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보니 OOO엄마, 태어나보니 XXX이 아빠네."
"금수저, 아니 다이아몬드 수저다."
유명인이나 연예인이 임신했다는 기사에 어김없이 달리는 댓글들을 보며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그들을 부러워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딱히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그들의 삶이 부럽고 궁금할까. 내가 있는 곳보다 더 높을 곳을 동경하고 궁금해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며 나의 호기심과 질투 어린 시선을 정당화했다.
올해 큰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유명 연예인 부부의 아이가 입학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엄마가 모태 미인이잖아. 아빠가 대한민국 최고 조각미남인데 아이는 얼마나 예쁠까? 주변 엄마들의 호기심 어린 대화를 들으며 무심한 척했지만 나 역시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화제의 그 아이가 등장하면 여물지 않은 아이의 외모를 평가하고, 소문에 귀 기울인다. 공부를 못하면 인물값 못하네. 잘하면 잘하는 대로 극성이라는 듯 떠드는 사람들. 그런 이야기를 또 재미있다는 듯 경청하는 나는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궁금하다. sns 속 호화롭고 여유 있는 그들의 삶을 자꾸만 훔쳐보고 싶고 부럽기도 하다. 그 아이가 입은 브랜드의 이태리 패딩에 눈이 가고,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낚여 패딩 광고를 시청한다. 그리고 결국 조금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직구 사이트를 검색하기 시작한다. 할부로 결제하면 괜찮지 않을까? 조금 큰 사이즈로 구입하면 2년은 넘게 입힐 수 있으니 괜찮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결국 나는 아이에게 조금 넉넉한 사이즈의 고가 브랜드의 패딩을 입혀놓고 혼자 좋아한다. 막상 아이는 아무 생각이 없다. 아이의 패딩으로 시작한 나의 소비는 끝이 없다. 그러다 '다음 달 결제 예정금액'을 문자로 받고 나면 씁쓸해지는 기분을 느끼지만 나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소비의 과정은 계속 반복된다.
이런 나는 한심한 인생인가. 글쎄, 모르겠다. 어차피 인생은 욕망과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의 반복이고 지친 내 삶을 위로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위안하며 오늘도 나는 유명인의 삶을 훔쳐보고 시기하고 부러워하고 흉내 낸다.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내가 이 순간을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이며 즐겁기 위한 놀이라고 여기면 그리 나쁠 것도 없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야" 드라마 속 대사와 같은 문구를 떠올리며 오늘도 나는 흔들리지 않으려 집중하고 노력한다.
유명인의 부모를 둔 아이의 인생을 생각하면 그들의 삶도 나와는 다른 차원에서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살며시 걱정해본다. 그러면서도 누가 누굴 걱정하는가 하는 생각에 풉 하고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