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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코와푸치코 Jul 11. 2021

샤넬에서 생일파티를 해준다고?!

부러우면 지는 거야

  2021년 7월 샤넬은 '또' 가방 가격을 인상했다. 가방에 따라 인상률은 달랐지만 10% 이상 오른 가방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픈런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전히 백화점 정문 앞에는 낚시의자가 놓여있고, 비가 와도, 무더위가 계속되어도, 샤넬 줄 서기(혹은 샤넬의 줄 세우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구나 다 그렇게 줄을 서야만 샤넬백을 살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샤넬의 VIP 고객들은 줄을 설 필요가 없다. 자신을 담당하는 셀러에게 미리 연락만 하면 대기 없이 입장 시간을 잡아준다. 어디 그뿐인가. 쾌적한 공간에서 원하는 상품을 구경할 수 있도록 단독룸을 마련해주고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다과도 즐긴다.   


  어느 날 친한 지인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피코, 다음 주에 샤넬 가서 밥 먹을래?"


  나에게 이렇게 묻는 그녀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오너이며 샤넬의 오랜 VIP 고객이다.


 "샤넬이요? 샤넬에서 밥을 줘요?"


 "아, 별 건 아니고 다음 주가 내 생일인데 파티를 해준다 그러네. 친구  두 명 데려오라는데 같이 갈래?"  "생일파티요? 샤넬에서요? 네네! 너무 가고 싶어요!"


  샤넬에서의 생일파티라니... 나는 파티에 가기 전부터 이 이야기는 브런치 대박 글감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어느덧 나도 브런치 글쟁이 다되었다)


  지인에게 파티의 초대자로 '선택받은' 나는 샤넬에 입장했다. 물론 줄 따윈 서지 않았고 매장에 들어서자 셀러들이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나의 기대감은 극대화되었다. 화려하고 세련되게 꾸며진 단독룸으로 안내받고 미리 고급스럽게 세팅되어 있는 테이블 소파에 착석했다. 호텔 고급 레스토랑처럼 코스요리가 순서대로 쓰여있는 안내문이 있었고 그 옆에는 엄청나게 큰 꽃바구니도 보였다. 룸 안의 모든 게 신기했고 새로웠다. 식사를 하기 전 웰컴 드링크로 칵테일과 커피를 마시고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었다. 코스가 진행될 때마다 요리에 대해 소개받았고 맛은 뭐... 잘 느끼지 못했다. 사실 입 속에 뭐가 들어갔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샤넬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아우라와 느낌에 압도되었던 탓일까.  아마도 실감이 잘 안 났던 것 같다.

  

  디저트로 마무리된 식사를 마친 후 지인의 담당 셀러가 와서 우리에게 태블릿 PC를 하나씩 주며 원하는 제품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평소 알고 있던 모든 정보를 총동원해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샤넬의 핫템들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가브리엘 백팩'

'믹스드 파이버'

'J12 시계'

'코코 핸들 스몰' 등등..

"벨크로 샌들'

(물론 내가 물어본 대부분의 상품은 재고가 없었다...)



  각종 액세서리, 스카프, 지갑 등등 매장에 없는 것 빼고 몽땅 빠짐없이 구경했다. 시간의 쫓기듯이 얼른 선택해야 하는 촉박함 없이 아주 여유 있고 우아하게 상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평가했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내가 샤넬의 VIP 고객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샤넬의 의류들을 입어보았다. 한 벌에 280만 원 하는 스웨터를 입고 1200만 원 택이 붙어 있는 코트도 걸쳐보았다. 거울 속 비친 내 모습을 보자 허허허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흘렀다. 극진한 대접을 받고 나자 갑자기 이 모든 걸 공짜로 누려도 될지 걱정이 되었다. 지인은 절대 사지 않아도 괜찮다며 구경만 하라고 만류했다.


"내가 여기서 쓰는 돈이 얼만데. 피코! 걱정하지 말고 구경만 해."


  지인의 당당함과는 별개로 나에게 극진한 대접을 해준 셀러에게 도움되는 상품을 구매해주고 싶었는데 뭐하나 선뜻 사줄  없는 나의 구매력이 너무 미약해서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엄청난 고심 끝에 50 원짜리 귀걸이 한쌍을 구매했다. 아마도 그곳에서 판매하는 제품  가장 '저렴한' 상품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나에게 상품 구매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진귀한 경험에 대한 미약하게나마 보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지갑을 열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할부 가능 여부를 알려준 셀러가 천사처럼 보였다.

  파티가 끝나갈 무렵 셀러는 아름다운 플라워 케이크와 생일선물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파티는 끝이 났다. 호박마차를 타고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갔다가 마법이 풀려 재투성이로 돌아온 신데렐라의 기분이 바로 이랬겠구나 싶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푸치코에게 오늘의 무용담을 참전용사처럼 떠들기 시작했다.


" 푸치코! 나 진짜 돈 많이 벌고 싶어."

" 돈 벌어서 뭐하게?"

" 나도 샤넬의 VIP가 될 거야"

"그럼 앞으로 너의 장래희망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고 샤넬 VIP야?"

"그런 셈이지!"

"송충이가 솔잎 대신 샤넬 코스요리를 먹고 와서ㅋㅋㅋㅋ"



  나는 몰랐다. 마흔 살의 내가, 나의 장래희망을 샤넬 VIP라고 말하게 될 줄은. 뭐 그러면 어떠랴. 꿈이 있다는 것은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일 테니.


샤넬이여, 기다려라. 피코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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