부터는 스스로 걸었다.
수액 걸이대는 마치 보행기 같다. 다시 걸음마 연습을 시작한 아기가 된 것 같다.
일상을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기능인 데 병원에서는 달랐다.
가장 당연한 일상생활이 수술과 치료로 인해 힘들어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느릿느릿 걸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만 빨리 걸어도 뛰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이제 먹을 수도, 걸을 수도 있게 되어 나는 다시 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행복함도 잠시, 두 번째 고비는 이 날 오후부터 시작됐다.
점심으로 밥 맛이 나는 물이 다였던 나는 억울하게도 복통 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미음 반 그릇이 뱃속에서 가스를 만들어낸 모양이다. 가스는 점점 내 뱃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무지 내 뒤쪽으로 빠져나올 생각을 않았다.
저녁 식사로는 드디어 건더기가 있는 죽과 반찬들이 나왔다. 많이 먹어서 양으로 밀어 내보자는 생각에 신나게 수저질을 시작했으나 결과는 참패.
먹을수록 배는 더 아파왔다.
화장실 변기에 수차례 앉아 적극적인 노력을 펼쳐보았으나 희소식은 없었다.
작전을 바꿔 입원할 때 들고 온 푸룬주스 진액을 1리터짜리 병에 물에 타 계속 마시고 병동을 수십 바퀴 뱅뱅 돌았다.
푸룬주스를 많이 마시니 소변만 줄기차게 나왔다.
수술 회복 2일 차
어김없이 아침은 밝아왔고 식사가 나왔지만 먹을 수가 없었다.
편하게 누워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숨 쉬고 움직일 때마다 극심한 복통이 나를 괴롭혔다.
가스는 아직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살면서 방귀를 못 뀌어서 배가 이토록 아플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제도 수 십 번을 드나든 화장실 변기에 앉아 갖은 힘을 써봐도 결과는 같았다.
‘하.. 염병’
“선생님, 어제부터 배출이 안돼서 배가 너무 아픈데 변비약 좀 주실 수 있을까요?”
“말씀대로 수십 바퀴 걸어봤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요.”
약의 힘을 빌려야 마땅한 아픔이었기에 자연적인 해결 방향은 포기했다.
복통으로 인해 점심 식사도 먹을 수 없게 되자 드디어 약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변비약이라고 믿었던 그 건 위장운동 촉진제였다.)
약을 먹고 계속 또다시 병동을 뱅글뱅글 돌았다.
이렇게 하루 종일 가스 분출과 배변활동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고만 있으니 기가 찼다.
내일이 주말인데 퇴원하려면 방귀 인증이 필요하다니. 나 자신의 못 볼 꼴의 한계는 어디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약을 먹은 지 몇 시간이 흘렀는데도 감감무소식에 초조해졌다.
거듭된 실패에 내가 변비 걸렸을 때 취했던 방법들을 상기해봤다.
1. 플레인 요구르트에 올리고당을 뿌려 먹는다.
2. 생 마늘을 먹는다.
3. 매운 음식을 먹는다.
4. 참기름을 음식에 적당량 첨가해 먹는다.
5. 스타벅스의 ‘관장’ 라테라 불리는 커피를 마신다.
이 중 당장 해볼 수 있는 방법은 1번과 5번이었다. 우선 편의점으로 돌진해 플레인 요구르트를 털어 마셨다.
그리고 연이어 5번을 실행하기 위해 병원 안에 유일하게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스타벅스처럼 연유가 들어간 커피는 없었고 조용히 카페라테를 시켜 마셨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자리로 돌아왔더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변과 가스를 한꺼번에 배출할 수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께 이 기쁜 소식을 바로 전했고 다음날 퇴원 수속 준비를 허락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