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에게 이런 프로젝트를 하자고 했을 때 나는 기쁘기만 했어. 부담이라든가 걱정이라든가 이런 건 하나도 없었어. 이런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건지도 몰랐는데 알려줘서 고마웠고 또 그런 걸 함께 해보고 싶은 사람이 나라는 게 참 좋더라. 왜 그런 거 있잖아. 사랑고백받은 기분이랄까?(너무 오버인가?ㅋㅋ)
우리가 서로의 글을 읽으면서 여섯 살의 나이 차이가 무색해지게 공감하고 특히나 책에 관한 이야기 하면서 통할 때 참 좋더라.
요즘은 책을 안 읽는 사람이 많은 만큼이나 책에 열정적인 사람도 많은데, 그 열정적인 사람들 속에서 비슷한 코드를 가지고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려면 열심히 찾아 나서야 하더라고. 그런데 이렇게 우연히도 나와 코드가 잘 맞게 독서하고 글을 쓰는 사람을 만났으니 나에게 행운이 찾아온 기분이랄까?
나도 한때는 자기 계발에 열을 올리며 한 열정 하던 여자였어. 그래서 자기 개발서들을 섭렵하며 하루하루를 아주 타이트하고 촘촘하게 살았지(하루를 쪼개고, 시간을 쪼개고, 분을 쪼개가며 살았어). 그런 중에 읽는 책들이란 자기 경영, 새벽 기상, 동기부여, 마인드셋 뭐 이런 키워드로 설명이 되는 책들이었어.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나를 새롭게 세팅하면 내가 성공할 거라 믿었어. 아니 솔직히 성공하고 싶었지. 더 이상 낙제자로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어. 나는 내가 낙제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낙제자 딱지를 떼고 내 앞에 무엇이 됐든 '성공'이라는 수식어를 좀 붙여야 내가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 그래서 그때의 나에게 책과 독서는 행복으로 가기 위한 성공의 수단 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렇게 2년을 조금 못되게 달렸는데 지치더라. (10년 이상을 자기 계발에 매진하고 독서를 끊임없이 해서 성공했다는 유명 강사처럼 나는 안 되겠더라고) 나에게 책은 어떤 의미인지, 독서의 목적은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됐고, 내 삶의 방향 가치관 이런 것들은 뭘까? 모든 게 혼란스러웠어. 새벽부터 눈을 뜨고 열심히 뭔가는 하지만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어. 결국 나의 모든 행위의 종착점은 나의 내면의 '행복'인 거 같은데 행복하지가 않으니... 책을 수단으로 성공을 갈망하는 행위가 부담스러워졌지. 책을 읽는 행위는 좀 맑고 순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편에 있었던 거 같아. (이렇게 말하면 자기 개발서를 읽는 사람들의 목적이 순수하지 않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그런 차원이라기보다는 나같이 지극히 감성적이고 우뇌적인 사람에게 독서는 문학적 감수성을 더 느끼고 마음의 위로와 공감을 팍팍 받을 수 있는 독서가 더 맞는 거 같다는 의미야)
나는 그림책이나 아이들과 함께 읽는 동화를 읽고 내가 공감하고 위로를 받았을 때 내 마음이 촉촉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라는 사람이 더 이상 자신감 없는 낙제자가 아닌 당당한 한 인간이 되는 기분이 들더라. 요즘 말로 자존감이 팍팍 올라가는 기분이야. 그러니 그림책이며 동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더라고.
엊그제는 초등 저학년 수업을 위해 '수지 모건스턴'의 동화들을 읽다가 내가 또 위로받는 문장을 발견했어. 수지 모건스턴 알지? (안다고 했지!) 두께로 봤을 때는 초등 저학년이 읽을만한 아주 얇은 동화 중에 '똑똑해지고 싶어!'라는 동화가 있거든.
<똑똑해지고 싶어!> 수지 모건스턴 글, 클로드 K. 뒤브와 그림, 크레용 하우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와
행복을 얻기 위한 모든 게 '일'이라고 생각하면 솔직히 즐겁지는 않아 알렉산더는 엄마의 대답을 듣고 모든 것에 항상 '일'이라는 끔찍한 단어가 뒤따른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무엇을 하든 반드시 '일'이 되어 버리다니. 심지어 행복마저.
이 구절을 보고서야 나는 확실히 깨달았어.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말이야. 현재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만족하며 행복인 줄을 모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기루 같은 '행복'을 갈망하며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야. '일'에는 늘 인내와 최선과 노력을 수반해야 했고, 현재를 유예하는 건 기본이잖아. 그래서 즐겁지가 않았었다는 것도 알았지.
이제 언니는 말이야. 어느덧 마흔 중반의 지점에 서 있더라. 어쩌면 인생의 절반은 살아온 거 같은데... 이제는 '행복'을 얻기 위해 '일'을 하기보다는 지금 현재 내 주변에 널려 있는 작은 행복들 주워 담으려고 해~. 그리고 너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게 언니로서의 진심이야^^(같이 막 주워담자.)
<육 센치 여섯 살>프로젝트
키는 육 센치 나이는 여섯 살 차이 두 여자. 마흔이 넘어 인생을 조금 알게 된 육 센치 작고 여섯 살 많은 언니와 인생을 좀 안다는 나이 마흔이 되기를 갈망하는 육 센치는 크고 여섯 살은 적은 동생이 책 이야기를 편지로 주고받습니다. 언니는 독서교실 선생님으로 동생은 그림책 활동가로 살아갑니다. 책을 매개로 삶을 성찰하고 글을 쓰며 마음을 나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