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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신저클레어 Jun 06. 2024

다음 산을 즐겁게 오르리라

간증과 같은 합격 소식

5월 한 달을 꼬박 고3 때처럼 벼락치기에 정신이 없었다.

작년부터 공부했던 자폐스펙트럼 코스워크를 마치고 실습시간도 모두 마쳤기 때문에 드디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도대체 언제 끝날까 한숨만 났던 그 과정들이 거짓말처럼 끝났다.

A냐 B냐 학점 받던 코스워크가 더 낫겠다 싶을 정도로 이제부터는 당락이 결정되는 본시험의 중압감이 점점 나를 옥죄어왔다.

국제자격증 시험이라 국내에서 줌으로 응시하기 위해 환경세팅이 필요했고 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더 불안했다.


미리 걱정하지 말고 일단 공부부터 하자!

1년에 4번을 응시할 수 있어 몇 번의 기회는 있었지만 오래 끌면 포기할 것 같아 단기간에 끝내고자 전략을 세웠다.

다행히 시중에 모의고사 문제집(1,000문제)이 단 한 권만 있었고 이 문제를 달달 외우기로 했다.


100문제씩 10세트였고, 1세트 풀 때마다 오답노트를 꼼꼼히 적고 수차례 읽었다.

비슷한 문제가 나와도 풀리기를 바라며 하루에 한 세트씩 풀어나가던 어느 날,

시험을 이틀 남겨두고 교회에서 간절히 기도를 했다.


평소에는 설교시간에 그렇게 졸다가.. 주님보기 면목 없지만 그래도 내가 급한데 어쩌겠는가.

그런데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치료의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으로 나아가 사람들을 치료해 줌으로써 복음을 전하라!"


헉, 주님의 치료 능력을 저에게도 주시는 건가요?!

자폐스펙트럼 인지치료 자격증 시험인데 저에게 치료 능력을 주시겠다는 말씀이죠?!

아멘~!


왠지 주님이 기도 응답을 주신 것 같은 울컥함에 나도 모르게 이런 약속을 해버렸다.

주님, 저 이번에 기적같이 한 번에 붙으면 말이죠,

교회 장애아동부 교사로 자원할게요, 제 공부가 복음을 전하는 도움의 손길로 쓰임 받게 하소서...




시험 당일, 정말 붙을 것 같은 마음으로 스터디룸에 도착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줌으로 proctor(프록터 : 시험감독관)가 연결되고 난 그 순간부터 나의 믿음은 의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일단 일대일 줌으로 연결된 프록터는 인. 도. 인.이었다.....(두둥)

응시하는 이곳 스터디룸 환경이 시험 보기에 적합한 곳인지 거울로 꼼꼼하게 비춰 확인받아야 했고, 내 화면을 원격으로 조정하기 위해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아.. 정말 이것이 진정 영어란 말이더냐!


여권을 웹캠에 비춰라, 내 얼굴 옆에 둬라, 내 휴대폰이 어디 있는지 비춰라, 거울로 오른쪽 비춰라, 왼쪽 비춰라, 책상 전체를 비춰라, 거울을 이제 바닥에 둬라..

한국말로 해도 당황할 판에 해석불가 발음의 정체 모를 영어에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만 zoom을 끄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어쩌면 이런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과의 약속이 유효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지금 상태로는 붙을 확률 5% 언더지만 어디 한번 믿어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점수가 안 되어 시험은 떨어져도 되니 적어도 시험 응시버튼을 누르는 그 시점까지는 가보자는 오기였다.


"Like this?"

"No.."

"Then..  Like this?"

"No.. I can't see the entire screen.."

"TTTTTTTTTTTTTTT"


대한민국 아줌마의 열정으로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요? 이렇게요?를 외치며 나아갔다.

마치 그리스 한가운데.. 혹은 중국 한가운데서 시한폭탄을 온몸에 두른 채 폭탄 제거 위해 주위 사람들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말을 내 맘대로 해석해서 죄다 눌러보는 격이었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프록터가 이제 시험에 응시해도 된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리올리?!를 외치며 땡큐땡큐를 수십 번 날렸다.


자, 이제부터... 124문제를 풀기 위해 3시간이 주어진다.

이미 기진맥진 상태에서 3시간 시험 시작이라니, 나의 멘털은 샤샤샥 다시 재가 되어 흩날렸다.

게다가 zoom으로 나를 계속 찍어야 한다며 구부정한 자세를 요구했다.

그 자세로 장장 3시간을 파파고 돌린듯한 어설픈 한국어 문제와 싸웠다.


자세도 자세였지만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가장 힘들었다.

다행히 시험에 응시하는 단계까지 왔지만, 이번에 떨어지면 다음에 이 과정을 또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게다가 응시료 350불(한화로 50만원)을 날린다고?!


천신만고 끝에 124문제를 다 풀었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검토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쳐 그냥 submit(제출) 버튼을 눌렀다.


"축하 해요!

QBA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역시 파파고인가 보다.

'축하해요'를 붙여 쓰지 않다니..

제 정신이 아니라 그런지 기쁨보다는 이런 것부터 보였나보다.


아무튼 더 이상 이 과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제일 기뻤다.

프록터를 불렀더니 한참 후에 나타나 붙었냐고 묻길래 덕분에 패스했다고 했다.

보통 15분이면 끝날 시험 환경 세팅을 나는 거의 1시간을 했고 그걸 기다려준 프록터가 고마운 건 사실이었다.


최종 합격 메일은 며칠 뒤에 왔다.

정말 기적같은 결과......

아, 약속한 걸 지켜야 하는구나!

합격증을 받은 바로 그 주 일요일에 장애아동부 교사로 신청했다.


자격증 시험이라는 이 산만 넘으면 만사형통할 줄 알았는데 이 자격증으로 인해 다시 시작할 것이 수두룩하게 많아졌다.

하지만 다음 산도, 그다음 산도 즐겁게 오를 수 있을 것만 같다.

뒤늦게 택한 이 길이 적어도 틀린 길이 아니라는 확인도장을 받은 기분이기 때문이다.

자폐스펙트럼이라는 또 하나의 지경이 열린 나의 서사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어쨌든...


붙었다!!!!!!


m.Cl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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