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아, 여름이 간다. 뜨거운 여름을 아이들과 하루하루 꽉꽉 채우면서 보냈더니 길게~~ 느껴지더라.그래서 편지가 좀 늦었어.
나는 '사노 요코'나 '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들은 재밌게 잘 보긴 했지만 특별히 일본 작가를 좋아하거나 찾아서 본다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야. 특히나 일본 소설, 일본 애니는 관심도 없어. 어쩌면 우리나라 작가만으로도 읽을 책이 너무나 많고 다 읽지도 못하고 있는데 말이야.
몇 년 전에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일본 영화의 제목을 듣고 이 무슨 자극적인 제목이란 말인가 생각했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전에 '제목이 뭐 이래~' 그랬었는데 이번 여름에 우연한 계기로 그 원작 소설을 읽게 되었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스미니 요루 지음, 소미 미디어 출판사
췌장암에 걸린 한 소녀가 자신의 병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공병 문고'라는 노트에 적어나가고 있었어. 그런데 우연히 그 노트를 같은 반 남자아이 하루키가 보게 된 거야. 서로 크게 관심도 없고 성격도 정반대였던 남녀 고등학생이었지. 그런데 그 일기를 공유하게 되면서 하루키는 반강제적으로 췌장암에 걸린 소녀 사쿠라와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사쿠라의 버킷리스트들을 하나씩 함께 해나가게 된다는 이야기야.
아! 제목은 왜 그럼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일까? 그건 일본에서는 옛날에 어딘가 안 좋은 곳이 있으면 다른 동물의 그 부분을 먹었다는 의미라고 해. 간이 안 좋으면 간을 먹고, 위가 안 좋으면 위를 먹고, 그러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는 의미지. 사쿠라는 췌장암에 걸렸으니.. 췌장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가 뭔지 알겠지?
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쿠라는 하루키와 버킷리스트들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굉장히 활기차게 시간을 보내. 시한부를 선고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말이야. 둘이서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마술 공연'을 보게 되거든? 그러고 나서 마술을 직접 해보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해. 그런데 사쿠라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이잖아. 솔직히 한가하게 마술을 배울 여유나 마음이 있겠어?
그런데도 사쿠라는 이렇게 말을 해
내 일 년은 다른 사람들의 오 년 정도의 가치가 있으니까 분명히 잘 될 거야. 기대해
. . 그녀는 정말로 도전해볼 생각인지. 평소보다 더 표정에 힘이 넘쳤다. 짧은 기간이라고 해도 목표가 생긴다는 것은 인간을 반짝반짝 빛나게 한다. 나와 비교하면 그녀의 반짝임은 훨씬 더 두드러져 보일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멈추게 되었어. 소설이든 시든, 에세이든 동화든 뭐가 됐든 책이라는 것을 읽다가 내가 멈추는 지점은 늘 현재의 내 마음의 상태만큼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왜 이 지점에서 멈추었을까?
내가 30대에 가장 갈망하던 목표는 '안정'이었던거 같아. 결혼생활의 안정, 아이들 성장의 안정, 나의 일에서의 안정, 경제적 부분에서의 안정 등등, 나의 모든 바탕에 안정을 좀 깔아주고 싶었어. 그래서 그 안정을 목표로 30대에는 참 많은 도전을 하고 열정적으로 배우고 적용하고 그렇게 달려온 것 같아. 그랬더니 정말 40 중반이 된 요즈음 나를 가만히 바라보니 그 목표 지점에 근접해 있는 것도 같은 거야..
그런데 저 구절들을 읽다가 '안정'이 '현실 안주'가 되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야. 표정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해서 좀 더 빛나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대더라. 40 중반에 이 언니는 무엇을 목표로 세워야 반짝일 수 있을까?
<육 센치 여섯 살>프로젝트
키는 육 센치 나이는 여섯 살 차이 두 여자. 마흔이 넘어 인생을 조금 알게 된 육 센치 작고 여섯 살 많은 언니와 인생을 좀 안다는 나이 마흔이 되기를 갈망하는 육 센치는 크고 여섯 살은 적은 동생이 책 이야기를 편지로 주고받습니다. 언니는 독서교실 선생님으로 동생은 그림책 활동가로 살아갑니다. 책을 매개로 삶을 성찰하고 글을 쓰며 마음을 나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