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추운 날에 가장 차가운 평양냉면을
2026년 새해가 시작됐다. 1월 1일에 평양냉면을 먹는 남녀의 로맨스 영화 한 장면을 기억 속에 넣어 두었다가 나도 언젠가 1월 1일에 떡국이 아닌 평양냉면을 먹겠다는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 날이 오늘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소개팅 첫 날 원나잇을 한 남과 여 둘이 냉면을 먹었지만 나는 소개팅도 없이 둘도 아닌 혼자 냉면을 먹었다. 평양냉면은 나의 최애 음식 중 하나였다.
안국역 4번 출구에서 나와 운현궁을 지나 걸었다. 이게 겨울이구나, 이게 새해구나 싶게 추웠다. 목도리를 안 두르고 온 게 후회되었다. 네이버 길 안내의 친절한 안내와 같이 낙원떡집과 이디야 사이로 난 길에 들어서 얼마 안 가 떡하니 을지면옥이 있었다. 이전한 이후로 초행임에도 길치인 내가 이렇게 길을 쉽게 찾다니 반가웟다. 가는 동안 2번의 유혹이 있었다. 아구탕과 콩뼈숯뼈해장국집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너무 추워서 따뜻한 국물을 몸 속에 들이 부어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구찜은 2인 이상 일 거고 뼈해장국이라는 메뉴에 콩과 숯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을지면옥에 도착해 후루루 냉면 가닥을 넘겨 씹고, 후루루루루 맑은 평양냉면 국물을 들이키고 나서 내 위장은 나를 칭찬했다. 2번의 유혹을 잘 뿌리쳤노라고.
쫄깃한 냉면의 면가닥처럼 올 한해도 무병장수하기를, 이 슴슴하고 해맑은 냉면 국물처럼 내 삶의 오염된 침전물이나 해로운 생각 따위는 1도 없이 무자극으로 말갛게 평탄하게 건강하게 살아가자고 다짐을 해 보았다.
나는 이제 사람이란 모름지기 등 따시고 배 부른게 행복이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가 주는 의미와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의 교감을 나눌 줄 아는 내가 되었다. 나는 주로 회사에 있을 때나 가족들, 친구들을 만날 때를 제외하곤 혼식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그 외길 인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내가 인정하는 맛집과 맛있는 음식들을 나누고 싶어 이렇게 혼식일기를 시작한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2026년 부디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혹은 혼자 먹는 즐겁고 건강한 식사 시간을 기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