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시작하면 교육의 80%는 독서로 충분하다
지난 20여 년간 나는 두 아이를 키웠다. 아이에게 잘하려는 마음은 앞섰지만 모르는 게 많아 매일 허둥댔다. 우리가 살았던 환경보다 더 나은 환경을 주고 싶은 마음은 모든 부모의 바램이다. 지금 아는 교육의 다양한 측면을 아이가 어린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가 했던 걱정의 90%는 필요없었을 것이다. 복잡한 교육 정책의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워 내 소중한 젊은 날을 매일 행복하기도 아까운데 어차피 자라면 배울 많은 것을 미리 걱정하느라 허비했다. 매일 행복하고 싶은 부모라면 우리 나라의 복잡한 입시제도의 핵심을 처음부터 잘 파악해서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매일 행복할 수 있으면서도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란다.
우리 교육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거칠다. 마음 준비 없이 자녀 교육에 들어갔다가는 인생의 많은 것을 쏟아 붓고도 득보다 실이 더 클 수도 있다. 애정이 너무 과한 것이 문제가 된다. 아이들의 정서 안정이 더 먼저인데 그것을 모르고 공부에 너무 치중하는 것은 결코 아이들 인생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열심히 뒷바라지 한 부모에게 고마움보다 원망이 더 큰 경우도 많으니까 말이다. 좋은 대학을 합격했다고 부모에게 모두 고마워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자녀 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부부가 방향과 전략을 잘 설정하고 힘을 조절해야 한다. 부모의 사랑은 진심이지만 그 사랑을 받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주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얻는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오히려 못한 것과 같다. 우리의 교육은 지나치게 양으로 밀어 부친다. 아이들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공부로 몰아 넣는다. 우리 세대 학력고사 입시를 너무 경쟁적이고, 주입식이고 암기식이라고 비난했었다. 국가의 경제력이 부쩍 늘었기에, 지금은 많이 나아졌을 거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우리의 입시 제도는 지구상에서 다른 사례를 찾을 수 없을만큼 복잡하고 경쟁적이고 주입식이다. 아이들의 활동은 촘촘하게 점수화되어 줄세워진다. 여전히 아이들에게 생각하고 질문할 시간을 주지 않으면서 바쁘게 한다. 사교육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사교육은 공교육의 영향력을 뛰어넘었다. 아이들은 매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엄청난 양의 문제풀이를 한다. 경험과 생각으로 자신의 공부 욕구를 끌어내는 시스템이 아니다. 일찍부터 승부에서 이기려는 결심이 공부 동기의 대부분이다. 어린 아이 때부터 하나 둘 학원으로 내몰린 아이들은 금세 지친다. 친구는 이겨야 할 대상이 되었고 우정은 흐릿한 관념이 되었다.
이런 제도를 한 개인의 힘으로 어찌 바꿀 수 있을까. 아이들 낳고 교육에 대해 정보를 찾다가 크게 실망했다. 갈수록 더 경쟁적인 교육 환경에서 공부와 정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으로 나는 독서를 마음에 품었다. 독서를 아이들 교육의 중심에 두겠다는 결심은 온갖 의구심과 시행착오를 거쳐 이루어졌다. 일찍부터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고 다독을 즐기도록 만들어준 덕분이었다. 이 책에서는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독서는 온세상이 칭송하는 자녀 교육의 가장 좋은 공부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은 독서를 온전히 공부의 중심으로 삼기에는 어려운 환경이다. 사교육이 빵빵한 정보력과 체계적인 수업으로 공교육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만 경쟁에서 도태될 것 같은 조바심으로 너무 이른 나이부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분위기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만 되어도 매일 학교와 학원를 오가며 공부와 숙제로 시달린다.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들조차도 버겁고 주도적일 수 없는 환경이다. 중학생이 되어서 독서를 시작하여 입시를 잘치르자는 생각은 가능은 하지만 현실적이지는 않다. 독서를 늦게 시작할수록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더 강해질 활률이 높다. 그래도 아이가 아직 초등학생이라면 독서를 중심에 두고 사교육으로 하는 교육을 책을 읽어서 대체할 수가 있다. 두 딸의 공부와 정서 두 마리 토끼를 잡게 해준 독서를 이 책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책은 모두에게 가장 훌륭한 공부법인 독서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부득이 주요 독자를 아직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에게 두었다.
독서로 아이들 교육의 80%를 하겠다는 계획으로 아이 교육을 시작했다. 나머지 20%는 상황에 따라 아이가 스스로든 사교육을 이용하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확신에 가까운 생각으로 출발했으면서도 과정에서 수없이 많이 흔들렸다. 이제 두 아이는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에 합격하고 두 아이가 공통적으로 내게 해준 칭찬이 있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독서를 취미처럼 삼고 다독한 것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게 해준 행운이었다고. 어린 시절에 많은 경험을 하며 가족과 즐거운 대화와 추억을 만들면서도 공부에서도 원하는 성취를 했다는 점에서 나도 아이들도 독서에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크게 사춘기를 겪지 않아도 되었고, 아이들이 공부를 싫어하지 않았고 스스로 하려는 마음은 점점 커졌다.
정서와 공부 둘 다를 잡고 싶은 부모라면 사교육을 적절하게, 영리하게 이용해야 한다.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부페에서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탈이 난다.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사교육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아이의 시간은 하루 24시간 뿐이다. 좋은 학원 프로그램이 많다고 귀가 얇아져서 하나 둘 줍줍하다보면 아이의 마음은 너덜너덜해진다. 그렇게 몇년만 지나면 아이들은 공부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는다. 내적 동기가 생기기 전에 밀어부치다 보니 타율 공부가 되었고 시켜서 하는 공부는 재미가 없다. 부모의 공부를 눈치보며 억지로 하는 공부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부모는 최선을 다했으나 아이들은 부모를 원망하기 쉽다.
”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공부한 기억 밖에 없어요“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말했다. 주로 공부를 잘한 아이들의 말이다.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공부 성취에 대한 자부심도 그리 크지 않다. 물론 사교육을 많이 받으면서 성실한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은 높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부모가 학원을 많이 보내주어서 정말 감사하다는 아이의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아이들이나 부모를 문제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환경이 그런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어찌 비난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사회 제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개인이기 때문이다. 좋은 길을 찾고자 노력하지만 미래를 알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초등 이하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자녀 교육과 독서와의 관계를 경험을 통해 관찰한 바를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제도를 개인이 바꿀 수는 없지만 미리 교육 환경의 전체를 간파하고 미리 독서로 준비하면 사교육의 몰매를 피해갈 길이 있기 때문이다. 조금 멀리 미래를 생각하면서 자녀 교육에 임해야 한다. 교육의 전략이 있어야 수많은 좋은 조언에 휘둘리지 않고 갈 수 있다. 생각보다 빨리 아이들을 교육하는 20년은 지나간다. 팔팔한 서른에 엄마가 되었는데 순식간에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다. 성취의 기쁨을 맛보기가 무섭게 20년간 가꾸지 못한 몸과 마음이 티를 내는 50대에 이르렀다. 얼마나 가혹한 교육이었던지 지나오는 과정에서 몸이 아파 세상을 떠나는 엄마들을 여럿 보았다. 괴로운 마음을 이해받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들 소식도 많이 들었다. 모두가 몸쓸 교육이라 비난하면서도 그 트랙에서 내려오기는 쉽지 않았다. 가장 사랑하는 자녀의 첫 단계를 최고로 만들기 위한 마음은 진심이지만 정보와 지혜는 늘 부족하기만 했다. 양적으로 부쩍 자란 우리 나라의 경제적인 발전의 이면에는 정신 건강 및 행복 지수에서는 늘 OECD 최하위를 기록하는 각박한 교육이 자리한다. 매년 아무거 하나 트집잡아 교육 정책을 변경시키는 것은 절대 교육의 개혁이 아니다. 잦은 교육 제도의 변경은 사교육을 줄이고자 한다고 말했지만 항상 사교육을 키웠다.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더 덜어주는 데 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어도 아이가 과하다 느끼는 순간 독이 된다.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큰 일 날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대부분의 학원은 다니지 않아도 다른 길이 분명히 있었다. 정보가 없고, 조급했고, 아이를 믿는 마음이 부족했기에 다른 사람의 판단에 따라 살기도 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줏대를 가질 수 있다. 설령 바로 앞의 기회를 놓쳤다해도 긴 시간으로 보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하나의 기회가 사라진 자리엔 반드시 다른, 어쩌면 더 좋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