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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Mar 01. 2024

금반지는 절대 안 돼!

엄마의 유물

매표소에는 열댓 명이 표를 뽑거나 차를 마시며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아는 썸남이 보자는 이런 장르의 영화는 선호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만에 쉬는 휴일 이 남자가 원하는 대로 SF 영화의 티켓을 내려다보니 웃음이 나왔다.

'헛 내가 이런 영화를 보러 오다니... 이렇게 부앙부앙한 영화를 뭐가 재밌다고 참... 남자들의 세계는 알 수가 없어..'

현실성이 없는 영화나 좀비 영화는 싫다. 그래도 오늘하루만 봐주자.

시작되기 10여분 남았을까 이제 하나둘 입장을 하고 있었다.

꺅~~

갑자기 퍼버벅 정전이 되었다. 암흑이다.

비상구의 푸른 불빛만 보일 뿐 정적이 흘렀다. 위험을 느낀 사람들은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잠깐 들르다가 휴대폰의 후레시 불이 하나둘 켜지고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썸남이 갑자기 욱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강도중 하나가 흉기를 번쩍거리며 그 남자의 목을 잡고 바지 뒷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뺐었다.

금세 악당이 여러 명이구나를 알게 될 즈음 사람들을 모두 쓰러뜨리며 금품을 빼앗고 지갑을 털기 시작했다. 매표소의 열댓 명의 사람들을 노리고 강도짓을 벌이고 있다.

어떤 사람은 지갑째 건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목걸이, 반지를 빼는 모습이 어슴푸레한 실루엣으로 보인다.


수아는 원래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카드만 소지하여서 그다지 빼앗길 것이 없음을 감지하고 목숨만 건지면 되겠다 싶어 그다음은 내 차례구나 하고 있는데 갑자기 손가락에 번쩍이는 게 느껴졌다.

' 앗 이건 엄마의 유품!!'

이건 죽어도 빼앗길 수 없지. 어떻게 하지? 이걸 저들에게 뺏기지 않으려면...

어디다 숨기거나 감추거나 해야 할 데를 순간 찾다가 강도 하나와 얼굴이 마주쳤다. 어두웠지만 복면강도의 정면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내리 깔았다.

수아는 하품을 하는 척하며 2돈짜리 금반지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이게 들어가서 위나 장에 걸려서 수술을 하더라도 이것만은 못준다 '

체내에 들어가 장기를 훼손하게 될까 걱정이 스쳤지만 목구멍에 걸린 그 반지를 침을 다시 한번 모아서 넘어가기를 시도했다,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내 옆으로 다가옴을 느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사람이 내줄 게 없다고 버티다가 허벅지살을 칼로 난도질당하고 있는 걸 보니

' 이 목구멍에 있는 반지를 입을 열어 들켰다가 내 목도 남아나지 않겠구나 '

생각하니 어떻게든 삼켜야 한다. 입을 꾹 다물었다.


'꿀꺽꿀꺽'

아무리 해도 목에 가로로 걸려 삼켜지질 않는다.


'아 나는 죽었구나  '

그때 아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자 이건 꿈이야 꿈에서 깨어나면 돼 어서 일어나!!



.................................

악몽이다.

눈을 뜨니 암막 커튼 사이로 빛이 살짝 새어 들어오고 있다.

목울대를 한번 만져보았다. 꿀꺽하고 침도 삼켜보았다.

아 진짜 꿈에서 탈출했구나!

나는 살았다.

나는 무서울 꿈을 꾸다가 벗어나고 싶은 순간에 깨어야지 하면서 깨는 기이한 순간이 몇 번 있다. 



어둠 속에서 시계를 보니 6시 5분. 일어날 시간보다 한 시간은 일찍인 시간이다.

왼손 검지 손가락을 살짝 더듬어 보니 반지가 만져졌다.


이 반지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1년 전 생일에 내가 해드린 선물이었다.

엄마는 오래 당뇨를 앓으셨고 합병증으로 심장병 수술을 받으셨고 아빠가 1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나시자 충격으로 걸음을 못 걸으셨다. 직장일을 하고 있던 나는 엄마를 24시간 케어해 드릴 수가 없어서 가까운 요양병원에 모시고 매일 출퇴근 시간에 들르며 2년 가까이 병원신세를 지셨다.


"엄마, 이번 생일에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여기 누워있는데 뭐가 갖고 싶겠니.?"

"그래도 뭐 있을 거 아냐.. 매일 걷는 연습을 해야 나가지 여기를!!"

엄마는 가만히 생각하시다가

"금반지하나 해주라. 손이 허전해. 보석 박힌 거는 무거워서 싫고..."


엄마는  반지를 받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보석 없는 금가락지를 엄마손가락 사이즈를 실로 대충 재서 해 드린 반지였다.


엄마는 그 반지를 끼고 계시다가 그 후 6개월 후에 심장마비로 갑자기 떠나셨다.

쌍둥이 나의 딸들이 임종을 지켰고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두신 후였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아이들이 전화를 했다.

3월 15일, 3시 15분.

시간도 잊히질 않는다.

"엄마 할머니 떠나셨어. 의사 선생님이 30분은 귀가 열려 있어서 들을 수 있다고 하니까 엄마 전화로 마지막 인사드려."

나는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차를 갓길에 세우고

"엄마,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엄마가 아빠가 보고 싶어서 빨리 가는 거구나. 그곳에 가서 아프지 말고 이제 편히 쉬세요. 엄마는 하나님을 믿고 착하게 살았으니까 천국에 갈 거야. 아빠도 그렇고. 나도 엄마 따라갈 테니까 가서 우리 내려다보며 잘 쉬고 계세요. 엄마 사랑해~."

눈물이 너무 나오고 목이 메어서 목소리도 잘 안 나왔지만 엄마 가시는 길에  하나밖에 없는 딸 목소리라도 들려주고 싶어서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전화를 끊고 엄마가 누워계신 병원으로 다시 차를 전속력으로 몰았다.


엄마는 그렇게 가셨다.

남긴 건 엄마의 반지와 요양병원에 있던 성경책이었다.


꿈에서라도 엄마의 유품을 지키려 했던 내가 신기했다.

엄마아빠가 가신지 10년이다. 시간이 지나면 보고 싶은 마음이 덜해질까 했는데 엄마를 생각하면 갈수록 더 아파지고 그리움이 깊어지는 것 같다.

엄마, 아빠... 편히 쉬고 계세요. 두 분의 사랑은 제게 살아가는 힘이었어요.

오늘도 반지와 성경책을 바라보며 엄마, 아빠를 그리워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독자들께서도 이렇게  악몽에서 깨어야지! 하면서 탈출할 때 다 있는 거죠?? 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니 안 믿어요  흑흑!


아빠 중위 임관하시고 약혼식 때.


60년도 엄마의 결혼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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