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 브레이커 #1 Thomas
<자켓의 해체와 재구성>
이 프로젝트는 단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장식적 요소가 철저히 배제된 '블랙' 테일러드 자켓을 구해올 것.
진행방식
1. 블랙 테일러드 자켓 구해오기
2. 자켓을 해체한 후,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디벨롭시켜 재구성
3. 프로젝트 마지막 날, 스튜디오에 디스플레이 후 Peer review 세션
난 친구들과 함께 런던 소호(soho) 거리의 빈티지샵들을 탈탈 털어 가장 마음에 드는 블랙 테일러드 자켓을 구했다. 왠지 모를 뿌듯함 그리고 설렘과 함께..
하지만 프로젝트의 마지막 날, 난 충격과 함께 내 눈을 의심한다.
세인트마틴은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Critique Day를 정기적으로 진행하는데, 각자의 작품을 발표하고 동료 및 교수진으로부터 피드백을 주고받는 날이다. 냉정한 피드백에 마상을 입지만 그만큼 성장하는 애증의 세션이다.
그런데 이 날, 수십 개의 블랙 자켓들 사이로 시선을 강탈하는 비비드 오렌지 컬러의 자켓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도 웬 알록달록 청소도구들과 함께. 웅성거림 속에 오렌지 자켓의 주인공, Thomas는 다음 문장을 서두로 작업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그 친구의 첫마디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People notice. 'And then' they pay attention.
그렇다.
우선 사람들이 주목해야 비로소 내 이야기에 집중시킬 기회가 생긴다.
그날, Thomas로부터 내가 배운 점은 분명했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가 심어져 있어도 처한 환경에 맞게 '전달'할 방법을 간구하지 못한다면 그저 허공의 '외침'이 될 뿐이다.
내 노력은 결과물의 퀄리티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Thomas는 결과물을 넘어 발표장의 환경까지 계산하는 친구였다. 그는 여기 모인 우리들이 전부 작품을 '잘' 만들어 올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순히 작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시각적 충격을 통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2등까진 적당한 전략과 처세로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1등의 자리는 '승부수'가 필요하다.
이 프로젝트의 본질은 옷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한 Think outside the box이다. 그러기 위해선 대담한 시도가 필요하다. 나는 과정 속에서 실험적인 시도를 했던 반면에 토마스는 오렌지 자켓을 사는 것부터 그 시작점을 달리 했다. 하이리스크-하이리턴.
세션이 끝나고 아쉬움에 교수님께 질문했다.
나 - "우리도 블랙이 아니라 컬러풀한 자켓을 선택했다면 더 자유롭게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었을텐데요. 조금 불공평하다고 느껴집니다."
교수님 - "I agree, but after all, the result is successful."
실제로 토마스는 가장 높은 호응과 평판을 받아 이 프로젝트의 1등이 되었다.
22살의 내가 이 곳에서는 얼마나 더, 또 어디까지 대담해져야 하는지 시사해 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