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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신저클레어 Aug 07. 2024

통쾌할 줄 알았는데 씁쓸한 이 기분

꼭 말을 해야 아나요?

교회에서 일요일마다 장애아동부 교사로 봉사한 지 두 달 정도 되었다.

주중에는 발달센터에서 자폐스펙트럼과 ADHD를 겪는 아동들에게 인지 치료 수업을 하고 있다.

일요일은 좀 쉬고 싶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봉사의 마음을 주셔서 그 순간 순종하고 교사로 신청했다.


그런데... 아 그런데...!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먼저 센터에서 가르치던 아이가 바로 그 장애아동부에 있었다.

발달센터와 교회는 꽤 거리가 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3주 정도 지났을 때 이 아이의 부담임으로 배정이 되면서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바이어스가 있을까 봐 내가 이쪽에 종사한다는 말도, 이 아이가 우리 센터 학생이라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어머니조차 너무 놀라시면서도 좋아하셨다.


두 번째 사건은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한 일이다.

아이의 부담임이 되면서 원래 담임이던 분과 꽤 친해졌다.

이 분은 실제로 특수학교 교사셨다.

그래서 나 역시 현재 발달센터에서 ABA 인지 치료하는 교사이고, 이 학생이 우리 센터 아이라고 얘기하며 서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코치 선생님 표현으로 "궁합이 잘 맞아"보였고 실제로 이 아동 케어에 흡족하다 하셨다.)


그런데... 아 그런데.. ~ (컬투쇼 말투 따라 하기)

연세가 좀 지긋하신 한 분이 유독 내 옆에 자주 오셔서 그 아이는 그렇게 다루면 안 된다고 하셨다.

말씀으로만 하시는 게 아니라 나에게 터치를 하시면서까지 뭔가 바로잡고 싶어 하셨다.


기분이 묘했다.

신입 교사가 서너 명인데 왜 나한테만 그러시지?

(내가 좀 만만한 캐릭터인가?!)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묘한 기분은 점점 상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가 좀 어려운 친구인 건 맞다.

하지만 난 아이를 센터에서 1년 이상 봐왔고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 모르는 게 아닌데 매번 가르치듯 그러지 말라고 하시니 허허.. 매주 지적을 받으며 점차 그분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사달이 일어났다.

교회 담임 선생님이 휴가를 가신 이유로 나 혼자 이 아이를 케어하게 되었다.

예배 시간 내내 이 아이는 정말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해서 평소에는 우리 둘이 양 옆에서 아이를 케어했는데 구멍이 뚫린 걸 너무나 잘 아는 아이는 문제행동이 훨씬 심해졌다.


고군분투하는 나에게 어김없이 "얘는 그렇게 다루면 안 됩니다. "하고 말씀하시며 갑자기 하리보 젤리를 건네주셨다.

"조용히 하면 이걸 주겠다고 약속하고 주세요."


하.. 아무리 조용히 해도 예배 시간에 이걸 먹기 시작하면 계속 달라고 할 텐데 그 자리에서 문제 행동을 더 유발할 거라 그분께 말씀드릴 수도 없고, 그래도 어르신이 주셨으니 뻔히 결과가 보이지만 아이에게 젤리를 하나 주었다.

그리고 일은 벌어졌다.


젤리 맛을 본 아이는 더 안 준다고 평소의 몇 배나 되는 문제행동을 시작하며 예배 시간을 엉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 아이가 울면 다른 아이들이 이 소리에 반응하며 역시 각자 공격 행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난장판이 되어가는 걸 직감하고 바로 아이를 데리고 예배당을 나왔다.

아이는 언제나 예배당을 나오고 싶어 했는데 얼씨구나 하는 마음으로 회피 기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젤리를 주는 게 아녔는데... 그 말씀을 드리고 안 줄걸 그랬다는 후회로 아이를 달래고 있는 그때 그분은 밖에까지 따라 나오시며 나에게 또 지적을 하셨다.


"이 아이는 사실 다루기 쉬운데 선생님이 너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문제를 제공하신 분이 또 내 탓을 하시자 두 달을 참았으니 이제는 할 말 좀 하자는 마음으로 딱 한 말씀만 드렸다.


"이 아이는 저희 센터에 다니는 제 학생인데, 교회에서 제가 가르치는 방식으로 아이를 대하는 게 문제가 있다면 제가 다른 아이를 맡아야 할 것 같습니다."


환갑이 넘으신 어르신이라 늘 웃으며 참았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말을 꺼냈는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완전히 다른 분으로 돌변하신 것이다.

뭔가 매우 당황하시며 주어 서술어 뒤엉켜 말씀을 하셨는데 종합해 보면 그게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또 꼭 그럴 필요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그러더니 그 뒤로는 정말 언제 그러셨냐는 듯 한 마디도 안 하셨다.


뭐지...?


대표 코치 선생님도 이 사실을 아시고는 그분은 전문가가 아니며 담당 선생님이 요청하지 않는 이상 아이 케어하는 것에 함부로 딴지를 걸 수 없는 게 원칙이라며, 그분께도 그러시면 안 된다고 말씀을 드렸다고 했다.


선하고 헌신적인 마음으로 일요일 휴식을 불사하며 시작한 봉사 의지에 스크래치를 남긴 일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진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후문도 들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수위를 넘는 지적들이, 내가 이 분야 전문가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싸악 사라진 것도 씁쓸했다.


음...

이것도 자기돌봄인가?

좋은 게 좋다는 생각으로 그냥 다 받아들였던 것들이 쌓이면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되는 것일까?


이번 주도 교회 담임 선생님이 안 오시는데 어떻게 전개될지 벌써 궁금하다.


m.Claire.


geralt@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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