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2살 그해 겨울
22살의 그 겨울
내가 스물둘이었던 해, 세상이 얼어붙었다. 그 겨울은 이상하게도 길었고, 잔인했다.
누군가는 스물둘을 인생의 봄이라고 부르겠지만, 나에게 스물둘은 한겨울의 한가운데였다.
평생 한 번 겪기도 벅찰 상실이, 그 짧은 몇 달 사이에 폭풍처럼 밀려왔고, 내게 남은 것은 망연자실함과
공허뿐이었다.
50이 넘은 지금의 나조차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 그해 겨울은
내 마음을 얼리고, 세상의 시간마저 멈춰버린 듯했다.
서울의 거리엔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왔다. 거리의 전구들이 반짝이며 사람들의 웃음을 감췄지만,
그 불빛도 내게는 흐릿하게만 보였다.
엄마는 며칠 전 중환자실에서 병실로 옮겨졌었다. 조금 나아지셨나 싶어
서울로 올라오며 안도했었다. 내가 믿고 싶었던,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던
희망이었다. 그러나 희망은 늘 가장 가볍게 부서진다.
1991년 12월 16일. 그날을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하철 파업으로 도로는 끝없이 막혔고, 나는 학원에서 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돌아와 자취방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숨을 돌리려던 찰나, 주인아줌마가 문을 두드렸다.
"집에서 전화 왔어. 얼른 받아보래.”
수화기를 집어 들었을 때, 그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너무 무겁고,
너무 낮아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어.” 언니의 전화였다.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입술을 열고 말하려 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모든 감각이 닫혀버린 것 같았다. 내가 울고 있는지,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옆에서 친구가 다급히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겨우 짜낸 목소리가 그저 울먹임으로 무너졌다.
"엄마가... 돌아가셨대."
그 말을 뱉고 나서야 모든 것이 무너졌다. 주변의 공기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창밖으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We wish your Merry Christma, we wish your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사람들은 그 노래에 맞춰 웃고 떠들었지만, 내게 크리스마스는 끝난 것 같았다.
아니, 세상 자체가 끝나버린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허겁지겁 짐을 싸서 원주로 내려갔다. 엄마가 있던 병원.
아니, 이제 엄마가 없는 병원.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공허함과 마주했다. 아빠와 오빠들, 언니들, 모두가 병실에 모여 있었지만,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모여 있다는 사실만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고, 엄마의 부재는 모든 것을 잠식하고 있었다.
엄마는 겨우 환갑을 넘긴 나이였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정말 젊었다.
내가 곧 다가갈 나이. 하지만 스물둘의 나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나는 그저, 그런 엄마가 우리를 두고 떠나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엄마는 억척스럽고 강한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선비처럼 고고하게 살았던 만큼, 엄마는 현실을 짊어지고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자식 여섯을 키우면서도 자신의 몸 하나 챙기지 않았던 사람. 나는 그런 엄마가 오래오래 살아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엄마의 몸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강하지 못했다. 어쩌면, 엄마가 너무 강했기에 그녀의 몸은 더 버티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패혈증으로 떠났다. 감기로 시작된 것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그 감기가, 엄마의 생명을 앗아갔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졌다. 병원에 가지 않았던, 아니, 가지 못했던 그 결정들이 모두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박혔다. 가끔은 아빠를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되돌릴 수 없었다.
엄마는 떠났고, 나는 그 사실을 끌어안아야 했다.
엄마의 죽음은 이미 텅 빈 내 삶에 또 하나의 깊은 골짜기를 남겼다. 엄마의 부재는 단순히 슬픔이 아니라, 그동안 억지로 봉합해 왔던 모든 상처를 다시 벌어지게 했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얼마 되지 않아, 셋째 오빠가 우리를 떠났을 때 느꼈던 그 공허함이 다시 밀려왔다.
셋째 오빠는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을 앞두고 있었다. 아빠 대신 친척 어른의 묘를 이장하러 간 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이유조차 모른 채 병원 중환자실에서 보름을 버티다 떠나갔다.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말. 병명조차 없는 죽음. 사람들은 잘못된 이장이 원인일지도 모른다고 떠들었지만,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그냥 오빠가 사라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빠가....
오빠의 죽음은 엄마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엄마는 차츰 쇠약해졌고,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셨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집안은 깜깜했고 엄마는 멍하니 마루에 앉아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그러다가 절에 가시는 날이 많아지시더니, 차츰 마음의 평안을 찾으신 듯
억지로 웃고, 억지로 살아내려 애썼다. 그러나 나는 이제야 안다. 그 슬픔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엄마가 떠난 후, 세상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흘러갔다. 해는 떴고, 사람들은 웃었다. 버스 창밖의 노을은 여전히 붉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세상이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때로는 저주처럼 느껴졌다.
나는 졸업을 두 달 앞두고 있었다. 졸업 후 첫 월급을 타면, 엄마에게 빨간 내복을 사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돈 많이 벌어서 엄마 먹고 싶은 거 다 사주고 싶었다. 엄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엄마는 그 소소한 꿈조차 남기지 않고 떠났다.
엄마가 없는 세상은 너무 고요했고, 동시에 너무 무거웠다. 시간은 멈춘 듯 느리게 흘렀고, 그 시간 안에서 나는 더 깊이 가라앉아 갔다. 슬픔은 시간과 함께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억들과 얽히면서 더 짙어졌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그 모든 상실이 내 삶의 가장 추운 겨울로 남았다.
스물둘의 겨울은 내게 눈이 아니라 얼음으로 덮였다. 그 얼음은 지금도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녹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얼음이 있어야 내가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을 잊지 않도록, 그 기억들로 살아가도록.
스물둘의 나는 그렇게 얼어붙어 있었다.
지금도 나는 엄마가 매일 그립다.
작가 앨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