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2명.
나에게는 친구가 2명 있다.
초등학교 4학년에 시작된 우정이, 40대 성인인 된 지금까지
30년 넘는 세월 동안, 가족보다 더 많이 늘 내 곁을 지켜준 친구 2명이 있다.
이 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이 세상을 견뎌 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늘 세상의 끝에 홀로 버려진 느낌에 빠지면
나는 그 친구에게로 간다.
그렇게 나는 엄마 껌딱지 2돌 넘은 아들을 데리고
이번에도 친구 집으로 갔다.
늘 그렇듯 친구는 나를 환영해 준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남편에게 눈치가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친구는 편하게 있다 가라고 해 준다.
그렇게 친구 집에 있는 1주일 동안
친구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그렇게 1주일의 마지막 날 알게 되었다.
친구 남편이 내 남동생과 같은 업종의 일을 하고 있단다.
세상의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
그렇게 남동생에게 전화를 하고 갑자기 친구 집으로 와서 함께 저녁을 먹고
그날 신기한 인연에 조금 과음을 한 친구의 남편은
(남편의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갑"의 존재가 남동생이었던 것.
갑자기 1주일 동안 신세 지면서 눈치 보이던 것이 사라지는 묘한 인간의 간사함이란 ㅠ)
다음날 과음으로 머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다가
뇌종양을 발견했다. 인생의 흐름이란 참으로 놀라운 것.
다행히 조기 발견이라 가벼운 수술로 완치가 되었다.
1주일간의 휴식으로 다시 에너지를 충천하고
나는 내가 처리해야 하는 어머어마 한 숫자의 병원비 앞으로 돌아왔다.
(병원비 500, 간병비가 일 8~9만 원 * 30 , 매달 800~900만 원.
봄에 시작된 병원비가 어느새 겨울까지,
더욱 두려운 건,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지 끝을 알 수 없는 생활이라는)
친구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병으로
늘 생각 없이 반복하던 일상에서 경제적 독립을 위해 조리사 자격증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영어 전공에 무역회사에서 일하던 친구였는데, 결혼 후 남편 직장 때문에 무역회사가 없는 시골 같은 지방 소도시로 가는 덕분에 전업주부가 됨. 일주일 같이 있어보니, 정말 요리를 잘하더라는, '너는 요리하면 엄청 소질 있겠어..'라고 지나가는 말로 한 건데^^ 지나가는 말의 위력^^)
우리의 변화는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주변에서 갑자기 주어지기도 한다.
커다란 흐름이 다가올 때 그 흐름에 실려 자연스럽게 변화되어 가는 것
그것도 괜찮을지도
엄마의 갑작스러운 뇌경색
그 큰 변화는 내가 내 삶을 바꿔야 하는 전환점
나는 그 흐름에 따라 변해가면 되는 것.
내 삶을 바꾸기 싫다고 저항하기보다,
지지리도 운이 없던 10년의 직장생활, 이제 드디어 좀 승진도 하고 빛을 발하려는데, 왜 굳이 지금 이냐고 아까워하지 말고,
신의 뜻에 맞춰 내려놓고 흐름에 맞춰 변해가야 하는 것.
카드로 돌려 막기가 가능한 병원비와 달리
매달 현금이 계속 필요한 간병비를 해결하기 위해 퇴직금이 필요했고,
그렇게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시원하게 그만두었다.
엄마의 뇌경색 소식에 주변 지인들도 하나 둘 전화가 왔다.
나는 모르고 지나왔는데,
자신들의 경험담을 알려주고, 용기를 주고 다양한 병원의 정보들을 전해 주었다.
나는 그동안 직장이라는 조직에 너무 몰입하여
주변 지인들의 고통을, 그들이 감내하고 있는 아픔들에
참으로 무관심했었구나, 느끼는 시간.
그동안의 이기적이고 그릇 작았던 덩치만 어른이었던
그런 여자아이였던 나를 반성해 본다.
큰 흐름을 지나온 나, 나는 이제 내 그릇을 키우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휴식이 되어 주고 싶다.
누군에게 밥을 지어 먹여주고 싶다.
(요리에는 너무 소질이 없어 내 친구만큼 맛나게는 못해주겠지만, 엄마들은 알잖아. 누가 차려주면 그건 밥과 김치만 있어도 맛나다는 걸)
누군가에게 미약하나마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면
그 손길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절망에서 힘겹게 겨우 뻗어내는 마지막
에너지일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내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싶다.
그렇게, 점점 내어주는 내가 반복되어
앞으로 점점 더 큰 그릇이 되고 싶다.
아멘.
그나저나
나의 얼음심장은 언제 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