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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검 Aug 02. 2021

슬기로운 검사생활

제1장  지난 8년을 기록하다

우리의 마지막 (2)


    검사님, 변사사건 있네요.

    실무관님이 긴급이라는 글씨가 적힌 빨간색 결재판을 책상 위에 올려주셨다. 후텁한 공기에 매미들이 쌔애앵- 울어대던 그 여름날 첫 변사사건을 만났다. 강변에서 어느 남성의 사체가 떠올랐다. 물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하구둑 근처에 이르러 물살이 잔잔해지자 수풀에 걸렸고, 주위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에게 발견되었다. 낚시나 물놀이를 하다가 실족을 했을 수도, 홀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뒤 강물에 버려졌을 수도 있었다. 


    강변에 사체가 떠오르는 일이 결코 흔한 일은 아니거니와 범죄와 무관하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어 직접검시를 나가기로 했다. 계장님, 직접검시 나갈 준비 해주세요! 관용차를 타고서 사체가 있는 병원 영안실로 향했다. 병원에 가까워지니 그때부터 후욱 긴장이 되었다. 심장이 귀에서 뛰었다. 검사들은 임관을 하면 법무연수원에서 1년 가까이 교육을 받는다. 그 과정 중에 실제 부검에 참관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다른 검사들과 임관 시기가 달라 부검에 참관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나는 그때까지 변사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SBS 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 검사시보 송소은(이유영 분)이 부검을 참관하고 있다. [출처 : '친애하는 판사님께' 1회 캡처]


    게다가 사체 냄새는 상상초월이어서 1초도 견딜 수 없다거나 익사체와 눈이 마주치면 물귀신처럼 평생쫓아다닌다는 낭설을 워낙 많이 주워 들었던 터라 심장은 미친 듯 뛰어댔다. 이제 와서 검시를 무르겠다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호기롭게 직접검시를 가겠다고 결심한 1시간 전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계장님, 저를왜 안 말리셨어요, 왜……. 긴장감에 점점 일그러지는 얼굴 근육을 애써 부여잡고서 라텍스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리고 영안실로 들어갔다. 


    장의사가 냉장고 문을 열고 투명한 비닐봉투를 꺼냈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비닐봉투에 묶여있는 끈을 칼로 끊어냈다. 스르륵 비닐봉투가 열리며 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히 물 안에 잠겨있었다고 했는데 시신은 불에 탄 듯이 까맣게 변해있었다. 얼굴과 몸은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쿨럭쿨럭 뒤에 서있던 담당 경찰관과 장례식장 직원이 기침을 했다. 세상에, 도대체 이게 무슨 냄새야! 아찔한 악취를 참아내려고 이를 악다문 채 입으로 숨을 쉬었다.


    우선 사체의 머리를 눌러보며 함몰 부위나 상처를 찾았다. 손과 발,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장의사의 도움을 받아 사체를 뒤집어 보기도 했다. 흙이 남아있는 부분을 손으로 닦아내면서 까지 확인을 했지만 누군가의 공격을 당했다고 볼 만한 상처는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인도, 신원도 알 수 없었고, 누군가가 독극물을 먹여서 살해했을 가능성 또한 남아있었으므로 담당 경찰관에게 부검영장을 신청하고, 치과치료 내역이나 실종신고 내역을 검토하여 신원을 확인하도록 지휘했다.


    돌아오는 내내 온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듯했다.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모든 창문을 열어젖히고, 윗옷을 팡팡 털었다. 손을 몇 번이나 박박 문질러 씻었는지 모른다. 그것도 모자라서 퇴근하자마자 입었던 옷을 죄다 세탁소에 맡기고, 사우나에서 한참을 있었다. 그럼에도 자리에 누워서까지 그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계속 사체의 얼굴이 떠올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신원 불상, 고도 부패로 인하여 사인 불명 


    며칠 뒤 그 남자의 이름도, 사인도 알 수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나는 시신을 거두어 갈 사람이 없으니 행정처리하라는 취지로 지휘했다. 이제 한 줌의 재가 되어 관공서 어딘가에 보관되다가 세상에 흩뿌려지겠지. 내가 누군가의 아들, 남편, 아빠일 수도 있는 그 남자의 이름을, 그리고 사인을 찾아주지 못해서 그들의 기다림이 영원의 시간으로 늘어나지는 않았을까. 생각의 끝이 여기에 이르니 악취가 난다면서 호들갑을 떨었던 나의 모습이 고인에게 무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적이었던 첫 직접검시는 검시에 대한 마음가짐을 하나부터 열까지 고쳐주었다. 나는 누군가의 마지막을 함께 해주는 유일한 사람일 수 있겠구나, 억울한 일을 당한 고인에게는  마지막 지푸라기 같은 사람이겠구나, 고인의 유족에게는 고인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사람일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가짐으로. 그래서 지금은 긴장한다거나 불쾌하다거나 무서운 마음이 아니라 경건한 마음으로 직접검시에 나서려고 노력해 본다. 물론 그 형언하기 힘든 냄새에 적응하기는 아직도 힘들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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