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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Feb 23. 2023

보리

두리가 죽은 후 두리와 같은 장모치와와를 데려오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주 단순한 결정이었다. 당연히 두리의 빈자리가 힘들었고 두리와 다른 아이를 만나는 것도 싫었다. 아이들이 죽으면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절대적으로 나를 위함이다. 물론 동물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아이들이 사라진 결핍을 견디지 못하는 우울을 또 새로운 아이로 치료하는 이기적 행동인 거 맞다.


몇 군데 연락해서 장모치와와를 구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결국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아내에게 설명하고 같이 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 의견에 늘 반대하던 아내가 보리를 데리러 가는 일에는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보리는 경주에 있는 장모치와와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다. 두 달 정도니 당연히 작고 귀여웠다. 이미 결심했던 일이니 보리를 만고는 바로 집으로 데려왔다. 보리는 아내가 정한 이름이다. 나도 이런저런 이름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아내가 털 색깔이 보리차 같다며 바로 보리라고 불렀고 나는 좋다고 했다.


보리는 뭐랄까, 별 특징이 없었다. 가장 평범한 갈색의 강아지. 그냥 강아지같이 생긴 모습. 깡패도 아니고 애교쟁이도 아니다. 아내는 보리가 못생겼단다. 새끼 때는 모든 존재가 귀엽고 자라면서 귀여움이 사라지곤 하지만, 보리는 아기일 때부터 귀여움이 부족했다. 그래도 나는 보리가 좋았다. 우린 운명이었으니까.


장모치와와의 특징은 angry다. 보리를 산책시키자면 늘 동네가 부끄럽다. 다른 강아지를 만나면 미친 듯이 짖고 대든다. 그러다 막상 앞에 가면 고개를 돌리고 겁을 먹지만, 다시 멀어지면 너 잡히면 죽는다고 소리치고 달려든다. 아내에게 말한다. 보리가 엄마하고 똑같네. 왜? 아니 당신도 사람들 욕하고 잡히면 한 대 칠 듯한데 막상 그 사람이 앞에 있으면 놀랄 만큼 조신해지잖아. 보리가 그래? 신기한 건 아내가 보리를 제일 좋아한다는 거다.


아이들은 모두 침대에서 나와 같이 잔다. 내가 침대에 누우면 제일 먼저 오는 아이가 보리다. 그리곤, 계단 앞에 딱 버리고 있다. 타샤와 장군이가 침대로 올라오려면 보리는 사납게 짖고 난리다. 나를 독점하려는 거다. 물론 타샤도 장군이도 보리의 위협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보리는 죽은 블루와 서로 죽고 못하는 사이였다. 블루가 보리를 자식처럼 동생처럼 여겼고 보리는 블루를 너무나도 잘 따라고 좋아했다. 블루가 죽고, 보리는 온 집을 돌아다니면서 블루를 찾았다. 나도 슬펐지만 보리가 얼마나 놀라고 허망했을까. 블루가 보리를 너무 사랑해서 죽었다는 사실을 보리는 결코 모른다. 절대로 알아서도 안 되는 일이다.


지금 우리 집에는 타샤, 보리, 그리고 막내 장군이가 있다. 아들은 말한다. 보리가 제일 못생겼어. 산책할 때도 보리가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내가 봐도 보리는 그저 평범하다. 그런데, 짐승들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보리를 제일 예뻐한다. 보리가 나를 제일 좋아해. 그게 이유다. 다른 아이들보다 보리가 아내를 제일 좋아하니 아내는 보리가 제일 예쁘단다.


깨물어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했던가. 자식들 중에 차별은 있을 수 있겠으나 없으면 슬프지 않은 아이는 없다. 보리는 아픈 손가락이다. 타샤는 첫째이고 제일 오래 같이 지낸 자식이니 그 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장군이는 같이 지낸 시간은 가장 짧지만, 막내의 특권이라고나 할까, 너무 귀엽고 애교 많고 사랑스럽다. 보리는 낀 둘째다. 듬직함도 아니고 귀여움도 아니고 아무런 특징이 없는 둘째다. 그래서 늘 슬픈 표정이고 내 마음도 안쓰럽다.


아이러니다. 아니 비극이다. 세 아이들 중에 나를 가장 좋아하고 따르는 아이는 보리다. 내가 어디로 가든 보리는 따라온다. 그리고 나를 독점하고 싶어서 다른 아이들이 내 곁에 오면 심술부리고 짖는다. 그런데 나는 보리가 첫째는 아니다. 막내 장군이가 제일 사랑스럽고, 첫째 타샤가 제일 중요하다. 보리에겐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이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것 같은 비극이다. 내가 나쁜 거다.  이런 생각이 들면 공연히 보리를 숨 막힐 정도로 끌어안고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미안하니까. 그리고 분명히 차별했으니까.


보리에 대해 쓸 것이 별로 없는 것도 모순이다. 이제까지 아픈 적도 없었고 아직 죽지도 않았다. 그러니 보리 때문에 슬픈 적이 없으니 아련한 추억이 없다니 이런 잘못된 모순이 어디 있단 말인가. 훗날, 보리가 아프고 죽으면 그때는 보리에 대한 내 사랑이 커진다는 말인가. 부모가 죽은 후에야 후회하고, 자식이 잘 못된 후에야 애틋함이 커지는 것과 같으리라.

오늘도 미안한 마음에 보리를 안고 눈을 맞추며 말한다. 보리야 우리가 만난 건 운명이야. Destinty. 알아? 아빠가 널 거기서 만나서 데려온 건 운명이라고. 사랑해 우리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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