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미나드의 살롱 음악, ‘가을(Automne)’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어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fc9_XaIWdbA
세실 샤미나드(Cécile Louise Stéphanie Chaminade, 1857- 1944)는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프랑스 출신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입니다. 샤미나드는 당시 여성들이 음악활동을 함에 있어 제한이 많았던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 음악가로 활동하였으며, 낭만주의 음악의 아름다움을 담은 수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샤미나드가 활동했던 19세기는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한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자본주의가 형성되며 부르주아(Bourgeois)라는 계층이 새롭게 등장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재산으로 지위를 쌓고자 하였으며, 자녀들을 우아하고 교양 있는 여성으로 키워 높은 신분의 가정과 혼인시켜 출세의 기회를 얻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 탓에 여성들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늘어났지만,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거나 직업으로 삼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성은 ‘여성다움’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 때문이었죠. 여성들은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어머니로 행동해야만 했습니다. 여성들에게 음악이 주어진 것은 그저 교양 있는 이미지를 유지하는 명목이었을 뿐이었어요.
샤미나드 또한 이러한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는 그녀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며 파리 국립 음악원에 진학하길 권유했지만, 보수적인 아버지의 반대로 입학을 할 수 없었기에 파리 음악원 교수진들에게 개인 교습을 받으며 음악 공부를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문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당대 사회에서 여성이 전문 음악가로 활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샤미나드는 남녀노소 누구나 음악 활동이 가능했던 살롱(Salon)으로 향하게 됩니다.
살롱은 파리에서 시작된 사교 모임으로, 엘리트들이 모여 문학, 예술, 정치, 철학 등의 주제를 논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연주된 음악은 주로 주제 선율이 명확하고 간결한 성격 소품*이나, 표제음악**과 같은 낭만주의 작품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샤미나드 또한 아름다운 살롱 음악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중 오늘 소개할 음악은 6개의 연주회용 연습곡(6 Etudes de Concert, Op.35, 1886) 중 제2곡, ‘가을(Automne)’입니다.
그녀의 가을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샤미나드는 더운 여름이 지나고 찾아온 서늘한 공기의 생경함, 바람결에 천천히 내려앉는 낙엽들, 그리고 무심코 내디딘 발자국 아래 바스라지는 여린 잎사귀들의 감각을 섬세히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음악을 듣다 보면, 계절의 한가운데서 느끼는 내면의 격동이 울려 퍼지는 듯합니다. 폭풍 같은 김정의 물결을 견뎌낸 뒤 마주하는 가을의 고요, 그리고 마음을 어루만지듯 흐르는 선율은 우리로 하여금 계절의 끝자락에서 찬란히 흩어져가는 순간들을 곱씹게 만듭니다.
샤미나드는 여성 작곡가 최초로 명예로운 레지옹 도뇌르 훈장(Ordre national de Légion d’honneur)***을 받으며 영예를 안았습니다. 점차 유명해진 그녀는 서구권 전역에서 연주 활동을 이어갔고, 그녀의 음악을 사랑한 팬들은 200개가 넘는 샤미나드 클럽을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샤미나드의 살롱 음악을 이야기했지만, 그녀는 피아노 소나타, 교향곡, 발레음악, 가곡, 오페라, 실내악곡 등 400여 개에 이르는 작품들을 남긴 다재다능한 작곡가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샤미나드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당대에 큰 인정을 받았던 작곡가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심경이 복잡해집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쇼팽을 이야기를 하듯, 자연스럽게 샤미나드의 이름을 부르는 날이 찾아오길 소망합니다.
*성격 소품: 특정한 감정, 장면, 인물, 이미지를 표현하는 기악곡
**표제음악: 문학, 그림, 자연, 역사적 사건 등 음악 외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음악. 음악의 제목이나, 프로그램 노트 등을 통해 청중에게 곡의 내용 암시하는 경우가 많음
***레지옹 도뇌르: 나폴레옹 1세가 1802년 재정한 상.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발전에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명예로운 훈장
참고자료
민은기. ‘음악과 페미니즘’. 파주: 음악세계, 2022.
이윤나. “셰실 샤미나드(Cécile Chaminade)를 통해 본 19세기 여성 작곡가의 위치와 샤미나드의 피아노 음악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