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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주 비올라 Apr 11. 2023

미술대회

트라우마의 시작.

초등학교 1학년, 나는 8세 여자아이였다.

그날은 미술대회가 있었다. 

하루종일 주변 어른들의 이상한 시선을 견뎌야 했고, 그래서 너무 피곤했다. 


아무생각없이 푹 자고 싶었다. 깨고 싶지가 않았다.

정말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평소와 다르게

나는 자다가 감히 짜증을 냈다.


내가 감히 어떻게, 나 따위가 

남의 집에 얹혀 살고 있는 내가

감히 어떻게 그렇게 짜증을 냈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 너무나 피곤해서 이겠지.

8살,  여자아이 였던 나는

벌떡 일어나 팬티를 올리고

할머니 방으로 갔다.

새벽에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나로 인해 할머니는 놀라서 잠에서 깨셨다.

순간 내 잘못인거 같아, 나도 모르게

내 잘못을 덮으려고, 급하게 눈물을 만들었다

" 삼촌들이 자꾸 팬티를 벗겨"

그렇게 나는 억지 눈물을 만들어 내어 울면서 잠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푸욱 잤다.

그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정말 깊이 잠이 들어서...

그리고 다음날 나는 학교에 갔고, 엄마가 학교로 찾아왔고, 그날 바로 나는 전학을 했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을

그날이 있기 전 무수히 많은 밤 수차례 반복되었던 그 경험들을

나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나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


7세, 우리집은 참 가난했다.

그래서 가난한 동네에 살았고, 그 가난한 동네에는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때만 해도, 유치원이란 부자들이나, 엄마가 직장에 다니거나

그 2가지 중 하나에 해당되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유치원에 다녔다. 아니 정확히는 보내졌다.

그 당시만 해도 첫째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첫째 딸들은 머든 척척 알아서 잘했다.

나를 빼고

3살 어린 남동생에 비해 머하나 잘하는게 없었던

첫째 딸이 초등학교에 가서 적응을 못할까봐

그리고 그렇게 발달장애라도 될까

불안했던 엄마는 없는 형편에 억지로 억지로

나를 유치원에 보냈다.

(나중에 내가 고등학생에 되어 깨달았는데

 내가 느린게 아니라, 남동생 아이큐가 152

 천재였던거. 나를 유치원에 보낼게 아니라 그 돈으로

 남동생을 영재센타같은데 보냈어야 했던거..

 내 아이큐는 127.. 결코 뒤쳐지는 정도는 아닌...)

당시 7살 어린 여자아이였던 나는

유치원에 가서 너무 놀랐다.

세상에나 티비에서만 있는 줄 알았던

아이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우리 동네에 있는 아이들과는 땟깔이 다른 아이들이

천사같은 아이들이 너무나 이쁜 모습에

게다가 너무나 착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나와는 차원이 다른 그 아이들에게 주눅이 들어

나는 늘 없는 존재처럼, 마치 공기처럼 지냈다.

그리고 유치원에 간지 얼마 안되어

미술대회가 있었고

나는 그림이라는걸 처음 봤고

크레스파도 처음 봤고

스케치북이라는것도 처음 봤고

지금 무엇을 하라는건지 알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모두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었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르는 나는

멍하니 공기처럼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천사같은 선생님께서

(늘 무서운 엄마만 보다가 상냥한 천사님을 영접하니

  영혼이 적응을 못하고 있는 순간에)

"여기에다 옆에 친구처럼 무언가를 그리렴"

천상에서 들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셨다.

나는 옆에 친구를 보았고, 그 그림을 보고

따라 그렸다.

나는 어렸고 낯썬 장소였고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친구의 그림을 따라 그린

나의 그림이 대상을 받았는데

하필이면 

정말 왜 하필이면

그 대회가

무슨 유명한 전국대회였고

부산 촌년이 상을 받으러 서울까지 가고

부산 지역 신문에도 실리고

상금도 당시 동네 전체 잔치를 할 만큼 어마어마하게 받는

끔찍한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

그리고 그 일은 내 평생 나를 괴롭히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내 그림이 아니었다.

나는 거짓말을 한거고 친구의 그림을 훔쳤다. 

그리고 그 친구가 아닌

내가 상을 받았다. 나는 나쁜 어린이가 된 것이다.

누군가에게 말을 했어야 했다.

친구그림 보고 따라 그린거예요. 제 그림이 아니여요.

저는 그림 잘 못 그려요. 제 그림이 아니예요.


그 말을 그 천사 같은 선생님에게 차마 말 할 수가 없었고

그 말을 태어나 처음으로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엄마에게

하기에는 너무나 무서웠다.

일요일 성당에 가서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했다.

사도신경을 3번 묵송하고, 

마리아송을 5번 묵송 하라고 하셨다. 

아 어쩌지, 7살 어린여자아이였던 나는 사도신경이 먼지 몰랐다.

그 이후로 나는 그림이 싫었다.

그러나 전국대회 대상이라는 후광효과는 

늘 나를 따라다녔고

그렇게 그림이 싫은데, 그리기 싫은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늘 대회에 나가야만 했다.

그냥 "싫어" 하면 될텐데

나는 어렸고, 내가 싫다고 할수 있는건지 몰랐다.

이상한 그림인데, 누가 봐도 못그렸는데

그 "이상한 그림이라는 이유"로 대회마다 상을 받았다.

그리고 늘 나는 내 그림이 아닌데

내가 받을 상이 아닌데

내 것이 아닌 상을 받으며 어른들을 속이는

나는 '나쁜 어린이' 라는 생각의 돌덩이가 나를 짓눌렀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 되고

드디어 엄마에게 더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끝이 났다. 내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나 이제 그림 안그려"

"왜?"

"물감도 거의 없고. 붓은 다 망가지고

 연필도 다 사야하는데, 전부다 새로 사줄꺼야?"

돈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에 엄마는 그림을 그만 그리라고

그래 이제 공부할 때 되었지. 라고 대화 종결.

'나쁜 어린이'라는 나의 트라우마는 그렇게

4학년이 되면서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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