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맛
눈물이 그렁그렁한 날이 있다.
사소한 시비가 이렇게 저렇게 얽혀서 어디서부터 기분이 꼬인 것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그런 날.
오늘은 그런 날이다. 어제도 그랬던 것 같고.
-
얼마 전 구입한 에세이를 다 읽고 맨 뒷 페이지를 덮으며 '다 읽었네.' 하며 소리 내어 말해보며 나는 그것을 얼마나 아쉬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얼마 동안 그 책 속에 담긴 문장들을 읽으며 '그래. 나도 그래' 하며 가려운 곳을 긁어주던 말들에 위로를 받고 있었나 보다.
내가 바라는 건 그런 한 문장인데.
-
나의 단조로운 하루의 일과 중 1시는 집 근처 마트에 가는 일이다.
유모차를 끌며 핸드폰 통화 목록을 뒤적이니 수신된 전화가 몇 통 없었다.
남편과 알 수 없는 070으로 시작되는 전화뿐이었다.
전화에도 용기가 필요한 시대다.
문득 전화할 용기가 생겨서 전화를 걸더라도 상대방이 받지 않거나 웬일이냐는 놀라움을 보일 땐 겸연쩍어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며칠 전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는 안부도 묻지 않고 대뜸 따지려 드는 전화였다.
"네가 잘못했다고 그래!"
아니요. 아닌데, 난 그런 말 할 수 없어요.
왜냐면 나는 잘못하지 않았으니까.
-
바라는 건 간단한 한 문장인데.
너무들 하네요.
-
매년 돌아오는 기념일이나 생일에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은 손편지다.
간단히 적은 문구라도 손으로 직접 옮겨 넣은 정성을 나는 소중하게 생각한다.
'매일매일이 여행 같은 날들이 되길 바라며'
작년에 캠핑 박스를 선물하며 적은 문구였다.
선물 받은 사람이 이 문구를 얼마간 생각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도 그 캠핑 박스를 쓰며 간간히 생각하려나.
아니면 그 정도 쪽지쯤이야 포장지와 함께 쓰레기통에 박혀버렸을지도.
-
눈물이 그렁그렁한 날이 있다.
"엄마. 왜 울어요?"
첫째 아이가 물어본 말이다.
아무도 묻지 않아서 그 말을 듣자마자 그렁그렁하던 눈물이 주책맞게 줄줄 줄.
-
'어떻게 잘 지내고 있니?'
그런 문장을 주는 게 나를 알지 못하는 작가라는 게 아쉬운 일이다.
어느 발신자도 아니며 누구의 쪽지도 아니다.
-
소금 커피 맛을 생각한다.
며칠 전 저녁에 지인과 마셨던 소금 커피 맛을 생각한다.
보통 거품이 짠데 이건 커피 자체가 짜다며.
그날도 나는 그렁그렁하다 울어버렸는데,
나는 언제고 울 준비를 하고 있는 눈을 가졌나.
소금 커피 맛이 짠 건지, 눈물이 짜웠는지.
-
하루는 언제고 상처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거냐는 짜증 섞인 말을 들었다.
그건 그날의 문장이 됐고 그날은 얼룩덜룩한 날이 됐는데
나도 우는 내가 반갑지는 않다.
-
"엄마. 왜 울어요?"
나도 그런 걸 물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으응. 좋아서"
그날 엄마가 좋아서 울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좋아서 우는 건 살면서 손에 꼽을 만큼 적기 때문에
아마도 좋아서 운 건 아닐테지.