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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iday Mar 17. 2023

여행준비는 왜 점점 복잡해질까.

내 탓일까... 내 나이 탓일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만한 로망은 '훌쩍 떠나기' 아닐까?

아무 계획도 없이 그냥 어느 날 떠나고 싶다... 생각이 났을 때 

아무 준비도 없이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그냥 훌쩍 떠나보는 거...

아주 오래전, 대학동아리 선후배들과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 한선배가 그렇게  즉흥적으로 

훌쩍 떠나는 여행을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장난 삼아 그럼 지금 떠나보실래요? 했더니

너무 당황하면서, 지금은 집에 일도 있고... 내일 학교 수업도 있고... 

듣고 있던 선후배들이 '우~~ ' 하는 야유와 함께 '아무 때나 떠날 수 있다며...' ㅎㅎㅎ

하면서 놀렸던 적이 있다. 그 선배는 그날의 치욕 아닌 치욕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는지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뒤 또 선후배들이 모여서 술 한잔 하는 날에 갑자기 여행을 

떠나자고 분위기를 잡았다. 시간도 늦고 다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그 선배가 그냥 막 떠나자며

사람들을 몰아가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용산역에서 떠나는 비둘기호 밤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은 철도 박물관에서나 볼수있는 추억의 비둘기호 열차.

정말 아무 계획도 없이 시작한 여행이었고 다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학생신분이라 서로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 모아보니 가장 싼 비둘기호 기차로 부산을 왕복할 수 있는

정도의 돈이 모아졌다. 그렇게 무박 2일의 부산여행을 시작했고 부산에 이른 아침에 도착해서 

각자 알고 있는 부산의 지인들을 다 불러내서 밥도 얻어먹고, 술도 얻어먹고, 바닷가 구경도 하다가

다시 밤열차를 타고 돌아와 용산역에 새벽에 도착했다.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지만 젊었던 우리들은 아무 불편이 없었고 나름 즐겁고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그랬던 우리, 나와 내 친구들은, 세월이 점점 흐를수록 여행하는 게 더 복잡해지고 준비도 많아졌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해지면서 여행의 계획은 점점 더 구체적이 되고 거기에 따른 준비도 더 많아지고

머릿속도 그에 맞게 점점 더 복잡해지다 보니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 피로감에  지치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나마 결혼 전에는 내한몸만 잘 건사하면 되는 여행을 계획했었지만 가족이 생기고부터는 

늘 2배 3배의 변수가 생기다 보니 계획과 준비의 치밀함도 2배 3배의 노력을 했야 했다.

그렇게 꼼꼼하게 여행계획을 만들다 보면 내가 원래 이렇게 치밀한 사람이었나? 하며 돌아볼 때도 있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냥 훌쩍 떠나서 발길이 닿는 데로 다니 늘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여행지에서의 식당도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고 실패하면 실패하는 데로 성공하면 또 성공하는 데로

그러면서 다니는 걸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정보를 인터넷으로 찾다 보니 교통정보나 맛집정보 관광지 등을 손 안의 핸드폰 안에서

찾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런 정보 없이 여행을 했기에 차표 한 장 사서 떠나면 그 이후의 일정은 그야말로

발길 닿는 데로 눈길 닫는 데로 정하곤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번 한국과 일본 여행을 위해서 한 서너 달 전부터 이 여행계획에 매달리고 있었다.

국내여행은 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기에 버스, 기차 시간표도 미리 봐야 하고 숙소도 역이나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찾아야 하고, 숙소와 접근성이 좋은 곳의 맛집들도 미리 찾아봐야 하고... 

일본은 현지에 살고 있는 지인을 방문하는 거라서 그들의 일정에 따라 내 일정을 조절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숙소에 교통편에... 외국이니 미리미리 준비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았다.

요즘 인기가 많은 여행 유튜버들의 여행기를 자주 보는데, 미리 예약하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숙소도

정하고 여행지도 변경해 가면서 여행을 하는 그들을 보니 더욱더 내 여행준비가 갑갑하게 느껴졌다.

가까운 친구 한 명은 매번 여행할 때마다 계획을 너무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하다 보니 나중에는 지도만 봐도 멀미가 날 정도라 하소연했는데 나도 두 나라 여행계획을 한꺼번에 하다 보니 숙소, 교통, 식당 등등을 찾는 일이 너무 복잡해서 나중에는 그냥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남편에게 우리도 그냥 계획 없이 한번 가볼까... 했다가 관광지나 식당은 그렇다 쳐도 숙소와 교통편은 미리

예약을 하지 않을 경우에 치러야 할 비용이 무계획의 편리함을 넘어서기에 닥치고 다시 검색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미리미리 계획을 하다 보니 수고한 만큼은 아니지만 작은 보상을 받는 듯도 하다. 

날짜에 따라 그날그날 검색한 내용과 정해진내용, 찾아야 할 목록등을 종합해서 노트에 정리하고 나면 나름 

규모 있는 여행노트가 한 권 만들어진다. 머릿속에만 있는 복잡한 내용을 쏟아내서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노트에 하나하나 적으면 실수도 금방 찾을 수 있고 무엇보다 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어서 좋다.

새 여행계획을 적으면서 지난 여행노트도 함께 들쳐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보여서 새로운 여행계획을 하는데

많은 참고가 된다. 물론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이지 실제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변수로 인해

꼼꼼하게 적어두었던 계획들을 하나도 못 지키는 경우도 많고 아주 가끔이지만 계획이 어그러져서 

더 좋은 결과를 갖기도 했다. 

이번 여행중 가장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강릉 '선교장'

지금은 한 달의 여행일정 중에 2주를 마무리했고 앞으로 남은 2주를 보내기 위해 시간 날 때마다 검색의 

바다를 헤매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세 곳의 일정 중에 먼저 가야 할 곳의 순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버스터미널에 도착하고 나서야 급히 마음을 정하고 가기로 한 3곳을 차례대로 둘러보았는데 급히 결정한 것 치고는 맘에 드는 동선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일정을 복기하고 새로운 일정을 적어놓은 이 

여행노트를 언젠가는 제대로 정리를 해서 하나로 묶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이렇게 또 하루를 마무리한다.

매번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하며 이 짓을 계속하는 걸 보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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