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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검 Jul 30. 2021

슬기로운 검사생활

제1장  지난 8년을 기록하다

우리의 마지막 (1)


    변사는 사인이 불분명한 죽음을 말한다. 경찰은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가 발견되면 현장에 출동하여 사체와 현장을 조사하고, 검안의의 의견을 기초로 사인을 추정한다. 필요한 때에는 최초 발견자나 유족의 진술을 듣고서 진술조서의 형식으로 진술을 정리한다. 그리고 사체 및 현장 사진, 참고인 진술, 검안의가 작성한 검안의견서 등을 한데 묶어 검사에게 송부한다. 검사는 변사사건 기록을 검토한 다음 부검을 진행할지, 사체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결정한다.


    검사가 직접 사체와 현장을 확인하는 때도 있다. 이를 직접검시라고 한다. 혹자는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검사가 무슨 검시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검시 과정에서 의사와 검사의 관심사는 다르다. 의사가 의학적으로 명확한 사인을 밝히는 데 집중한다면, 검사는 사체의 형태와 현장의 모습, 유사 사건들을 연결 지어 그 죽음에 범죄의 의심이 없는지 살핀다.


    예컨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지존파 사건은 중년부부가 산길에서 운전을 하다가 낭떠러지로 추락해 사망한 단순변사사건으로 마무리될 뻔했다. 하지만 당시 담당 검사가 사체의 형태와 사고 현장의 모습이 부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수사를 진행하면서 지존파의 전모가 세상에 밝혀졌다. 직접검시를 나가서 죽은 아이의 사타구니에 든 새파란 멍을 보고 범죄를 의심해 친부를 구속했던 동기 검사의 이야기도 있다. 이처럼 직접검시를 통해 자칫 묻힐 뻔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경우가 제법 많다.  

   

번잡한 현장에서 늘 애쓰시는 과학수사관들의 수고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출처 : MBC 홈페이지]


    변사사건의 상당 수는 자살이다. 그들의 죽음을 마주하면 먹먹하다. 거기다 종이에, 휴대전화에 남겨진 유서가 더해지면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생의 마지막 언저리에서 가장 떠올랐을 사람에게 남기는 유서는 그들의 심정을 구구절절하게 담고 있어 내 마음에도 잔상을 크게 남기기 때문이다.


    윤 모 여인은 이혼을 하고 홀로 9살 아들을 키웠다. 남편은 매일매일 택배를 나르면서 안간힘을 썼지만 어려운 경기에 양육비를 제때 주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작은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했는데 돈을 벌면서 육아까지 병행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뒤처지기만 하는 주변 상황은 결국 그녀를 우울증으로 내몰았다. 폭음을 하는 날이 늘어났고, 그때마다 남편에게 더는 살고 싶지 않다 말했다. 그런 연락에 남편은 덜컥 겁이 나 새벽에도 그녀를 찾아왔다. 하지만 반복되는 소동은 그녀를 양치기 소년으로 만들었다.


    그날 그녀는 소주 2병을 연거푸 마시고, 그녀의 차 운전석에 앉았다. 남편에게 난 이만 떠나, 우리 아들 잘 부탁해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번개탄을 피우고, 수면유도제를 먹었다. 그리고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119신고를 받은 구급대원들이 부리나케 달려와 차문을 부쉈다. 매캐한 연기 틈에서 그녀를 꺼냈지만 그녀의 숨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여기까지는 여느 죽음들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기록의 다음 장을 넘기고서 한참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으아앙, 아저씨! 우리 엄마가 차 안에 있는데 이상해요! 빨리 와주세요!


    아들은 마른 기침을 하며 눈을 떴다. 옆자리에는 엄마가 없었고, 소반에 쌀밥과 달갈프라이, 구운 햄과 식은 된장국이 놓여있었다. 엄마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아들은 제 발보다 커다란 슬리퍼를 질질 끌며 엄마가 항상 주차를 해두는 길가로 갔다. 그곳에서 마주한 엄마는 입에 흰거품을 문 채로 기이한 보라색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119 신고를 했다. 구급대원들이 엄마를 차 밖으로 꺼내도, 엄마는 앉아있던 자세 그대로 빳빳히 굳은 채 도통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9살 꼬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엄마의 마지막을 고스란이 눈에 담았던 것이다.


    그 꼬마에게 엄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어떻게 남을지, 마지막 기억의 조각이 심장에 박혀 그 상처가 아물기는 할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슬프지 않은 죽음이 어디있겠냐만, 나의 죽음이 나의 사람들을 더욱 슬프게 하지 않는 마지막이어야 하지 않을까? 너무 힘겨워서 헤쳐나갈 힘조차 없을 때에도 내 등을 떠받치고 있는 그 누군가가 스스로 생을 버린 나의 마지막을 본다면 그 사람의 세상은 무너질테니.


'세 얼간이',  러닝타임이 길지만 한 번쯤 보기를 추천하는 명화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세얼간이 포토]


    인생영화 중 하나인 세 얼간이에서, 파르한이 아버지와 대화하는 장면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파르한은 어릴 적부터 사진작가를 꿈꿨지만 공학자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이겨 인도 최고의 공과대학에 입학한다. 그곳은 성적지상주의가 판치는 살벌한 정글로 학업 스트레스에 지친 많은 학생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파르한의 절친한 친구인 라주 또한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파르한은 어느날 라주와 또다른 절친인 란초의 응원에 용기를 얻어 아버지에게 공학을 포기하고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말을 꺼낸다. 아버지는 파르한의 말에 역정을 내면서 네 녀석도 네 말을 안 들어주면 라주 녀석처럼 옥상에서 뛰어내릴 거냐 소리를 지른다. 파르한은 아버지 앞에 가만히 앉아 손을 잡으며 말한다.



아버지, 저는 자살 안 해요.
아버지가 싫어하는 란초가 부모님 사진을 지갑에 넣어줬어요.

자살 충동이 들면 이 사진을 보라고 했죠.
부모님이 내 시체를 보았을 때, 부모님의 표정을 상상해 보라고요.
 
저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싶은거지 협박하는 게 아니에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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