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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양 Jan 29. 2024

나는 오늘도 정신병자 엄마로서의 하루를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하루가 소중한 세 아이의 엄마의 이야기

나는 2020년 여름, 급성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수면장애를 시작으로 2021년 조울증을 진단받고, 2023년 가을에는 성인 ADHD를 추가로 진단받으며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세 아이의 엄마이다.


처음에 공황장애를 진단받고 나서 나는 '과연 내가 밥이나 먹을 수 있을까? 심장이 떨리지 않고 잠에 들 수 있을까? 잠시라도 다리를  떨지 않는 채로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하고 매 순간 질문을 던지며, 그런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의 최대 과제였고, 정신과에 갈 때마다 언제쯤이면 정상이 될 수 있냐고 울면서 물어봤던 것 같다. 그때마다 주치의는 '한 달 뒤쯤엔 조금 더 나아질 거예요'하며 내가 바라는 기한에 대한 얘기는 해주지 않은 채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얘기만 남겨줬다.


2024년을 시작하며 내가 이 질병들과 동행한 지도 3년 반을 넘어섰다. 더 늦어지기 전에 이 삶들을 남겨놓고 싶다. 걷는 이 길이 쉽지 않았지만 분명히 지나올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지나올 수 없을 것 같던 길이 분명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싶고,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처음 공황장애를 얻었을 때는 중증 우울증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서점에 가서 '죽음'에 관한 책은 모조리 읽었다. 그것은 '죽음'에 가까워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죽음'에 가까웠던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삶'과 가까워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얘기들로 내가 반드시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간절히 살고 싶었다. 다행이었다. 내가 죽고 싶지 않았었다는 게.


간절히 살고 싶었던 데는..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소음에 노출되면 불안과 공황이 가중되어서 집에서 생활하면서도 문을 꼭 닫고 이어플러그를 한 채로 안방에서만 생활할 수밖에 없었는데, 안방너머 거실에서는 만 7세, 5세, 3세의.. 정말 세상에서 가장 활발하게 꼬물꼬물 날뛰는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이 소리를 박박 지르며 놀고 있었다. 가까이할 수 없으면서도 가장 가까이 곁에 두고 싶은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그 시절들을 지나올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이 훌쩍 자라 다음 달이면 초5, 3, 2학년에 진학한다. 아이들은 내 병에 대해서 알고 있다. 알 수밖에 없었다. 내 병세가 안 좋아지면 나는 용광로에서 튀어나온 헐크처럼 화를 많이 냈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이 차려지면 아이들을 꼭 안고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마음을 전했다. 엄마가 아픈 병이 있는데 화를 많이 내는 증상도 있어서 어제부터 다시 병원에 가서 새 약을 받아왔노라고.. 정말 미안하다고.. 아이들은 엄마가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지.. 얼마나 열심히 병원에 빠지지 않고 다니고 있는지 알아주었다. 정말로 고맙게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니 3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얼마 전에 성인 ADHD를 진단받고 치료를 새롭게 시작한 것까지 생각해 보니, '그 길의 끝이 쉽게 올 것이라고 섭불리 또 착각했었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의 질병들과 동행하면서 앞으로도 징검다리들이 수없이 놓여져 있을텐데 그것들을 좀 더 의미있게 기록해 두면서, 그것이 나에게, 또한 누군가에게 의미의 확장을 이뤄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살고 싶었을 때 가장 죽음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거기서 '살아냄'을 발견했듯이..


이제 하나하나 꺼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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