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지난 8년을 기록하다
면담을 하기 위해 유인성을 깨웠다. 유인성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얼굴을 살짝 돌리더니 어설피 눈을 떴다. 눈가와 양 뺨이 분화구처럼 움푹 파여있었다. 몇 달 전 마주했을 때에는 건장하다 싶은 체격은 아니었어도 단단한 느낌이었는데 허벅지 둘레가 내 팔뚝보다 얇아져 있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보일만큼 가늘어진 손에는 바늘이 잔뜩 꽂혀있었다. 간호사는 영양제와 마약류 진통제를 투여하고 있다고 했다.
담당의를 만났다. 담당의는 유인성이 섭식한 음식의 90%는 게워내고 있다고 했다. 영양실조가 심각해 영양제를 투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효과가 없다고 했다. 위암이 췌장과 간까지 전이될 정도로 진행된 터라 항암치료는 물론 수술치료도 불가능하고, 기대여명은 길어봐야 4개월이라고 했다. 진통제 처방을 하면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암울한 상황이었다.
직접 확인한 유인성의 모습과 담당의의 진단내용, 거기에 의료자문위원들의 의견을 더해 유인성이 더 이상 수형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형 집행정지신청을 허가한 날, 유인성의 누나와 어머니가 그를 데리러 왔다. 그의 누나와 어머니는 연신 허리를 숙였다. 자그마한 경차 뒷좌석에 누워 고향집으로 향하는 유인성을 지켜보며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삐이- 지이이잉. 괴상한 소리와 함께 프린터가 종이 한 장을 내뱉었다. 실무관님은 프린터에서 종이를 집어들었다. "검사님, 대구에서 통보서가 왔네요?" 찰나 동안 대체 웬일일까, 내가 수사를 촉탁한 사건에 문제라도 있는걸까 하는 오만가지 생각을 떠올리면서 부랴부랴 통보서를 건네받았다.
변사자 유인성, 사인 자살(추락사)
유인성의 변사사건을 접수한 대구지검에서 형 집행정지 사실을 확인하고는 나에게 보낸 통보서였다. 유인성은 누나와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병원 복도에 잠시 앉아있다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병원 옆 건물로 올라갔다. 15층 계단 난간에 서서 누나에게 나 너무 아프다라는 짤막한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가지런히 슬리퍼를 모아둔 채 그대로 몸을 던졌다.
누나는 유인성의 문자메시지를 보자마자 병원 밖으로 뛰어나갔다. 주변을 뒤져봤지만 동생은 없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정신 없이 경광등을 깜빡이는 구급차가 보였다. 순간 쎄-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힘이 빠져나가는 다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그곳으로 걸어 갔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구급대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자전거보관대 지붕은 폭격이라도 당한 듯 와장창 깨져있었다. 그 아래 동생이 누워있었다.
자책이 몰려들었다, 괜히 형 집행정지를 허가했구나 하는. 수감생활을 계속하도록 놔두었다면 자살은 하지 않았을텐데, 그 와중에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자책감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마음을 찔렀다. 한 사람의 무너져 내린 삶을 마주하기에 나는 여전히 단련이 덜 되어 있었다.
허탈한 마음에 유족들의 진술을 찬찬히 읽었다. 수많은 변사사건 가운데 하나로 처리하기에는 나에게 다가오는 무게가 남달랐기 때문이리라. 유인성은 중학생 때 아버지를 잃었다. 그때까지는 제법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지만 갑자기 어려워진 가계는 그를 소심하게 만들었다. 친구들은 의기소침한 그를 멀리 했다.
어느 날, 친구가 새로 나온 게임 CD를 학교에 가지고 와 자랑을 해댔다. 그 게임이 너무나 하고 싶었던 유인성은 체육시간 아무도 없는 틈을 노려 게임 CD를 훔쳤다가 친구들에게 들켜 망신을 당했다. 그 뒤로 다시는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유인성을 잡아주는 이는 없었다. 어머니도, 누나도 그럴 수 없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으니까.
소년원과 교도소를 전전했다. 유인성을 온전히 지켜주고, 다잡아 주눈 사람이 있었다면 그의 삶이 달라졌을까. 공부를 이어가고, 번듯한 직장을 얻고, 건강을 챙겼다면 이토록 허망하게 사라지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와 같은 나이에 도둑질이나 밥 먹듯이 해대는 유인성이 한심하다고 혀를 찼던 나에게 물었다. 내가 유인성의 환경에 처했더라면 그와 다른 삶을 살 수 있었겠느냐고.
유인성과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났다. 그와 같은 아픔을 겪었지만 나에게는 나만을 지켜주는 가족이 있었다. 최연소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싶다는 맹랑한 제자의 말을 고깝게 듣지 않고 시집을 선물한 은사가 계셨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나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닌 단지 운으로 나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나와 유인성 모두 귤 씨앗이었지만 그저 부는 바람에 실려 그는 차가운 북녘에, 나는 따뜻한 남녘에 뿌리를 내렸을 뿐 아닐까.
버려진 연탄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함 사람이었는지 따위는 관심 없이 함부로 연탄재를 발로 차 갈기는 나의 행동을, 누군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은 고려하지 않은 채 타인을 무시하고, 그것을 통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드높이려는 얄팍하고 비열했던 그 행동을 되돌아보며 유인성의 마지막 삶의 조각이 적힌 변사사건 기록을 덮었다. 부디 영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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