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말처럼 뛰어주길 바란다.
주말 아침
등이 시퍼런 자반을 토막내며 나는 한숨을 삼켰다.
창밖 하늘마저 흐리고 내 마음은 자꾸 더 가라앉았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교회에 손잡고 다니던 친구 순희가
유방암이 재발해 온몸으로 퍼져서 12번 째 항암을 기다리고 있다.
“입맛 잃었을 텐데…”
감자를 깔고 청양고추를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살살 정성스럽게 졸였다. 마지막엔 밭에서 키우는 쪽파를 뿌려 덮었다.
'제발 비린내만 나지 말아라..'
먹고 싶다던 알타리와 파김치도 담아보았다.
병원에서 나오는 음식이 약 때문인지 자꾸 메슥거린다고 했다.
병실에서 데리고 나왔다.
그녀가 송어회가 먹고 싶다 했다. 수동리에서 가까운 곳에 유명한 집이 있다 해서 찾아들어갔다. 몇 점 먹는가 싶더니 매운탕에 들어 있는 얇게 저민 수제비에만 더 손이 여러 번 갔다.
깔짝거리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친구는 말했다.
“어제 항암 맞을 때 함께 기도해 줘서 고마웠어.”
그녀의 긴 고백이 따라왔다.
“염증 수치가 높았어 그래도 열이 없으니 맞자고 하더라.”
“무서웠지?”
“응, 근데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했어.
누군가 나와 함께 계신다고 느껴졌거든.”
그녀는 주사 바늘을 꽂은 채로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고 했다.
그는 믿음으로 부작용을 거절했고,
졸음이 밀려올 때마다 두 손을 모았다고 했다.
“맞고 나서 어땠어?”
“기적이었어. 몸이 한결 가벼워졌어.”
아무리 생각해도 암이 온몸으로 전이가 되어 있다는데 얼굴은 나보다 더 평안해 보였다.
데려다주고 나오는 길은 조금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의 얼굴엔
절망 대신 찬양이 가득했다.
요양병실을 그는 ‘천국의 회복실’이라 불렀다.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병실 한쪽에 글이 붙어 있었다.
팔이 아파도 끝까지 문자를 써 내려가며
그마저도 ‘은혜를 나누라 하신 주님의 뜻’이라 했다.
삶을 놓지 않으려는 믿음이 고요히 숨 쉬고 있었다.
손을 맞잡고 기도를 드렸고 다음에 낙엽을 보러 이곳을 올 즈음은 말처럼 힘차게 걷게 해 달라고 주님께 떼를 부렸다.
오늘도 믿음으로 버티는 그 친구가
단단해 보였지만 혼자서 무너질까 봐 한편으론 걱정스럽기도 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데 뒷산에서 주운 밤들을 내 가방에 담아주었다.
"똘밤이지만 맛은 있다! "
하나하나 주워 담은 그 정성이 고마웠다.
다녀온 다음날 문자가 왔다.
“오늘은 밥 한 공기 다 먹었어.
네가 해준 자반 조림, 차가워도 맛있더라.
얼마 만에 칼칼하게 먹은 반찬인지 몰라. 밥을 세 숟갈 이상 먹은 게 놀라워 밥이 들어가면 울렁거렸거든...”
그녀의 문자에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병원 식사의 무미한 맛 속에서
그 한 끼가 위로였나 보다
더 자주 들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솟구쳤다.
나는 오늘도 낮게 기도한다.
“그의 손끝에 힘이 돌아오길,
그 눈에 따스한 빛이 머물길,
그 다리에 힘이 팍팍 솟구치길!!
그리고 봄날 함께 웃으며 걷는 날이 오길.”
고등어의 칼칼한 짠내 속에
기도의 향기가 덮였고
그녀가 11번의 항암을 꿋꿋이 이기고 있음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