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인터뷰 – 한국에서 소규모 Art Group을 이끌고 있는 지인이 책 발간을 준비하며 외국에서 운영하는
화실의 이야기를 책 말미에 얹고자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오랫동안 화실을 운영하며 뒤돌아보는 시간이 없었는데 지난 시간들도 정리하고 앞으로 남은 시간들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화실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되는지?
보통 미국에서는 집에서 레슨을 하면 차고(Garage)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집안공간과 따로 떨어져 있는 건 장점이지만 차고는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단점이 있고
또 창문이 없는 차고도 많아서 작업공간을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요즘 새로 짓는 집들의 차고는
깨끗하고 쾌적해서 이런 작업공간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인 집들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은 작업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약간의 리모델링을 한 후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집은 2층에 작업실로 사용하기
좋은 크기의 방이 있어서 그 방을 화실로 사용하고 있는데 채광이 좋은 큰 창문도 있고 방에 작은 싱크가
있어서 물을 사용하기도 편하다.
화실 수업은 일주일에 2일~3일 정도 오픈하고 그중에 회원들이 편한 날짜를 정해서 일주일에 하루 수업을
오고 한번 수업은 2시간이다. 가끔 개인지도를 원하는 회원은 따로 수업일정을 잡아서 진행한다.
-집안일과 화실을 병행하려면 어려움이 많을 텐데. 홈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느끼는 장단점은?
집에서 일을 할 때 장점은
따로 출퇴근을 안 하니 시간도 절약되고 아이들을 다른데 안 맡기고 데리고 일을 할 수 있다.
집안일을 틈틈이 같이 할 수 있다 (장점이자 단점)
따로 공간을 마련해서 렌트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홈비즈니스 라이선스를 받으면, 집에서 사용하는 공간에 대해서나 사용하는 미술용품등의 비용에
대해서 세금 보고 할 때 조금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단점은
일하는 동안에 작업실에만 집중할 수가 없다.
작업실일과 눈에 보이는 집안일이 항상 머릿속에 있어 마음이 늘 바쁘고 시간에 쫓긴다.
* 둘째 임신했을 때부터 일을 했다. 처음에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해 갓난아기를 데리고 집에서 레슨을
해야 해서 아이 낮잠 자는 시간을 오전, 오후 레슨시간에 맞추어서 재우는 훈련 시켰는데 신통하게도 오전에 두 시간 오후에 두 시간을 레슨시간에 맞추어 시계처럼 잘 잤다. 중간에 깨지도 않고 2시간씩을 잘 자니까
따로 베이비시터를 고용하지 않아도 돼서 너무 고마왔다. 레슨에 오는 회원들도 너무 신기해할 정도로
오전 오후 두 시간씩 딱 맞춰서 잘 자주는 둘째가 너무 고마워서 아기가 부릴 수 있는 웬만한 말썽을 부려도 다 용서가 되었다.
-집에서 그림수업을 하게 된 동기는?
처음에는 물론 가계에 도움을 보태기 위해 시작을 했다.
첫 집을 장만하고, 남편 혼자 버는 싱글인컴으로 생활하는 게 벅차니 뭐라도 일을 해야 했는데 미국학위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은 거의 다 미니멈페이를 받으며 하는 일들이었는데, 풀다임으로 일해도 아이 둘 다 풀타임으로 베이비시터 맡기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을만한 일을 찾다 보니 집에서 레슨을
하는 홈비즈니스를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은 지역마다(city) 조금씩 법이 다르긴 하지만 각 도시에서
정해놓은 규정에 따라 정식 허가를 받고 세금 보고도 정직하게 하면서 집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회원들의 작품의 주제는?
대부분 처음 미술을 접하는 분들 이기 때문에 특별히 무슨 주제를 정해서 하는 건 아니고, 처음에 기초드로잉을 하면서 그림과 좀 친해지는 시간을 갖고 단계적으로 여러 미술재료를 사용해 보면서 자기에게 맞는 미디엄을 찾기도 하고 그리고 싶었던 그림 주제를 그리기도 한다. 대부분 예쁜 꽃이나 멋진 풍경그림은 선호한다.
간혹 처음부터 추상화를 하고 싶어 하는 회원들도 있어서 추상화에 대한 개념도 함께 공부하면서 도와주긴
하지만 추상의 세계에는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하고 대부분 구상의 세계를 선택한다.
전시회에 참가한 회원 작품들
전시회에 참가한 회원 작품들
-정기적으로 전시회도 했었다는데 전시 과정과 성과는?
감사하게도 동네의 Community Center에 너무 훌륭한 갤러리가 있어서 주로 그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지만 경쟁률이 높아서 항상 전시일정이 보장이 되는 건 아니다. Community Center갤러리는 전시일정 일 년 전에 전시할 그림들의 샘플을 보내서 신청을 해야 하고 시티의 아트 카운실의 심사를 통과해야만 한 달간의
전시일정을 배당받을 수 있다. 갤러리 1,2층을 모두 채우려면 30~40점의 작품이 필요한데 매년 그 정도의
작품을 준비하는 건 무리가 있어서 보통 2년에 한 번 정도로 전시 일정을 계획하고 있다
대부분 취미로 그림을 시작하는 초보 작가님들이라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잘 그리고 싶다는 기대감과
잘 못 그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함께 갖고 작품을 시작한다. 그래서 작품을 끝낸후에는 어쨌든 완성했다는 안도감과 더 잘 그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어 다음작품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또 이런 전시회를 통해 본인들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간도 갖고 주변 지인들에게 소개해서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뿌듯한 충만감도 함께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시회를 준비한다.
-취미생활로 심리적 안정을 찾거나 도움을 받는 사례가 많던데 그림을 배우며 마음의 병을 극복한
사례가 있었는지?
회원들이 늘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보통 생활이 너무 바빠서 쉴틈이 없고 쉬는 시간이 생겨도 제대로
쉬기가 어려운데 작업실에 와서 그림을 그리면 그 그림 그리는 두 시간만 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그림에만
집중하니까 마음도 안정되고 생활의 쉼표가 돼서 좋다고 한다.
한 회원은 가정적으로 많이 불안정했었는데 화실에 와서 그림을 그릴 때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면 대답은
잘 하지만 이 회원 머릿속은 이미 다른데 가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런 회원들은 아무리 오래 그림을 배워도
실력이 늘지 않고 늘 그자리라 많이 안타깝지만 이회원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는 작업실에 와서 그림
그리는 시간만이라도 잠시 어지러운 마음을 잊고 쉬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그림의 진도를 나가는 소재보다는 마음 편하게 그릴 수 있는 단순한 소재를 준비해 주니 그림에 집중을 더 잘할 수가 있었다.
많은 분들이 이민생활에 언어적, 환경적으로 제약이 많아서 하고 싶은 것이나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매주 만나서 취미생활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단조롭고 외로운 이민생활에 많은 활력을 받고 또 오롯이 '나' 만을 위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만족감이 큰 것 같다.
-수업료가 비싸지 않을 텐데 가계에 도움이 되나?
사실 처음에는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수업을 시작했지만 수업을 하면 할수록 점점 처음의 마음가짐과는
멀어진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과 어른들 수업 모두 했지만 입시생 수업은 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생각하면 입시반을 운영해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입시 스트레스를 또 경험하고 싶지 않았고
그림을 가르치면서 입시의 부담감과 싸움을 하는 게 자신이 없어서 처음부터 입시반은 하지 않고 취미반
학생들과 어른들만 수업을 하다 그마저도 코로나19 이후부터는 어른들(주부) 수업만 하고 있다.
많은 주부들이 가족을 위해서는 서슴없이 지갑을 열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두 번 세 번 생각을 하다 보니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 수업료가 비싸면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다. 나의 개인적인 바람이 이 그림교실을 함께 그림 그리는 모임으로 오랫동안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기에 회원들의 가계에 부담이 없는 정도의 수업료를 받고 수업을 하고 있다.
-그림 배우러 오는 사람들 중에 인상적인 분이 있는지, 그림 스타일, 혹은 개인적인 열정.
그림을 배우러 오는 분들은 그림을 조금 배우다 오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백지처럼 그림에 대해 아무
지식이 없이 오는 분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개성도 많이 보이고 같은걸 그려도 결과는 가지각색이라 재미가 있다.
한 회원분은 급한 성격 때문에 그림을 한번 시작하면 빨리 끝내는 데에만 목적을 두다 보니 그림도 너무 날림이 되고 디테일도 표현을 못하고 마무리하곤 했는데 정작 본인은 자기 성격이 급한걸 정말 몰랐다고 했다.
그 회원에게는 그림을 좀 천천히 그리면서 물감 마르는 시간도 기다리게 하고 생각 없이 하던 붓질도 멈추고 원하는 색과 명암을 먼저 생각하고 칠하면서 그리는 속도를 좀 천천히 그리게 했더니 놓쳤던 디테일도
잘 찾고 그림이 정말 좋아졌다.
대부분 취미로 그림을 그리러 오지만 시간이 많아서 시간 때우러 오는 분들 보다는 바쁜 시간 쪼개서 오는
회원들이 더 많다. 아침에 아이들 등교시킨 후 와서 그림을 그리거나, 은퇴하신 분들도 나름 바쁜 일정에서
짬을 내어 오시고, 식당을 운영하는 어느 회원분은 새벽에 태니스 두 시간 하고 와서 그림 두 시간 하고 ,
다시 식당 가서 일하고 또 개인 비즈니스 하는 회원들도 중간중간에 조금씩 시간 내서 그림을 그리고
가기도 한다. 다들 예전부터 조금 관심은 있지만 시작할 엄두를 못 내다가 정말 큰맘 먹고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고, 용기가 없어 친구 따라오는 회원들도 있다. 다들 공통된 점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그림을 용기 내서
시작하는 거라 그림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정말 진지하다.
-한국산 재료가 좋다던데… 미술도구는 제대로 구할 수 있는지?
미술재료 파는 매장이 있기는 한데 한국처럼 동네마다 많은 것도 아니고 있어도 종류가 그리 많지도 않다.
그리고 전문가용 좋은 재료는 많이 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다. 그에 비해 한국미술재료는 가격대비 품질도 좋아서 가성비가 정말 좋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약해서 많이 안 알려진 게 좀 안타깝다. 가끔 이민오신지 오래된 분들은 '미제'에 대한 무한믿음으로 한국물건에 대해 불신이 많아서 한국제품이 좋다고 해도 믿지 않는
분들도 많다. 요즘은 거의 모든 재료를 온라인상으로 구할 수 있는 세상이라 가격만 허락된다면 못 구할 재료는 없다. 다들 한국여행을 자주 하시니 한국제품과 미국제품, 유럽제품을 적당히 섞어서 쓰고 있다.
-화실 운영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처음 이 미술교실을 시작한 건 그냥 단순하게 화실을 운영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열정 가득한 일반인 취미생들을 만나고부터는 함께 그림을 그리는 그룹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를 떠나서 함께 공부하고 그림 그리는 모임으로 발전시켜서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그림도 그리고, 야외스케치도 나가고 전시회도 정기적으로 하는 그런 모임.
내가 우리 회원들에게 자주 이야기 하는 '나의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우리 회원들 각자 자기가 가장 편안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기만의 그림 스타일을 찾도록 도와주는 게
내 미술교실의 목표이다. 그래서 같은 날 같은 장소에 가서 함께 그림을 그릴 때, 각자의 방식으로
겁내지 않고, 본인의 눈과 손을 믿으면서, 자신만의 그림을 편안하게 그릴 수 있는 회원들을 보는 게
'나의 개인적인 바람'이다.
이미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서 열심히 정진하고 있는 여러 회원들이 있기에 그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