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적은발톱을보이지않는다. 이빨을철저히숨기고 피를빨아먹는다.
그토록 싫었던 박 과장.
그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박 과장이 고등학생일 때 초등학생이었던 막둥이 여동생이 많이 귀찮았단다. 그래서 별로 같이 놀아주지도 않고 그랬는데, 어느 여름날 급성폐렴으로, 먼저 되돌아갔다고 한다.
우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갔을 뿐이고, 다음에 다시 만날 테지만, 그래도 늘 무언가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그런데 나를 보면 자꾸만 그 삐쩍 말랐던 여동생이 떠올랐다고, 그 여동생이 그렇게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또박또박 나이차이 많이 나는 큰오빠인 자기에게 대들었단다.
그 박 과장의 소개로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대학원에 가게 되었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같은 업계이다 보니 일하다가 모르는 게 있거나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늘 바로 메일을 보내주곤 했다. 20년의 세월 동안, 이제는 서로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지금도 가끔 안부를 묻곤 한다.
나와 함께 농락당했던 그 여자아이는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와 함께 있으면서 전문대에 입학했고, 열심히 공부했고 지금은 영어학원을 하고 있다. 아니 전공이 영어도 아니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영어를 가르치는지 신기하다. "언어가 꼭 어릴 때 해야만 잘하는 건 아닌 거니?"라고 물으니 안 그래도 선생님 발음 안 좋다고 무시하는 학생들이 한두 명 있다고, 언어는 어릴 때 하는 게 발음은 좋은 것 같단다.
그러나 잘한다는 것, 그것이 꼭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잘 못하기 때문에 더 노력하고 더 지속하게 되는 것들도 있는 듯하다. 그 여자아이는 영어를 가르치는 게 재미있단다. 이미 고등학생이 된 큰 아들을 키우는 그 여자아이, 우리는 1년에 한 번씩은 꼭 만나지만, 우리는 그때의 일을 한 번도 입 밖에 꺼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 일지도 모른다.
그 후로도 이런저런 고난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왔지만, 나는 잘 버텨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또 다른 고난들이 나를 찾아오겠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잘 버텨 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중년이 된 나에게 묻는다. 언제까지 버티기만 할 것이니?
나는 이제 용기가 있는가?
부당함에 마주할 용기, 말을 할 용기, 글을 쓸 용기가 있는가?
나는 회피유형이다.
늘 그래왔다. 내 삶의 대부분은 그 회피의 패턴이 반복되어 왔다.
미술대회 때도 도망가고,
대학 가지 말라는 아빠로부터 도망가고,
대학교 운동권이라는 그 선배는, 운동권이라면서 술 취한 나를 끌고 갔는데
나는 도망갔다. 그저 도망가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타고났다.
그렇게 부당함에 맞서는 용기가 없다.
그러나 대신 나는 빨리 잊고 더 좋은 곳으로 이동하는 용기는 있다.
나를 질책하고 가라앉고, 내 탓이라고 늪으로 끌어내리는 악마의 속삭임에 귀 닫는 용기가 있다. 잘못을 바로잡고 부당함을 고발하는 용기는 없지만, 피하는 용기가 있다.
모두가 맞서는 용기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닌 걸로.
나는 나답게, 부당함을 그저 피해 가며
비겁하다 욕먹어도, 버텨가며 나를 위해 살아가기로.
ps. 그 최대리는 회사를 그만두고 인테리어 사업를 한다고 하더라
ps1. 돈 많이 벌어 고급 주택 사서, 인테리어 할 때 그를 부르는 상상을 한다. 불러서 친절한 미소 띠고 토닥토닥해주며 귀여워해 주다가, 인테리어가 맘에 안 든다며, 다시 다 새로 하라고 하는 "갑" 질 하는 상상을 해본다.
ps2. 내가 그러는 걸 상상해 보니, 참으로 연결이 안 되네, 집에 도우미 불러서 커피 타드리고 과일 깎아드리고, 청소는 내가 하는 스타일이, 갑질은 무신... 갑질은 아무나 하나... 그런 것도 타고나야 하지...
ps3. 이노무 착함 증후근, 어디 갖다 버리고 싶은 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