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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Jan 17. 2023

뜻밖의 위안

감정 언어 [놓이다]

사전적 의미: 걱정이나 근심, 긴장 따위가 사라지거나 풀리다


새해가 시작되면 그간 잊고 지내던 나의 나이를 다시 직면하게 되고, 마주한 내 나이에 ’이 나이가 되도록 난 무얼 했나’ 후회와 ’그래도 이건 했잖아’ 애써 스스로의 위로거리를 찾기를 반복하며 ’잘 될 거야’ 주문도 외워보는 시기가 연초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 음력설이 되기 전, 달력의 숫자는 바뀌었지만 ’아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공허한 시기가 요즘이지 않을까. 설이 지나면 1월은 훅 지나가 있을 테고, 다른 달에 비해 이 삼일 짧은 2월은 어영부영하다 보면 사라져 있을 게 뻔했다.


또다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조바심에 마음만 초조한 요즘, 뜻밖의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고 나와는 실오라기조차 상관없는 배우의 연말 시상식 수상 소감을 보고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누구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잊고 지내는 사실을 알려주는 문장 하나하나가 건네는 위로는 너무 따듯했다. 찾아보니 너무 유명한 수상 소감으로 이미 많이 회자 된 내용이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지금 나에게 다가와 위로를 건네받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 내용인 즉, 2019년 제5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에서 jtbc의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로 대상을 수상한 김혜자 배우의 수상 소감이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수상 소감은 드라마 마지막 회의 엔딩 내레이션이었다고 한다. 이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국민배우라 불리는 그녀가 읊조리며 전한 소감은 이 시대를 살아온 어른이 전하는 진심 어린 토닥임이었고, 그 울림은 진했다. 별것 아니라 치부하고 감사한 줄 모르며 지나쳤던 것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닌지… 이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는 위로는 ‘지금의 나도 괜찮다’라고 인정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또한 괜찮은 글이 주는 감동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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