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대신 전해주네
요즘 <눈물의 여왕>이라는 드라마 덕분에 흥미진진한 봄을 보내는 중이다.
김수현 김지원 배우의 케미는 물론 등장인물 각각의 캐릭터가 돋보인다.
지난달 힘들게 마친 자폐스펙트럼 코스워크 때문에 마음이 가난한 요즘, 남은 실습 기간과 코앞에 놓인 시험으로 답답한 마음을 풀 길이 없었는데 마침 드라마에 감정을 이입하여 눈물콧물을 쏟아내는 중이다.
(아니면 갱년기의 시작이든가...)
아니.. 홍해인도 너무 예쁘지만 극 중 백현우 왜 이렇게 멋지냐고!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에 나는 왜 이렇게 이입이 되는 것일까...
TV에(더 정확하게는 백현우 장면에) 빨려 들어가는 나를 본 신랑이 툭 던져서 순간 알게 되었다.
"너는 법대 출신을 좋아하는 것 같아."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신랑이랑 백현우는 과동문이구나.
하지만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잘생겨서, 매사 홍해인을 위하는 모습이 멋져서 그런 게 아닐까 ㅋㅋ
홍해인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쓰러졌다가 깨어나자마자 백현우에게 그동안 차마 하지 못했던 진실된 마음을 쏟아냈다.
하.. 고마움을 제때 표현하지 못했던 그녀의 마음이 왜 그리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었을까.
작년부터 녹내장부터 갑상선 진단 등 몇 달 동안 대학병원투어를 하며 모든 투정을 다 받아주는 신랑에게 고마움이 쌓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전하긴커녕 완벽한 T 성향을 가진 나로서는 더 모진 말을 던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홍해인이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아 카타르시스를 느꼈는지도..
또 과몰입이 된 이유가 있었다.
갑상선 기능 때문에 조금만 움직이면 바로 침대에 대짜로 누워야 하는 요즘, 나도 모르게 침대에 쓰러져 또 짜증을 내고 있을 때 신랑이 내 발의 뒤꿈치를 가만히 만져보더니 "왜 이렇게 거칠어진 거야..." 하며 풋크림을 꺼내어 발라주던 그 순간이 떠올라 고맙고 미안한 그 감정이 분수처럼 터져버린 것이다.
오늘 캠퍼스 투어 행사가 있어 아이를 데리고 오랜만에 학교에 다녀왔다.
동문 손자녀 대상 중고등학생 캠퍼스 투어에 아이가 참여하는 동안 우리는 기억을 거슬러 추억의 장소를 도보로 섭렵했다.
학교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
학생회관 밥값도 6,500원까지 올랐고 공차 매장까지 생겼더라.
봄이 너무 예쁜 캠퍼스라 벚꽃과 더불어 여러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 가운데 옛 기억을 떠올리며 곳곳을 둘러보았다.
비록 30여 년이 지나 머리도 벗겨지고 흰머리로 반백이 되었지만 싱그런 봄내음은 우리 부부를 다시 그때로 회춘시켜 주는 느낌이었다.
"저 벤치에서 찍은 사진 아직 있나?"
이번 주는 4일이나 두통약도 듣지 않아 괴로움에 허우적대다가 오랜만에 맑은 머리로 외출을 하니 감사함 그 자체였다.
홍해인처럼 예쁘지도, 재벌도 아니고 백현우처럼 잘생기지도 능력이 출중하지도 않은 우리는 오늘 우리만의 잔잔한 행복을 한껏 느꼈다.
세월이 묻어나는 서로의 비주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풋풋한 캠퍼스 커플로 2시간을 시간여행하고 와서 그런지 <눈물의 여왕> 커플의 애틋함이 더 쑤욱 들어온 것 같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살라는 교훈인가...
난 그럼에도 아직 뾰족한 말만 내뱉는 와이프다.
곧 드라마가 끝나긴 하지만 대놓고 고맙다는 말은 조금 더 아낄 것 같다.
남겨둔 회차에서 엄청난 카타르시스 장면을 기대하는 마음일 수도...
m.Cla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