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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May 27. 2022

언니, 그래도 마음 바구니 한편은 비워둘게요.

같이 행복을 줍줍 하자는 언니에게

진영언니에게


 나의 이름을 불러주어 고마워요. 사실 아이 엄마가 되고 보니 OOO보호자, OO의 엄마로 불리는 일이 훨씬 많아졌어요. 요즘은 조금씩 제 이름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여자 사람이 쓴 편지글을 받아본 게 얼마만인지... 마음이 이상해요. 좋다, 벅차다, 흥분된다 라는 표현보다 '이상하다'라는 표현이 딱 제 맘 같아요. 어릴 적 교환일기를 쓰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또 다 커서 보내는 편지에는 어른인 척하는 어려운 단어들이 마구 들어가 있을지 아니면 여전히 어린 시절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지, 궁금증도 일고요. 여하튼 맘이 이상해요.



 이 편지 프로젝트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언니에게 말할 때 두근두근 했어요. 온라인의 세계를 믿지 않았던 제가 랜선으로 만난 언니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도 너무 신기하고요. 진심은 통한다는 말은 딱 이럴 때 어울리는 거겠죠? 편지에 담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왜 '유재석과 형'들로 이루어진 '조동아리'는 아침에 모여서 날새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떤다고 하잖아요. 지금 제가 언니에게 이런 이야기도 해야 할 것 같고, 이런 말도 건네야 할 것 같고, 또 저런 생각도 물어봐야 할 것 같은, 날 새는 줄 모르고 글로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이에요. 앞으로 우리의 시간은 계속될 거니까 오늘은 언니가 들려준 이야기에 제 답을 해볼게요.




 어제는 뜨거운 햇살이 부서지다 못해 아스팔트와 혼연일체가 되어 끈적한 사랑을 하는 오후 4시에 산책을 나갔어요. 뭐 저도 저녁 어스름의 낭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지만 아직은 딸린 입을 먹여야 하는 게 저의 본캐에 소홀해서는 안되니까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아이들이 학원을 간 틈을 타 살도 뺄 겸 산책을 나왔지요. 예상과 각오를 하고 나오기는 했지만 그늘 한 점 없는 산책로가 조금 부담스럽게 정열적이었어요. 그래도 손에 딸린 아이들을 잠시 떠나보내고, 오롯이 홀로 양손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기만 하더라고요. (저는 저의 아이들을 무진장 사랑합니다만 그래도 혼자의 시간은 꼭 필요합니다)



 산책로 옆으로는 큰 잔디밭이 이어지는데요, 비둘기는 인간과 너무 친해져서 나뭇가지도 아닌 잔디밭에 앉은 듯 누운 듯 일광욕을 느긋이 즐기더라고요. 그 모습이, 새를 무서워하는 저에게는 두렵기도 하면서도 또 왠지 모르게 평화롭게 보였어요. 비록 햇살은 뜨거웠지만 바람은 시원하게 불었어요. 햇볕의 사랑을 온몸으로 받기 위해 손바닥을 활짝 펼친 활엽수 나무들이 서로서로 살을 맞대고 사르락 사르락 소리를 내는데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싶지 않았어요. 바람에 따라 사르락 사르락이 스르륵 스륵도 되었다가 샥~ 푸르르르도 되었다가 변주를 들려주는 것도 좋았고요, 중간중간 까치와 다른 새들이 넣는 화음도 멋진 연주처럼 들렸거든요.



 혼자만의 반환점을 돌아 걸어가는데 저 멀리 새 두 마리가 열매를 먹고 있더라고요. 가까이 가서 보니 오리 한쌍이 버찌 열매가 떨어진 걸 열심히도 쪼아 먹고 있었어요. 생각지도 못한 장면을 마주하는데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장면을 보게 되어서 싱긋 미소가 지어졌어요. 오리를 지나 홀로 외로이 강가에서 멍 때리는 왜가리도 만났어요. 왜가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나처럼 오늘 저녁은 뭐 해 먹지 고민하고 있을까 잠깐 엉뚱한 생각도 했고요. 물고기 떼는 오늘도 다리 밑에서 열심히 꼬리를 흔들며 먹이를 던져줄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 같았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접어드는데, 가로등 옆에 홀로 피어난 꽃이 보였어요. 아스팔트로 꾹꾹 메꾸었지만 살짝 덜 메워진 틈 사이로 흙을 양분 삼아 쭉쭉 잘도 자랐더라고요. 어디에나 막 피어나도 꽃은 꽃. 나도 저렇게 아스팔트 길에서 혼자 피어나는 꽃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셔터를 연신 눌러댔어요. 집에 돌아오는데요. 그냥 기분이 좋더라고요.



 언니의 말이 맞았어요. 행복을 얻기 위해 일을 하기보다는 주변에 널려 있는 작은 행복들을 주워 담자는 말. 언니의 편지를 받고 저는 길을 걸으며 행복을 주워 담았어요. 예전에도 주워 담긴 했었거든요. 이게 행복인지 모르고 주워 담았죠. 그때도 예쁘고 훈훈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근데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가 주워 담은 게 행복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 더 더 기분이 좋은 거 있죠? 더더 행복한 거 있죠!! 그 행복함이 더 오래 지속되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거 있죠?! 행복한 일을 해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행복하다는 걸 깨달으면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거든요. 단지 자신이 행복한지 아닌지를 모르는 것뿐이죠. 나를 둘러싸고 있는 두꺼운 껍데기를 뚫고 날개를 펼쳐 날아다니면서 주변에 널려있는 행복의 꿀을 맛보면 좋겠어요.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브루스 핸디 글, 염혜원 그림/ 주니어 RHK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라는 그림책에는 어떻게 내 옆에 있는 행복을 주워야 하는지 알려줘요. 아주 상세하게요. 천천히 눈뜨는 아침, 하루를 시작하는 행복을.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 때는 속상하고 아프지만 가끔 속 시원하게 내뱉을 때는 행복하다는 것을. 뛸까? 말까? 두려움 속에서도 뛰어서 '성공했다'가 아니라 '뛰었다'라는 사실에 행복하다는 걸. 할 일이 없어 심심하지만 할 일이 없어 행복하다는 것도. 헤어지는 게 아프지만 추억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걸. 어디에나 행복이 있으니 애써 멀리 찾지 말고, 알면서도 외면하지 말고, 마음 바구니에 꾹꾹 채워 담으라고 말하고 있어요. 꼭 언니 마음 같죠?



 같이 막막 주워 담자는 언니의 편지에 어제는 산책을 하며 행복을 주워 담았죠. 공을 물고 달리는 개의 행복처럼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제 인생도 행복하다는 걸, 오늘은 담아 볼게요. 곧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것도 행복하다고 다짐해볼게요. 내일이면 추앙하는 드라마가 한다는 사실도 행복하고(근데 이번 주가 끝인데...... 행복.... 하다...... 행복..... 하다.... 무진장 행복하다..... 주문 외워볼게요 ㅠㅠ) 내일 토요일이지만 남편이 출근하는 것도 행복하다고(?) 마음 바구니에 담아볼게요.



 그치만 마음 바구니 한편은 비워 둘 거예요. 언제 우리가 또 재회할지는 모르겠지만, 언니의 편지가 오면 너무 행복할 테니 그 행복을 또 담아 두어야 할 테니까요^^



언니 오늘도 우리 행복해요~!


랑을 담아  

생 현정이가






* 육 센치 작고 여섯 살 많은 언니의 편지도 읽어보세요.

행복하기 위해 '일'하지 말고, 행복을 줍자 (brunch.co.kr)







<육 센치 여섯 살> 프로젝트

키는 육 센치 나이는 여섯 살 차이 두 여자. 마흔이 넘어 인생을 조금 알게 된 육 센치 작고 여섯 살 많은 언니와 인생을 좀 안다는 나이 마흔이 되기를 갈망하는 육 센치는 크고 여섯 살 적은 동생이 책 이야기를 편지로 주고받습니다. 언니는 독서교실 선생님으로 동생은 그림책 활동가로 살아갑니다. 책을 매개로 삶을 성찰하고 글을 쓰며 마음을 나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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