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사람과 살고 있을까?
당신이 숨기고 있는 것들 1
환상과 현실감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요?
상식으로는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옳은 말이나 100퍼센트 옳지는 않습니다. 환상과 달리 현실의 삶은 무겁습니다. 행복은 나비와 같아 쉽게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삶의 무게를 줄이는 쉬운 방법은 환상입니다. 환상이 내게 속삭입니다. 세상은 아름답고, 인생은 살 가치가 있으며, 나는 중요한 사람이다. 환상은 목마름을 달래주는 한 모금의 물입니다.
환상이 현실을 무시하는 쓸데없는 것일까요? 잘 쓰면 약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가지는 환상은 바람막이입니다. 이사 온 날 아들이 낯선 아이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빠야!”라고. 아빠가 ‘슈퍼맨’이라는 환상은 아이가 안전하고 순탄하게 자라도록 돕습니다. 아이의 환상 덕분에 잠시 강한 남자라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환상은 어른이 되어서도 지속됩니다. 사람에 대한 환상은 이상화(理想化)로 이어집니다. ‘이상화’란 다른 사람이 가진 바람직한 특성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입니다. 환상도 ‘유효 기한’이 있습니다. 기한이 지나면 환상에서 벗어나는 탈환상(脫幻想)이 찾아옵니다. 환상에서 벗어나야 정상적인 심리 발달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탈환상이 심하면 환멸로 이어집니다.
직장 상사, 연인, 배우자, 지도자에 대한 환상도 예외가 아닙니다. ‘나는 왜 이 남자와 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한 번 들면, 아무리 좋은 모습을 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환상이 발산하는 에너지는 생산적이지만 환멸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파괴적입니다. 환상과 환멸 사이에서 ‘간 맞추기’를 해야 평정심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음식 간을 맞추기 어렵습니다. ‘마음의 간 맞추기’는 더 까다롭습니다. 싱거워도, 짜도 문제입니다.
갈등이 증폭되면서 마음에 장애가 생깁니다. ‘경계선 성격장애’에서는 ‘마음 흔들림’이라는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세상에서 자기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연인이, 부모가 갑자기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가 됩니다. 어떤 관계도 마음 흔들림의 소용돌이에 쉽게 휩쓸려 들어갑니다. 분석가와의 관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실력이 최고라고 칭송하다가, 만나본 분석가 중에 제일 형편 없다고 태도가 돌변하면서 비난합니다. 정신분석 치료는 자주 난관에 빠집니다.
사랑은 나, 그 사람, 우리에 대한 환상이 시작하고 유지하고 관리합니다. 연애와 결혼의 무대에서는 환상이 춤을 추지만, 이혼이라는 무대는 환멸이 주도합니다. 연애, 결혼, 이혼에서 현실감은 조연일 뿐입니다. 사랑의 긍정적 감정은 환상의 꽃을 피웁니다. 미움의 부정적 감정은 환멸로 타들어갑니다.
환상이 깨지면서 환멸로 이어지려는 순간을 상상해봅니다. 두려움, 불안, 우울, 좌절감, 무력감 같은 거북한 감정이 몰려옵니다. 부정이라는 방어기제가 앞을 막습니다. 마음의 눈을 감는 것입니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눈앞의 것도 놓칩니다. 마음은 잠시 편하겠지만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눈을 감아서 없앨 수는 없습니다. 자신을 속이는 것뿐입니다.
답은 무엇일까요. ‘아름다운 관계, 살 만한 인생, 쓰임새 있는 나’는 모두 ‘그 사람’이 아닌 내 마음에서 나와야 합니다. 프로이트의 막내딸로 자아심리학파를 이끈 정신분석가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항상 내가 강해지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길을 내 밖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 길은 내 안에 있다. 항상 거기에 있다."
"가장 어두운 곳에 삶의 에너지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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